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경제모델 - 홍성군 홍동면의 지역순환경제 실천

by 김남현


지역 쇠락의 대안으로서 민주적 경제모델

2023년 기준 우리나라 17개 시도별 지역외 순수취 본원소득을 살펴보면 서울과 경기도, 광역시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는 지역에서 발생한 소득이 타 시도로 빠져나가는 역외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지역의 소득이 지역 내에서 순환되지 않고 대부분 본사가 소재한 수도권이나 광역도시로 영업이익이 유출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를 지역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지역 내에서 자본이 순환되도록 하고 공동체가 자산을 공유하여 모두가 행복한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홍동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이 공식처럼 여겨지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금융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가 가장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경제발전을 가져온다는 믿음 아래 대한민국은 달려왔으나 그 결과는 암울하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도시화와 지역의 피폐화, 지역소멸 등 지역 불균형발전, 양극화, 기후 위기, 노동의 상품화, 인구 소멸 등 다양한 문제를 가져왔고, 이제 무너져 버린 우리의 공동체를 되살릴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게 한다.

최근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공동체 경제, 민주적 경제, 지역순환경제, 연대적 경제, 생태경제학, 탈성장론 등 대안적 논의가 활발하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도 대안 경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들 논의의 주제는 주로 자본 중심의 경제에서 인간 중심의 경제로, 대규모 신자유주의 글로벌화 경제에서 소규모 지역들 중심 경제로의 전환이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년)에서부터 지역화 운동, 로컬경제 운동의 선구자인 호지의 『오래된 미래』(1991년), 켈리와 하워드가 발간한 『모두를 위한 경제』(2019) 등은 이 주제들을 잘 다루고 있다. 특히 미국의 비영리 연구단체 ‘협력하는 민주주의’도 기존의 추출적 경제에서 지역순환적 경제로 대전환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민주적 경제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추출적 경제에서 민주적이고 지역순환적 경제로 대전환을 꾀하고 있는 ‘협력하는 민주주의’의 민주적 경제모델을 바탕으로 암울한 현실에서도 씨앗을 뿌리고 새싹을 틔우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경제의 실천 사례인 홍성군 홍동면을 살펴보고 희망의 씨앗을 찾아보려 한다.


지역순환경제, 홍성군 홍동면의 실험

충남 홍성군 홍동 마을은 인구 약 3,300명 규모의 유기농 농업의 대표 마을이며, 귀농·귀촌인구가 약 500명 정도로 10여 년 사이 10배 정도 증가할 정도로 귀농 귀촌의 메카다. 홍동 마을의 특징은 교육 중심의 커뮤니티가 발달하였고, 주민들의 역량 강화로 주민 주도성이 높으며, 협동조합 중심의 운영과 지역 화폐의 사용, 사회적 포용과 다양성 인정, 환경 및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둔 공동체 운영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2011년 “돈보다는 사람을 우선하는, 경제적 효율보다는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지역 공동체의 꿈을 그리겠다”는 비전으로 마을기업 ‘지역센터 마을활력소’를 설립하면서 마을의 민주적 경제, 지역순환경제 시도는 좀 더 체계가 잡혀가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활력소는 중간지원조직으로 유기농과 축산으로 순환농업을 바탕으로 자립하는 마을 만들기를 목표하고 있으며, 주민 스스로 참여와 연대를 기반으로 한 공익활동을 지원하면서 자치·자급·자율적인 지역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사업은 귀농 귀촌 희망자를 대상으로 마을 알아보기 프로그램 마실이학교를 운영하고, 지역신문 <마실 통신>을 발행하며, 봄맞이 큰장, 홍동 거리축제 운영, 지역 화폐 ‘잎’ 사업을 지원하고 매월 1회 마을 모임과 연 1회 우리마을 발표회를 통해 마을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홍동마을지도.jpg 홍동마을 지도


홍동 마을의 특징이 켈리와 하워드가 「모두를 위한 경제」에서 제시한 민주적 경제의 7가지 원칙-공동체의 원칙, 포용의 원칙, 장소의 원칙, 좋은 노동의 원칙, 민주적 소유권의 원칙, 지속가능성의 원칙, 윤리적 금융의 원칙-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자.

표_민주적 경제원칙.png 민주적 경제 원칙에 따른 홍동면의 실천 사례


협력과 연대-좋은 노동과 지역 자산을 마을에 머물게 하기

홍동면은 탄탄한 마을 공동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고 지역 내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져 지역 주민이 주인이 되는 공동체 경제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마을 공동체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의 경제사업 공동체는 물론, 교육문화 공동체, 복지 공동체, 농업공동체, 환경 공동체 등 다양한 공동체 주민조직 50여 개가 활동하고 있으며, 대부분 협동조합과 NGO, 영농법인 형태로 설립·운영되고 있다. 마을 공동체의 연혁은 2016년 연구자료에 따르면, 평균 11년 이상 되었으며, 평균 2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자치활동이 활발하다.

이런 홍동 마을 공동체의 뿌리는 문당리 풀무 마을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에서 출발한다. 풀무학교는 1958년부터 ‘더불어 사는 평민’을 교훈으로 유기농업의 기술 교육과 홍보를 담당해 왔으며, 지역이 학교이고 학교가 지역이라는 신념으로 학교 안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단체가 독립하여 마을 공동체 조직과 단체를 형성하고 졸업생들이 풀무생협, 유기농업생산자회, 갓골 어린이집, 지역 유물전시관, 홍성신문, 풀무신협 등 지역의 자치 조직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어 지역 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음으로 홍동면은 사회적 경제조직의 활동이 활발하다. 홍성 주거복지센터, 홍성의료복지사회적 협동조합, 꽃과꿀벌, 베지랭 등 4개의 사회적 기업과 5개의 협동조합이 운영 중이다. 사회적 경제조직을 통해 지역의 돌봄과 의료 문제를 해결하고, 생태농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마을 주민들은 유기농 농산물의 생산, 가공,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하여 지역 내에서 경제적 순환을 촉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태농업기반의 식문화 교육과 생산 판매, 양봉 및 건강기능식품 생산 판매로 지역의 지속가능한 농업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홍동마을 유기농 협동조합은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직접 가공 판매하고, 자체적으로 생산한 제품들을 이용해 마을 식당을 운영하거나 지역 내 시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경제적 순환을 강화하고 있다. 또 홍동면의 대표 농산물인 유기농 쌀을 활용한 제품 생산 유통 및 체험을 통해 지역과 외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따뜻하고 윤리적인 금융으로

홍동 마을은 금융투자를 최우선으로 하고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금융시스템이 아닌 지역 내에서 자본이 머물고 순환하도록 하는 지역 화폐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 화폐는 지역 공동체에서 나눈 ‘신용’을 바탕으로 발급되는 것으로 0% 이자 혹은 기부를 위한 마이너스 이자로 발급된다. 과거 농촌 공동체는 서로 돕는 문화가 있어 돈이 없어도 먹고 사는 문제가 대부분 해결 되었으나 도시화와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농촌의 빈곤은 심화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 지역 화폐다.

지역화폐 '잎'

홍동면은 2001년부터 지역 화폐 도입 논의를 시작해 2012년과 2013년 주민들이 만든 협동조합 술집 ‘동네마실방 뜰’에서 실물 지폐 ‘뜰’을 유통하는 시범 사업을 추진해 본 후 2014년 실물 지폐 ‘잎’을 처음 발행하였다. 천 잎, 오천 잎, 만 잎 등 세 종류의 지폐를 발행하여 한국은행권과 1:1로 환전하거나 대출하는 방식으로 유통한다. 2017년 6월 홍성 지역 화폐거래소 ‘잎’이 공식 출범하여 현재는 비영리법인으로 등록하고 지역 화폐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잎’은 홍동면을 중심으로 한 가맹점 약 50개소와 매월 열리는 정기 장터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향후 홍성군 전 지역으로 확장할 계획이고 기업 간 결제에 지역 화폐를 이용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지역 화폐 ‘잎’의 정착은 추출적이고 약탈적 금융이 아닌 따뜻하고 윤리적인 금융을 실현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역 경제협동체로 소외된 이들을 포용하기

지역 경제협동체 ‘도토리회’는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 금융조직이다. 회원들의 공동출자와 곗돈(회비) 납부를 통해 협동기금을 만들고, 그 자금으로 공익적인 마을 사업에 투자하거나 생활에 필요한 자금이나 사업 자금을 주민에게 무이자로 융자를 해준다. 이 조직은 제도금융권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렵고, 지역 주민의 예금이 지역 내에서 사용되지 않고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창립된 마을은행이다. 도토리회의 두 가지 큰 특징은 첫째, 지역 내에서 사용되는 지역 화폐 ‘잎’으로 대출을 상환할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 대출 기여금 제도이다. 무이자로 대출을 받은 회원은 대출액의 월 1%에 해당하는 금액을 도토리회에 기여금 형태로 납입하게 되어있고, 그 돈은 다시 다른 회원의 대출로 쓰이도록 하고 있다. 도토리회의 사례는 지역의 자금이 지역에 머물며 지역의 금융소외계층 누구라도 조금의 도움으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씨앗이 되어주는 포용적 공공은행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민주적 경제모델로서 홍동 마을의 성공 요인

홍동면 사례에서 민주적 경제로서 지역순환경제를 실험하고 정착시킨 주요한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 내 교육의 선순환 모델이 구축되어 있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교육공동체를 통한 교육과 학습은 주민의 역량을 강화했고, 이는 지역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주민의 노력을 끌어내는 데 탄탄한 기초가 되었다. ‘홍성 환경농업마을’이 발간한 『생각하는 농민, 준비하는 마을 21세기 문당리 발전 백년 계획』을 살펴보자. 이 계획은 제삼자인 전문가에게 맡겨서 만든 보고서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고 주민이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미래를 직접 계획하고 발간한 보기 드문 사례이다.

둘째, 주민 스스로 참여와 연대에 기초한 마을 공동체와 사회적 경제조직이 활성화되었다. 공공선을 우선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여 조직한 공동체들이 상호 연대하며 마을의 필요한 요소들을 채워주고 있다. 2019년에는 마을의 개인과 공동체를 모두 연결하여 지역 전체 문제를 다루는 주민자치회를 결성하는 등 앞으로 커먼즈 영역의 수평적 연대를 위해 분투 중이다. 셋째,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지역순환경제의 실험과 도전이다. 아직은 지역 화폐 ‘잎’이나 도토리회 같은 지역은행의 역할이 초기 단계이지만 그 실험은 계속되고 있고, 마을의 공익 활동을 지원하고 마을 주민을 연결하는 중간지원조직 지역센터 마을활력소가 잘 정착하여 지속적인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희망의 씨앗 홍동마을이 남긴 과제

이처럼 홍동면의 사례가 민주적 경제와 지역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과제도 남아 있다. 첫째, 규모의 문제이다. 홍동마을의 지역순환경제 모델은 인구 3천여 명의 면 단위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 모델이 다른 규모의 지역 혹은 홍성군 전체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폐쇄성의 문제이다. 글로벌화 시장 자유주의의 대응으로써 지역화 지역순환경제를 실천하는 데 있어 오히려 폐쇄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지역 내 문제는 없는지 기존의 경제체제와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공생하고 상생할 수 있는지 방안이 필요하다.

셋째, 민주적 소유권의 문제다. 사회적 경제조직의 역할이 지역순환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 모델처럼 노동자 소유기업과 지역의 부를 만들기 위한 지역 앵커 기관의 조달력을 지역으로 환원하는 시도는 아직 없다. 또한 공유자산화나 공공은행 설립 등은 여전히 남은 숙제이다. 그럼에도 홍동면의 공동체 중심의 지역순환경제 실천 노력은 다른 지역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지역사회운동으로 발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지방소멸의 문제 앞에서 그리고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민주적 경제와 지역순환경제라는 과감한 실험이 우리 지역사회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김남현(동국대), 수이제 2025년 7호 pp. 48-57.

작가의 이전글여성의 커리어, 가정 그리고 공평성은 어떻게 얻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