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 시간에 매일 하는 고민은 '무엇을 입을까?'이다. 딱히 떠오르는 옷이 없을 때는 옷장 문을 열고 우두커니 한참을 서 있는다.
'시간이 없는데...'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데 생각이 많은 편이다.
몇일 전 편하게 잘 입던 옷도
오늘은 영 기분이 아닌거다.
'이건 어제 입었고..'
'이건 오늘 입고 싶지 않고..'
도넛 가게에서 무엇을 고를 지 한참을 고민하는 것 처럼.
옷은 많은데 무엇을 입을지 떠오르지 않는 날이면,
그냥 셔츠다.
내가 셔츠를 이리도 좋아했던가?
셔츠는 뭔가 부담스러운 이미지다. 무슨 행사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그러니까 좀 갖춰 입고 싶을 때 꺼내어 허리를 꼿꼿이 세운 다음 조금 긴장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는 느낌.
한마디로 '불편한' 옷이다.
게다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입었을 때 얼굴형과 목으로 이어지는 어깨선이 참으로 셔츠와 안 어울리는 몸이다. 그래서 꼭 입으면 "안 어울려"가 단번에 나와 벗어던지고 다른 옷을 골라 입곤 했다.
생각해 보니 나의 가장 오랜 셔츠 시절은 교복이다. 흰 셔츠와 조끼 그리고 치마, 외투의 4피스 구성으로 된 옷을 6년간 입었다. 아침에 별 고민 없이 어제 걸어둔 셔츠와 치마, 조끼를 입었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니. 같은 옷을 연달아 입는 걸 꺼려하는 지금의 나에게, 상상할 수 없다.
후줄근하게 출근은 하고 싶지 않고, 편하게 입고 가면 동네 마실 나온 느낌이고, 잘 입으려니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그 사이를 셔츠가 메워준다.
셔츠에 치마든, 긴 바지든, 반바지든 무얼 입더라도 매칭 안 되는 것이 없고 너무 신경 쓰지도 너무 신경을 안 쓴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을 준다.
셔츠가 안 어울리는 몸이라 생각했었지만, 요즘은 너무 다양해진 디자인과 핏(fit) 덕분에 나의 단점을 싹- 가려주는 옷을 찾아 입는다. 게다가 오랜 의자 생활로 긴급히 돌출된 똥배도 사르륵 감싸주니 이리 편할 수가 없다.
괜히 직장인 룩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옷차림이 자유로운 회사에 다니고 있어 무엇을 입어도 상관이 없지만 일주일에 며칠은 셔츠를 꺼내 입게 된다. 대충 입어도 중간을 가는 느낌이랄까?
한 편으론, '다림질'을 해줘야 입을 수 있는 귀찮은 옷이기도 하다. 너무 구겨진 셔츠는 절대 그대로 입을 수 없다. 아주 오래전, 서울 생활을 막 시작한 사촌 오빠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이모는 셔츠 10개를 빨아 놓고 다 마르지도 않은 상태로 열심히 다림질을 하시는 엄청난 노하우를 선보였다. 이대로 마르면 내일 아침에 입겠다며 일주일은 끄떡없음을 안심하고 집을 떠나셨다. 그렇게 셔츠는 누군가가 잘 다림질을 해주면 선물 같은 옷으로, 집을 나서는 이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러 가니 정장은 아니더라도 셔츠 차림의 직장인들이 많이 보인다.
별 고민 없이 옷장에서 꺼내어 바쁜 아침 시간에 선택지를 줄여주는 그 '아이템'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