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로망이 실현된 날
우리 숙소 옆으로 하얏트 레지던스와 아코리스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나는 그 사이로 난 짧은 길을 유난히 좋아한다.
바쁜 도시 한가운데인데도 그 길로 들어서는 순간, 발검음의 속도가 느려진다.
여행 중에서도 매일 같은 길을 찾아가게 되는 건
그곳에 마음이 잠시 쉬어갈 자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를 가도 평이 좋아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 다녀보는 재미가 있다.
오늘은 그중 San Francisco Coffee를 골랐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닮은 듯, 간판도 컵의 로고도 모두 빨간색이다.
빨간 컵에 흰 SF 로고가 있었으면 더 예뻤겠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커피를 받았다.
평에 비해 맛은 무난했다.
아주 맛있지도, 아주 아쉽지도 않은.
그래서 오히려 부담 없이 하루를 시작하기 좋은 맛이다.
아침의 티타임은 늘 우리의 회의 시간이다.
오늘 하루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어디까지 움직이고 어디에서 멈출지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설 연휴를 맞아 일행 중 두 가족의 아빠들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아빠들이 오면 아이들은 맡기고, 엄마들끼리만의 밤을 보내보기로 약속해둔 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낮에는 멀리 나가지 않고, 이 동네에 머물기로 했다.
몽키아라 옆에는 스리 하타마스(Sri Hartamas)라는 지역이 있다.
지도상으로는 바로 옆이지만, 쿠알라룸푸르 특유의 불친절한 횡단보도 체계 덕분에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작년에는 시그니처 호텔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서 막혀버렸다고 한다.
비포장된 다른 길도 있지만,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스리 하타마스는 몽키아라와는 결이 다르다.
정돈되고 세련된 몽키아라와 달리 이곳은 조금은 낡고, 우리나라의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이곳에만 있는 가성비 좋은 마사지샵과 맛집들 때문에 결국 한 번쯤은 찾게 된다.
원래 목적지는 '마마킴(Mama Kim)' 이라는 식당이었다.
‘사우나미’라는 독특한 메뉴가 있는 곳이다.
돌솥 같은 그릇에 채소와 면을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음식인데,
입에 꽤 잘 맞아 이번에는 꼭 두 번 이상 먹고 가리라 다짐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평일인데도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 번째 선택지로 향했다.
Jin Xian Hongkong.
작년부터 항상 줄이 길어 궁금만 했던 딤섬집이었다.
알고 보니 타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맛집이었다.
딤섬은 물론이고 가지 어묵 조림, 연잎밥, 등갈비까지 하나같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가격까지 합리적이었다.
아이 저녁으로 먹이려고 등갈비를 하나 더 포장했는데, 입맛 까다로운 딸아이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날의 식사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원 몽키아라(1 Utama) 쇼핑몰로 이동했다.
아이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튜브 베드를 사기 위해서였다.
1 Level에 있는 스포츠용품 전문 매장에서는 작년에도 킥판을 샀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아무것도 안 가져왔는데 아이들이 침대처럼 펼쳐놓은 튜브를 타고 노는 모습이 부러웠나 보다.
7,500원 정도에 커다란 튜브를 하나 샀다.
수영장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를 보며 ‘진작 사줄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아빠들이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을 거의 떠넘기듯 맡기고 나오는 것이 미안했지만,
오히려 오늘이 아빠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쉬는 날일 것 같아 정한 일정이었다.
오늘만큼은 엄마들의 밤을 보내기로 했다.
원래 가고 싶던 바들은 하루 전 예약이 불가능했고, 그나마 창가 예약이 가능했던 곳이
트레이더스 호텔의 Sky Bar였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람이 과하지 않아 조용했고, 우리가 앉은 자리는 트윈타워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자리였다.
힙한 공간보다 조금 한산한 곳이 더 좋은 아줌마들의 취향에도 딱 맞았다.
작년에는 아이와 단둘이 와서 이런 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날의 칵테일은 유난히 달았다.
설 연휴 일정 이야기, 앞으로의 생활, 아이와 육아, 각자의 직장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일행 중 함께하지 못한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마음에 걸려 일찍 몽키아라로 돌아와
163몰의 The Social로 자리를 옮겼다.
모두가 모인 완전체의 밤.
칵테일 한 잔 더와 함께 수다는 조금 더 깊어졌다.
그날 밤은 그렇게, 여행의 기억보다 먼저 리의 마음에 남았다.
Starbucks: 한국보다 탄맛 덜함, 에스프레소 테이크아웃 추천
Kenhills Coffee: 163몰 GF, 커피 맛 좋음
Lisette’s Café: 애프터눈 티 2인 89RM (비주얼용)
Ra-ft: 키즈 메뉴 있음, 아코리스 GF
VCR Cafe: 소프트쉘크랩 버거 강추
Watercolour Bakery: 서비스차지 없음, 망고치킨 샌드위치 추천
Kopenhagen Coffee: 브런치 커스터마이징 가능
Common Man Coffee Roasters: 스리하타마스, 맛과 플레이팅 최고
※아이스커피는 위생 문제(얼음)로 배탈 가능성 있어서 장이 민감하다면 따뜻한 커피가 안전하다.
THIRTY8 (그랜드 하얏트): 아이 동반 가능
Vertigo (반얀트리): 야외, 아이 동반 불가
Blackbyrd KL: 아이 동반 가능, 런치도 추천
Wetdeck (W호텔): 힙한 분위기, 흡연 가능
Sky Bar (트레이더스 호텔): 조용, 예약 필수, 저녁에는 아이 동반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