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윤 May 10. 2022

"타인은 지옥이다" 그 말의 진짜 의미

타인은 정말 그 자체로 지옥일까?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들을 때면 몇 년 전 종영한 드라마, 또는 그 드라마의 원작 웹툰을 떠올릴 것이다.

ⓒ OCN |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포스터

 그런데 이 말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가 자신의 희곡 『닫힌 방』에 남긴 대사이다. 그는 왜 이런 대사를 썼을까? 타인은 그 자체로 지옥이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타인이 지옥이라니, 그는 우리가 고립되어 살아가길 바라는 것일까?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선 희곡의 내용을 살펴봐야한다. 『닫힌 방』은 세 남녀 가르생, 이네스, 에스텔이 죽은 뒤 출구 없는 하나의 방에서 함께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

가르생 | 반전신문 창간을 주장하며 탈영했다가 총살당한다. 또한, 아내를 학대하고 다른 여자들과 줄곧 바람을 펴왔다.

이네스 | 여성 동성애자로, 사촌동생의 아내를 가스라이팅하여 자신의 편으로 데려와 살다가 가스사고로 죽는다.

에스텔 | 불륜 상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살해한다. 이후 폐렴으로 죽는다.     


 생전 부도덕한 짓을 저질러 온 이들이 마주할 사후세계는 지옥일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이들의 사후세계, 곧 이들이 머무는 방은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의 모습과는 자못 다르다. 호텔객실 같은 이 방 안에는 어떠한 끔찍한 형벌이나 불구덩이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창문과 출구 없는 방, 그리고 그 안의 세 사람이다. 그나마 나갈 수 없다는 것만이 이들에게 유일한 형벌이 될 것이다. 탈출할 수 없는 이 방 안에서, 세 사람은 자신들이 죽게 된 사연에 대해 털어놓고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본격적으로 갈등을 겪는다.      


타인의 판단으로 나를 대상화할 때 펼쳐지는 지옥     

 이미 죽은 영혼인 이들은 이승에서 들려오는 자신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죽어서도 여전히 남들의 평판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심지어는 들을 수 없는 이들에게 자신을 옹호하고 항변하는 말을 쏟아내기 까지 한다. 이렇게 세상을 떠났음에도 타인의 평가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세 사람은 좁은 방 안에서 마저 서로를 서로의 판단에 가두고 그 판단에 의존한다.

 이네스로부터 전쟁을 피해 도망친 비겁자가 아니라 반전신문을 창간하려 했던 영웅이라 인정받고 싶어하는 가르생, 에스텔을 동성애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이네스, 가르생의 손길을 원하는 에스텔. 세 사람은 닫힌 방 안에서 서로를 서로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바로 이때 지옥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게 지옥인 거군. 정말 이럴 줄을 몰랐는데 ... 당신들도 생각나지, 유황불, 장작불,석쇠.....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닫힌 방』中-


                

타인≠지옥,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때 지옥이 펼쳐지는 것


 사르트르는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라는 대사가 늘 오해되어 왔다고 말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해가 되고 지옥처럼 된다는 뜻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내가 말하고자 한 건 좀 다르다.” 이 연극에 대한 1965년 강연에서 그가 한 말이다. “우리는 타인들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중략)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타인들의 판단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즉,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은 우리를 둘러싼 타인들이 그 자체로 우리에게 해가 되어 관계가 지옥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를 멋대로 판단하고 객체화하는 타인들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인식할 때 이들이 지옥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고 판단하는 게 익숙한 사람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는 과거부터 지키고 따라야할 수많은 규범들이 존재해왔다. 가령 부모님 말씀을 거역 없이 잘 듣고 공부를 잘해야만 좋은 아이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문화 아래서 자란 우리는 집단에 융화되기 위해 타인의 눈치를 보고 ‘튀지 않게’ 행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사회적 통념과 규범에서 이탈하여 ‘나대는 애, 이상한 애’ 라는, 다수의 눈 밖에 나 낙인 찍힌 사람이 되기를 누구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변인들의 판단을 의식해 스스로를 다듬고 깎는 일에 익숙해져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어떠한가? 이전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는 갈수록 옅어지고 개인의 개성이 차츰 존중받는 시대이지만, SNS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타인의 삶을 엿보고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지만 은근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스스로를 검열한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이른바 쿨하지 않지만 쿨한 척 하는‘쿨병’이고,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한 나’를 연출하고자 되려 타인을 더욱 의식하는 굴레에 빠진다. 자유로워 보이는 많은 현대인들이 사실 타인의 판단에 속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마냥 타인의 시선이란 덫에 걸리기만 하는 피해자인가? 그렇지 않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규정지은 적이 분명 있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회의 통념으로부터 조금 벗어난 행동을 하는 누군가를 보고 ‘관종', '비호감’이라고 비난하거나, ‘이상한 애’, ‘가벼운 애’ 등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마치 메두사와 눈이 마주친 상대는 하찮은 돌덩이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메두사가 되어 자신만의 고유함을 가진 다른 존재를 너무 쉽게 하찮은 무언가로 치환해버렸을지 모른다.         




지옥이 되지 않기 위해, 판단 보다는 이해를     

 

 서로가 서로의 지옥이 되지 않기 위해, 다시 말해 타인들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부터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우월감과 열등의식이 함께 가는 것처럼,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으로 자신을 판단하게 될 테니 말이다.


 물론, 나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타인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값진 것이다. ‘이해’란 나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누군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그를 수용하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방송프로그램 <금쪽 같은 내 새끼>,<금쪽 상담소>가 인기를 끄는 것은 우리 내면에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때 쓰고 막무가내인 듯한 어린아이를 ‘문제아’라고 낙인 찍는 대신, 성장의 과정에 있는 소중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것. 대성공을 거두고 최정상에 있는 아이돌 멤버가 공황장애를 겪었다는 사연에 ‘배부른 소리 한다.’라고 비난하기 보다 그가 느꼈을 공허한 마음에 공감을 표하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대상화되었던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이러한 시도가 늘어날 때 우리가 서로의 지옥이 아닌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와 너무도 다른 타인. 우리도 우리 자신을 모르고, 일상은 너무 바쁘기만 해서 우리 마음에는 누군가를 이해해보려는 여유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의 사정을 헤아려보는 대신 빠르게 결론지어버리는 것일 테고. 나는 이러한 충동이 들 때면 정현종의 시 『섬』을 떠올린다. 시의 구절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상대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를 가진 존재이며 나 자신이 그래왔듯 상처받기 쉽고 상처 받아왔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 그것이 이해의 시작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누군가를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통해 판단하거나 판단에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가장 좋아하는 정현종의 시『섬』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  『섬』



[참고자료]

닫힌 방 악마와 선한 신. 장폴 사르트르. 민음사.

문소영. [분수대]'타인은 지옥이다'의 의미. 2019.01.05. 중앙선데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