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없이 시작했지만 꽉 채운 하루

KL 설 연휴의 풍경 1

by Harest

✨KL 열두 번째 기록: 스타벅스 보냉가방, 바투동굴, MEI KENG FATT, 티티왕사공원


말레이시아에서는 음력 설, Lunar New Year를 꽤 성대하게 보낸다.

중국계 인구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문화 덕분에 각 종교의 중요한 날이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에는 거의 매달 연휴가 있다.

국립박물관 도슨트 투어를 들었을 때 선생님께서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는데 학비는 비싼데 매달 쉬어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만큼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모양이다.

오늘과 내일은 우리나라의 설 연휴처럼 말레이시아도 설 연휴다.
원래는 설 앞뒤로 쉬지만, 1월이 극성수기인 만큼 학원에서는 이틀만 쉬고 설 다음 날부터는 정상 수업을 한다고 했다.


◆ 아점 후, 욕심 없이 시작한 하루

20250129_104039.jpg 집에서 차린 아침식사

오늘은 아점을 먹고 조금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장 봐두었던 야채들을 손질해 구웠다.
집에 있는 것들로 차린 식탁이지만, 충분히 훌륭한 아침 식사가 완성되었다.

아이는 자신이 직접 볶은 야채를 아주 만족스럽게 먹었다.

여행 중 가장 사치스러운 순간은 아마도 이런 느린 아침일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장면 하나로 오늘 하루가 이미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다.


◆하얏트 스타벅스 & 25주년 보냉백

20250129_124943.jpg
20250129_125907.jpg

아이와 산책 삼아 하얏트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말레이시아 스타벅스 25주년 기념 보냉백이 계속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음료 두 잔 이상 구매 시 25링깃, 우리 돈으로 약 8천 원.
민트색 가방은 생각보다 더 예뻤다.

메뉴판을 보다가 잠시 멈칫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10링깃 정도인데, 에스프레소는 12링깃으로 더 비쌌다.

직원에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건데 샷만 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럼 에스프레소를 사는 게 어때?”라고 되묻는다.
그게 더 비싸서 물어본 거라고 하니, 직원은 웃으며 흔쾌히 그렇게 해주었다.

보통은 에스프레소가 더 싼데 왜 비싼지를 물어보니 아메리카노는 1샷이 들어가고, 에스프레소는 2샷이 들어가서라고 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며 한 잔은 내일 마실 용도로 텀블러에 받아왔다.
텀블러 할인까지 챙기고 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직원은 한국의 스타벅스 가격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메리카노가 14링깃 정도 하고, 에스프레소는 조금 더 저렴하다고 하자 너무 비싸다며 깜짝 놀란다.
이곳 사람들 역시 쿠알라룸푸르의 물가도 비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의 물가 이야기를 들으면 거의 까무러치듯 놀라곤 한다.

반면 우리가 느끼는 쿠알라룸푸르는 아주 저렴하지는 않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나의 건강도, 아이의 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에 조금 더 비싸더라도 되도록 깔끔한 곳에서만 식사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 드는 비용의 60~80% 정도 가격으로 훌륭한 퀄리티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도시다.

직원과 즐거운 스몰토크를 마치고 민트색 가방을 들고 나오며 하루의 기분이 한 톤 밝아졌다.



◆ 내가 왜 작년에 안 갔을까: 힘들었던 바투동굴

20250129_152729.jpg
20250129_154654.jpg


느지막이 모든 가족이 로비에 모였다.

오늘은 아빠들이 온 김에 쿠알라룸푸르 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첫 번째 행선지는 바투동굴이었다.

몽키아라에서 차로 약 30분.
272개의 무지개색 계단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석회동굴 안에는 힌두교 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다.
272라는 숫자는 사람이 평생 지을 수 있는 죄의 개수를 의미하며, 이 계단을 오르며 속죄한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고 한다. 계단이 세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과거·현재·미래를 뜻한다. 그래서 왼쪽으로 오르면 과거의 죄를 씻고, 가운데를 오르면 현재의 죄를 씻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미래의 죄를 미리 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랩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무루간 동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루간 동상 중 하나로, 입구에서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1~2월에는 힌두교 최대 축제인 타이푸삼이 열리는데 이 기간에는 수백만 명의 힌두교인들이 모여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방문객들도 맨발로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하니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설 연휴의 바투동굴은 그에 비하면 사람이 아주 많아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원숭이가 난폭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람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계단을 오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왔더라면… 오늘 나는 몽키아라에서 쉬고 있었겠지.'
여행지에서의 후회는 늘 사소한 체력에서 시작된다.


내려오는 길, 전통 의상을 입고 무릎과 팔꿈치로 계단을 기어오르는 인도 여인을 보았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만큼 힘들어 보였지만, 얼마나 간절한 믿음이 있어야 저런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인간의 믿음과 소망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 하나로 바투동굴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기도의 장소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이를 동반한 우리 일행에게 바투동굴은 솔직히 아주 만족스러운 코스는 아니었다.

올라가기 전에는 유료 화장실만 있고, 위생 상태도 장담하기 어려워 물도 일부러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쿠알라룸푸르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장소이니 '한 번 와봤다.'는 경험으로는 충분했다.


◆ 칠리크랩으로 기분 회복하다: MEI KENG FATT

BandPhoto_2025_01_30_01_01_03.jpg
Kuala Lumpur 2025-JAN.29th-66334493656.jpg
Kuala Lumpur 2025_사진_20250129_14.jpg
Photo by 양작가님

서둘러 빠져나와 향한 곳은 칠리크랩 맛집 MEI KENG FATT.

지인 추천으로 찾은 곳인데 싱가포르보다 가격은 절반 이하, 맛은 매우 훌륭했다.
특히 버터밀크 크랩은 고소하고 달달해서 아이들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다.

Fried Bun과 볶음밥을 함께 시켜 소스에 볶아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사진에는 steam bun이지만 뒤에 시킨 fried bun이 훨씬 맛있었다.)
싱가포르에서 먹었던 팜비치 칠리크랩에 비해 가격은 1/3~1/4 수준인데 만족도는 훨씬 높았다.

바투동굴에서 차로 약 17분, 티티왕사공원에서는 11분 정도 거리라 근처 일정과 묶기에도 좋은 식당이다.


아이는 직접 망치로 크랩을 두드리며 먹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보는 재미, 먹는 재미를 모두 챙길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진정한 KL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 티티왕사 호수 공원

20250129_193111.jpg
BandPhoto_2025_01_30_10_52_21.jpg
SE-fb75e201-a7d7-43ea-adbf-01fff7e379bd.jpg

식사를 마치고 지도를 보니 티티왕사 호수공원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작년에 아이와 다녀온 뒤, 올해 꼭 다시 오고 싶었던 곳이다.

트윈타워 전망대 카페에서 멀리서 커다란 분수가 치솟는 모습을 보고 궁금해 찾아왔던 곳인데 커다란 호수를 중심으로 조성된 규모 있는 공원이다.

작년에는 이곳에 오기 전, 바로 옆에 있는 내셔널 아트 갤러리를 먼저 들렀다.
미술관에 대한 나의 기대와 달리 딸아이는 현대적인 작품들 앞에서 점점 흥미를 잃어갔고, 갤러리를 나와 티티왕사공원으로 가는 길을 헤매는 동안 아이의 짜증은 최고조에 달했다.

‘미술관은 나의 욕심이었나’ 하는 생각이 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대여해 아이와 함께 공원을 한 바퀴 돌기 시작하자 그 모든 감정은 금세 사라졌다.
커다란 호수와 하늘 끝까지 닿을 것 같은 분수,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쿠알라룸푸르의 여유를 온몸으로 느꼈다.

입구에 하나뿐인 레스토랑도 선택의 여지 없이 들어갔는데 맛과 분위기 모두 만족스러웠다.
옆 테이블에서 생일파티를 하던 아이가 딸에게 풍선을 나눠주던 따뜻한 기억도 남아 있다.

그래서 올해도 꼭 다시 오고 싶었다.

하지만 설 연휴의 티티왕사공원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쉽지만 자전거는 포기하고 공원 곳곳의 포토스팟에서 사진을 찍고 어린이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가장 행복하다.
예쁜 야경도, 호수에 비친 랜드마크도 아이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한참을 놀며 아이도 어른도 쿠알라룸푸르의 저녁을 충분히 즐겼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결국 계획보다 선택이, 명소보다 마무리가 더 오래 남는다.

그렇게 오늘의 쿠알라룸푸르는 오래 기억될 하루가 되었다.


<말레이시아 100배 즐기기 11>


1. 말레이시아 스타벅스 즐기기

스타벅스 텀블러 사용 시 3링깃 할인해 준다.(우리나라와 달리 스타벅스 텀블러만 할인해줌)

앱 가입 시 무료 쿠폰, 1+1, 리워드 혜택이 풍부하다.

한국보다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시기마다 프로모션이 다양하니 꼭 미리 확인해보자.


2. 바투동굴, 알고 가면 이런 곳

272계단: 평생 지을 수 있는 죄의 수를 상징한다.

과거·현재·미래를 의미하는 세 갈래 계단을 오르며 속죄한다고 믿는다.

타이푸삼(1~2월) 기간 매우 혼잡하니 이 기간은 반드시 피하자.


☞ 아이 동반 여행자라면

체력 부담이 크고 화장실 환경도 불편하니 '한 번 경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적당하며, 과감히 패스하는 것도 괜찮다.


3. 티티왕사 호수공원 & 내셔널 아트 갤러리

아이 동반이라면,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내셔널 아트 갤러리와 티티왕사 호수공원은 매우 가까워 함께 묶어 방문하는 코스로 자주 추천된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두 곳을 모두 소화하는 일정은 쉽지 않다.

내셔널 아트 갤러리: 주로 현대 미술 위주의 전시, 아이의 흥미도가 낮을 수 있음, 보통 오후 5시 마감

티티왕사 호수공원: 자전거, 놀이터, 오리배 등 체험 요소 풍부, 아이 만족도가 매우 높은 장소, 더위를 피하려면 오후 5시 이후 방문 추천


1) 티티왕사 호수공원 특징

큰 호수를 중심으로 조성된 대형 공원

KL 랜드마크 3곳(트윈타워, KL타워, 메르데카118)을

호수와 함께 감상 가능

자전거 대여, 오리배, 카누, 놀이터 등 체험 다양

낮에는 매우 더워 오후 5시 이후 방문 추천, 야경 예쁨

2) 공원 입구 레스토랑

<White & Black Lakeside>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등 메뉴 구성

가격대는 다소 있지만 맛과 분위기 모두 만족

호수 뷰를 즐기며 쉬기 좋음


3) 아이 동반 여행자 정리

내셔널아트갤러리와 가까워 함께 오는 사람이 많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티티왕사공원만 단독 방문 추천

자전거 대여는 주말·연휴에 대기 시간이 길 수 있음

놀이터만 이용해도 아이 만족도는 충분히 높음


4) 자전거 대여소 위치

아래 지도에서 빨간 동그라미 표시된 곳


제목_없음.png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11화머물고 싶은 마음을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