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이었던 팀원이 퇴사 의사를 전해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복직예정이라고 통화를 했는데 둘째를 임신했다는 이유였다. 임신사실을 늦게 알게 되어 출산이 얼마 안 남은 데다가 복직을 하더라도 다시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을 써야 해서 죄송한 마음에 또 휴직을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1년을 빈자리로 남겨둔 상황에서 다시 1년을 비워야 한 다는 사실은 팀을 관리하는 내 입장에서 썩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어쩌면 퇴사 의사를 밝혀준 그녀가 차라리 고맙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경단녀가 될까 봐 두렵지만 용기 내어하는 퇴사였고 나 역시 동일한 문제로 고민해 봤던 시기가 있어서 조금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아직 복직까지 시간은 있으니까.
한 명과 두 명을 돌본다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나 역시도 둘째를 잠시 고민할 때 일을 그만둘 각오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둘째를 갖지 않은 건 내 일보다는 한 명으로도 충분하다는 남편의 의지가 컸기에 계획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닥치면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 역시 계획되지 않은 둘째 임신이었고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큰 부분은 일을 하는 부재의 시간에 돌봐줄 사람이었다. 이미 복직을 계획하고 어린이집과 부모님께 사정을 말해 둔 상황이었지만 한 명이 더 생기는 순간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아이를 맡기는 미안함과 수고스러움이 걱정이 되어 둘째까지는 맡길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모든 건 의지에 있다고 믿는 편이다. 여자로서 커리어를 이어가는데 육아라는 부분은 큰 걸림돌이 되는 게 사실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헤쳐가느냐에 따라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결정된다.
우리 엄마는 아이 셋을 낳고 35년 근속, 정년퇴직을 하셨다. 아주 오래전에는 일하는 엄마의 비율도 낮아 왜 우리 엄마는 회사를 갈까? 하며 집에 계시는 다른 엄마 들와 비교하기도 했다. 엄마가 35년간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할머니의 희생과 아빠의 지지 그리고 나와 동생들의 자립심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개인 사업이나 N잡러 등 회사를 다니지 않고도 돈을 벌고, 꼭 회사를 다녀야 하는 물음에 그럴 필요는 없죠.라는 답을 내놓는 시대이다. 그렇지만 내가 했던 일, 하고자 하는 일이 회사에서 이어져야 한다면 당장 퇴사하기보다는 경력을 위해서라도 다녀야 한다. 그녀의 일은 전문직이고 개인 프로젝트로는 이어갈 수 없는 일이다. 회사는 비교적 육아 지원이 좋은 편이라 힘들지만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육아 선배로써 잠시 몇 년만 잘 버티면 이후에는 많은 것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가족들과 좀 더 논의해 볼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보통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복직을 한 번씩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생각보다 높은 현실에 부딪혀 다시 사회 나오기는 복직보다 몇 배 더 힘들 것을 알고 있기에 조금 더 신중했으면 했다.
나 역시 복직을 할 때 많은 고민에 휩싸였다. 마침 일도 하기 싫어서 이 핑계로 퇴사를 할까도 했다. 그때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잠시 투자 기간이라고 생각해. 뭘 더 하겠다기보다는 그냥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아. 지금은 시간을 투자하는 기간이니까 당장 돈을 번 다는 생각이 아닌 커리어를 유지하는 목적으로 다녀야 해."
그래서 복직 후 3년 정도는 못하는 것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아침마다 등원하기 싫어서 떼를 부리는 아이 때문에 1년 동안 지각 60번을 했으니 근태도 별로 좋지 않았다. 월급의 반정도는 돌봐주시는 부모님께 드렸다. 남는 것을 생각하면 안 다니는 게 맞지만 이건 투자 기간이라 여기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힘든 시간을 겪고 나니 동일한 고민을 하는 동료에게 너도 해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커리어 유지보다는 아이 돌봄이 걱정되었고 부모님께 맡기는 게 마음상 불편하여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그녀는 더 생각해 본 후에 최종적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나 역시 더 이상의 조언은 해주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결정은 존중해 주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자리에 다른 지원자들보다 뛰어난 경력과 팀에서 원하는 능력을 가진 새로운 팀원을 뽑았다. 서류나 면접 과정에서 개인 사정은 묻지 않는 편이라, 입사 후 물어보니 워킹맘 6년 차라고 했다. 주어진 업무 외에 조금 더 높은 곳을 향한 배움의 기록과 10년 넘게 공백 없이 지내온 흔적이 담긴 이력서를 보며 그녀가 더욱 빛나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