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주는 안도감
아침 공기가 유난히 가볍게 느껴지던 날이다.
작년과는 다른 풍경 속에서, 아이의 첫 등원이 시작되었다.
로비에 모인 여섯 아이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정겹다.
작년엔 아이와 나, 둘뿐이던 발걸음이 올해는 작은 대열처럼 출발한다.
아이들은 지나가다 만난 도마뱀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첫 등원의 긴장보다 즐거움이 조금 더 앞선 표정을 짓는다.
도보 1분.
이 짧고 편안한 거리 덕에 아침의 여유가깃든다.
원장님은 1년 만에 만난 아이를 한눈에 알아본 듯 반갑게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 따뜻한 순간을 바라보며 ‘올해도 즐거운 시간이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아이를 학원에 맡기고 엄마와 나는 이슬람예술박물관으로 향했다.
작년에 아이와 함께 왔을 땐 아이의 지루함에 마음껏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한국어 도슨트 투어가 생겼다는 소식에 미리 예약해두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되는 시간이었다.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낯설던 문양과 건축 양식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졌다.
내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모스크들도 저마다의 서사가 있었고,
세계 각지에 이렇게나 많은 모스크가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웠다.
사실 작년 쿠알라룸푸르에서 한 달 살기를 하기 전까지는 이슬람교와 히잡을 쓴 사람들에 대해
다른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또한 하나의 문화임을, 그리도 또 하나의 생활모습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된 계기는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그들의 너그러운 시선 때문이었다.
더운 나라에서 머리에는 히잡을 쓰고 팔 다리를 모두 다 긴팔로 가린 사람이 있는가하면
미국이나 유럽의 한 여름에 볼 수 있는 레깅스에 민소매의 차림의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만의 '편안함'을 가지고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이 문화에 대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박물관 안의 예술품을 감상하다보니
화려한 그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도 더 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투어가 끝나니 싱가포르 여행의 여파인지 엄마가 조금 힘들어하셨다.
시내에서 점심을 해결할까 하다 결국 숙소로 돌아와 쉬기로 했다.
덕분에 더 천천히, 더 가볍게 하루를 이어갈 수 있었다.
JAYA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며 작년에 마셨던 고소한 병우유도 다시 챙겼다.
병을 깨끗이 씻어 가져오면 다음 구매 때 10링깃 할인을 해주는 작은 보너스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생활을 두 번째 이어가면서 이런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가 참 든든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생수와 가장 비슷한 생수가 무엇인지, 어떤 쌀로 밥을 하면 좋을지,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는 어떤 것인지, 어떤 브랜드의 요거트가 맛있었는지와 같은 사소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한 달 살기를 하기 시작하면 처음 일주일 정도는 그 생활에 적응하고 세팅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기에, 애써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그 익숙함이 오늘따라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아이를 낳기 전엔 새로운 곳을 가는 설렘이 좋았다.
해외든 국내든 한 번 간 여행지를 다시 찾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긴 후 낯선 환경에서 오는 긴장이 커져서인지 늘 익숙한 장소를 되찾게 된다.
n번째 갈 수록 그곳에 갔을 때 새로운 정보를 찾아야 하는 에너지는 줄어들고,
그 시간과 공간을 더 여유롭고 온전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도 다시 몽키아라를 선택했을 때 새로운 곳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음을 도착하는 순간부터 알아차렸다.
다시 살아보는 도시가 이번에는 어렵지 않고 첫 순간부터 힐링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고 우리는 수영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두 동으로 나뉜 주상복합인데, 한 동은 5층에 수영장이 있는 오크 스위트, 다른 한 동은 41층 인피니티풀이 있는 오크 레지던스다.
일행 중 한 팀이 레지던스에 묵는 덕에 올해는 두 곳을 모두 이용할 수 있었다.
작년엔 41층 수영장이 너무 궁금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어 발길을 들이지 못했었던 곳.
탁 트인 KL 시티뷰를 내려다보니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KL의 랜드마크 타워 3개(페트로나스 트윈타워, KL타워, 메르데카118)가 모두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정말 KL에 온 것이 실감났다.
작년에 메르데카 118은 한창 준공중이었는데 그 사이 완공되었다고 하니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끝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나와 엄마는 풍경과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사진을 남기느라 바빴다.
저녁은 ‘파라다이스 다이너스티’에서 포장해왔다.
작년 마지막 날, 마지막 끼니로 선택했을 만큼 이 곳의 샤오롱바오를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딘타이펑이 유명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꼭 이곳을 가보기를 추천한다.
딘타이펑 보다 조금 더 깊은 맛의 육수가 흐르는 샤오롱바오를 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샤오롱바오를 먹으려면 이곳의 두배 이상의 가격을 줘야 하므로
여기 있는 동안 많이 먹고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샤오롱바오, 새우완탕면, 매운 딤섬, 공심채 볶음.
엄마가 계신 덕에 메뉴는 더욱 풍성해졌다.
첫 입을 베어 물었을 때의 기분 좋은 감탄 또한 그대로였다.
익숙한 곳에 다시 온다는 건 여행의 설렘을 반쯤 내려놓고 마음의 안정과 느긋함을 채우는 일 같다.
작년엔 모든 것이 새로워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올해는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몸에 익는 풍경들이
나를 편하게 품어준다.
여행이 ‘도전’에서 ‘머무름’으로 바뀌는 시간.
그 변화가 오늘 하루에 고요하게 스며 있었다.
아는만큼 보인다!
한국어 도슨트 투어를 신청해서 이슬람의 예술과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알아보세요.
특히 말레이시아 국립 박물관은 말라카 투어가 계획되어 있다면 꼭 그 전에 듣고 가시는 것을 추천한다.
말레이시아 역사에서 말라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때문이다.
1. 이슬람 예술 박물관(Islamic Arts Museum Malaysia)
한국어 가이드: 매주 월요일 오전 10:30
운영 방식
- 3~6월 & 9~12월: 워크인
- 1~2월 & 7~8월: 예약제
소요 시간: 60~90분
입장료: 성인 20링깃 ,학생(18세 미만) 10링깃, 만 6세 이하 무료
2. 말레이시아 국립 박물관
한국어 가이드
- 매주 화·수요일 10:10 - 매월 둘째·셋째 토요일 10:10
운영 방식
-3~6월 & 9~12월: 워크인
-1~2월 & 7~8월: 예약제
소요 시간: 90~120분
입장료 : 성인 5링깃, 어린이(6-12세) 2링깃, 6세 미만(무료)
※ 일정은 변동 가능성이 있으므로 네이버 카페 ‘마이말레이시아’에서 '한국어 가이드'로 검색해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