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길로 가는 출근길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모습들이 보인다. 날씨, 바람의 세기, 습도와 같은 환경적인 부분 외에 길 사이마다 푸릇하게 펼쳐져 있는 나무와 꽃들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운이 좋게도 출근길의 보도블록 왼편이나 오른편에는 화단이 있다. 조경을 위해 일부러 심은 나무가 있고 정말 심은 것인지 자연스럽게 씨앗이 날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풀과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그리고 오늘은 보도블록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화단에 있어야 할 푸릇한 생명체가 보도블록 사이로 무수히 쏟아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정리되지 않은 잡초들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헤친다며 별로 쳐다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공공 근로자 요원의 투입이 얼마나 더디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떤 풀은 내 허리춤까지 자라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도시의 경관이나 지저분함은 잊은 지 오래였다.
보도블록의 좁은 틈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키가 쭉쭉 커가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했다. 베란다의 작은 화분에 씨를 심고 과연 잘 자랄까 노심초사하며 기르기를 여러 해이다. 씨앗이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는 시멘트 돌 사이가 0.5mm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인지. 저 돌 틈 사이가 집에 있는 작은 화분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니 주인이랍시고 식물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반기지 않는 곳에서 꿋꿋하게 제 살길 찾아 자리를 잡아 살고 있는 잡초지만 오지 말아야 할 손님이라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런 척박한 곳에서도 재탄생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반만 닮으면 좋으련만. 이런 잡초 같은 에너지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을까. 출근길 잡초를 보며 이 에너지를 본받아 앞으로 해야 할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 내어 본다.
최근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여러 개 시작했다. 기획자라는 역할로써 새로운 서비스 준비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업무의 범위가 넓어져 기획을 넘어선 마케팅의 영역까지 손을 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막막한 기분이 덮쳐온다. 너는 어디에서도 자랄 수 있는 풀이라고 하는 것처럼 기획의 영역은 어쩌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직종일지 모른다. 제품 기획, 서비스 기획, 출판 기획, 마케팅 기획, 전시 기획 등 어떤 분야마다 기획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고 앞으로의 시작과 끝을 그려본다는 점에서 어떤 환경이든 같은 행위를 반복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잡초 같은 직종 같기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근력을 가진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 기획 영역을 넘어 사업 기획과 마케팅 기획을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걸었다. 공부를 해야 하겠다, 자료를 찾아봐야겠다를 되뇌며 이 마음이 책상에 앉을 때까지 그대로 가져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메신저나 내 자리로 찾아오는 이가 어제보다 적기를 바라며 오늘의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고 다짐해 본다. 돌 틈사이의 풀들이 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듯이 나는 회사에 가고 일을 하러 왔으니 역할에 충실하여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