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지나온 시간, 아직 남아 있는 여유

반 밖에 안 남았어, 반 이나 남았어!

by Harest

KL 한달 살기 열 다섯번째 기록


이곳에서의 생활도 어느새 보름을 넘겼다.
반이나 지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다가도, 아직 반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다시 안도한다.
하루하루가 유독 빨리 흘러가서,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을 매일같이 느끼며 지낸다.




◆아이표 아침, 냉장고 털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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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랑 함께 차린 아침식

아침은 아이가 직접 손질하고 볶은 야채볶음으로 시작했다.

냉장고 털기 프로젝트로 시작한 메뉴였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는지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새로 도전한 쥬스 브랜드 중 구아바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오렌지는 합격이란다.
이렇게 다시 살 것과 다시는 안 살 것이 하나씩 정리된다.
한 달 살기의 소소한 데이터가 쌓여가는 순간이다.



◆ 작년에 못한 실내 암벽등반 드디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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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끝난 주말 아침.

아빠들이 온 가족과 그렇지 않은 팀으로 나뉘어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작년에 못 해본 실내 암벽등반에 도전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Camp5, 그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1 Utama 지점이다.


KL에는 이곳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체험이 아주 많지는 않다.
대부분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비용이나 시간 때문에 쉽게 결심하지 못할 경험을
이곳에서는 부담 없이 ‘입문’해볼 수 있다.
암벽등반도 그런 선택 중 하나였다.


오늘은 10살 친구도 함께라 더 즐거웠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로프 없이 가장 낮은 단계부터 차근차근 올라갔다.
한 시간 동안 서서히 레벨을 높여가며 아이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벽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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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지켜보며 같이 온 친구 엄마와 커피를 마셨다.
Camp5 안에는 작은 카페가 있는데,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꽤 괜찮은 커피가 나왔다.
예상 밖의 맛있는 커피 한 모금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새 아이들은 더 높은 곳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섭지만 홀드를 하나씩 확인하며 천천히 올라간다.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까지 오른 뒤,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딸의 얼굴에는

‘해냈다’는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늘도 또 하나의 도전을 무사히 마쳤다.


다만 내려오고 나서는 두 아이 모두 “또 하고 싶지는 않아”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체험은 무한 반복하고 싶어 하던 딸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 체험은 딱 한 번이면 충분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또, 다음에 다시 하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정리된다.


◆ 고놈의 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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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아이들의 강력한 선택으로 또 두끼를 갔다.

솔직히 말하면, 이곳에만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게다가 두끼는 한국이 훨씬 저렴하다.


한국에 가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굳이 여행지에서 비싸게 먹는 건 늘 아깝다.
그래도 아이들이 그렇게 행복하다면, 오늘은 그걸로 충분하다.



◆ Brands Outlet, 여름옷 쇼핑

식사 후 쇼핑몰 지도를 보다 Brands Outlet을 발견했다.

여름옷도 필요해 가볍게 들렀다.
원우타마 올드윙 1층에 위치한 이곳은
부킷빈탕 지점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당장 입을 옷을 사기엔 충분했다.
남은 기간 편하게 입을 옷 몇 벌을 고르고

지하로 내려가 Oloiya 육포, Berly's 초콜릿까지 야무지게 사서는 양손 두둑이 숙소로 돌아갔다.



◆그녀들의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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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자마자 딸래미들의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새로 산 옷과 기존 옷을 섞어 입으며 신이 났다.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음악까지 틀어줬더니 갑자기 집이 런웨이가 되었다.
그녀들의 패션쇼는 무려 1시간 20분이나 이어졌다.

어쩜 암벽등반하고 쇼핑까지 하고 와서 지치지도 않는지...

새삼 아이들의 체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 하루의 마무리는 Brew house


저녁에는 아빠들이 아이들을 봐주고, 엄마들만 외출했다.

GF층의 Brew House로 향했다.

둘, 셋씩은 자주 왔지만 다섯 명 완전체는 처음이라 직원이 “New Face!”라며 반겨줬다.

시원한 생맥주와 바삭한 감자튀김.
이 조합은 언제나 옳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유독 그리울 맛이다.
아마 이 더운 날씨가 더해져서 더 맛있게 느껴졌을 것이다.

한참을 수다 떨다 나오는데, 친해진 직원이 “See you tomorrow”라고 웃으며 인사했다.
그 유쾌함 덕분에 하루의 끝이 더 기분 좋게 마무리 되는 느낌이었다.


<쿠알라룸푸르 100배 즐기기 15>

아이와 쿠알라룸푸르에서 체험 일정을 짤 때는 ‘특별한 체험’보다 ‘실내 + 짧은 동선’이 훨씬 중요하다.

KL은 날씨가 덥고 햇볕이 강해서 야외 일정은 체력 소모가 크고, 낮 시간대에는 쇼핑몰 중심의 실내 체험이 훨씬 수월하다.

실내 체험 + 식사 + 커피 + 쇼핑이 한 공간에서 해결되는 곳을 기준으로 잡으면 아이도, 어른도 일정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동을 많이 해야 하는 일정을 잡는 욕심은 오히려 한 달 살기를 더 힘들게 만들 수 있으니 욕심은 금물이다.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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