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누군가를 별다른 이유 없이 미워하거나, 마땅한 이유가 있더라도 증오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과하게 싫어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이다지도 미워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인물 ‘염창희(이민기)’를 통해 설명해보려 한다.
창희가 옆자리 앉은 정대리를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
ⓒ JTBC | <나의 해방일지> 속 염창희
최근 인기를 끄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인물 염창희(이민기)는 편의점 본사에서 대리로 일하고 있다. 그런 창희가 회사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옆자리에 앉은 정아름(최보영) 대리다. 이 정대리란 사람은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 똑같은 얘기를 몇 번이고 미주알고주알 쏟아내며 자신의 tmi를 남발하는, 창희에 따르면 이른바 ‘다말증’ 환자다. 그녀는 창희가 관리하는 편의점 점포에 훼방을 놓아 뺏어간 점포가 3개나 되고, 창희가 놓친 기회마저 얄밉게 채간다. 창희에게는 월 천만원 수익의 편의점을 인수할 기회가 생기는데, 당장 보증금 3억이 없어 아버지께 대신 권유해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안정적인 수익 창출의 기회를 눈 앞에서 놓쳐버린 창희. 이 기회는 옆자리 정 대리가 잽싸게 낚아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그녀가 곧바로 자신의 아버지께 소식을 알려 점포를 인수하도록 한 것이다.
사연을 들어보니 창희가 그녀를 싫어하는 마음이 백번 이해된다. 이 정대리란 사람은 온종일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를 떠들어대는 다말증 환자에, 내부에서 밥그릇 싸움하며 창희의 기회마저 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정대리가 싫어도 '너무너무 싫은' 창희는 동료와의 식사, 술자리마다 어김없이 정대리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9회에서, 한 동료가 이런 창희의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정대리가 싫은 이유를 잘 생각해보라며 “정아름이가 부자가 아니었으면 네가 싫어했을까?”라고 묻는다. 이 말에 핵심이 있다.
창희는 사실 정아름 대리처럼 돈을 모으고 싶은 욕심과 야망이 있는 인물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남자들보다 자신의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인연이 생겨도 연애를 시작하지 않는 창희. 그의 내면에는 정대리처럼 재산을 불려 더 나은 조건의 남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창희가 이런 욕심을 부정하는 동안 정대리는 그 욕심을 마음껏 드러내어 차곡차곡 재산을 불려왔다. 월급쟁이 직장인으로만 살아서는 부자가 될 수 없는 시대에, 정대리는 어찌 보면 수완 좋고 능력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욕심을 대놓고 드러내 부자가 된 정대리는 창희 자신이 부정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그의 열등감을 자극하기 때문에 정대리가 유독 싫은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심리, 그림자와 투사
심리학 이론에는 ‘그림자’라는 개념이 있다. 창희가 부에 대한 욕심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것처럼, 우리 내면에는 인정하기 힘든 내밀한 욕구나 갈망이 있다. 가령 방탕해지고 싶은 욕구나 누군가보다 우월해보이려는 욕구 말이다. 이러한 욕망은 대체로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거나 부도덕하다고 비난받기 쉬워서, 차마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누르게 된다. 바로 이때억압된 자아의 일부는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해 ‘그림자’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그림자를 내가 싫어하는 이에게 ‘투사’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싫어지는 것이다. (투사란 열등감, 공격성 같은 개인의 특성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돌려 부정하는 심리적 현상으로, 일종의 방어기제이다.)
상대의 싫은 면을 살펴보는 것은 곧 자기이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도 그림자의 투사를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이렇듯 우리는 보통어떤 사람을 싫어할 때, 그 사람 전체를 싫어한다기보다 그가 가진 ‘어떤 면’을 싫어한다. 이를테면 '잘난 체 하는' 누군가가 너무나도 꼴보기 싫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사실 내 안에 ‘잘난체 하고 돋보이려는 성향’이 그림자의 형태로 감춰져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싫어했던 어떤 이의 특성은 사실 우리가 억누르고 부정해왔던 자아의 한 부분인 것이다.
물론, 어떠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거나 상대가 정말 못된 사람이어서 그가 싫어진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정당한 이유 없이, 또는 과도하게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면, 한 번쯤 그의 어떤 면이 왜 싫은지 살펴보길 바란다. 이러한 성찰은 곧 자기이해의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