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사람 손을 타고 종횡무진 옮겨다닌 민들레 이야기
새로운 곳에 가면, 주변에 자라는 식물이 달라졌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벼가 자라는 논 대신, 밀이 자라는 밭. 하지만, 어딜 가나 잘 자라는 식물이 있으니, 바로 민들레 (Taraxacum officinale)다.
누구나 한번쯤 훅 민들레 씨를 불어 바람에 날려 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날려 보낸 민들레 씨는 보통 2m 정도 날아가지만, 보다 덥고 건조한 기후에는 더 멀리 날아갈 수도 있다. 민들레가 속한 국화과 식물 중, 민들레처럼 갓털을 타고 제일 멀리 날아간 기록은 150km다.
민들레의 갓털은 아주 얇고 가느다란 필라멘트 여러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항상 100개 정도의 필라멘트가 갓털 하나를 만드는데, 이것이 민들레 씨가 잘 날 수 있는 비결이다. 필라멘트 여럿이 마치 막을 형성한 것처럼, 갓털 위쪽에서 돌풍이 생겨 공기 저항을 만들면서 민들레 씨가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게 해준다. 이론물리학자들은 이런 공기저항을 만드는 데 '100개'라는 필라멘트 갯수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원리는 기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향후 안정적인 드론 비행과 같은 기술에 응용될 가능성이 있다.
바람이 부는 방향도 민들레 씨가 날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리 폐활량이 좋아도 한번에 민들레 씨를 모두 불어낼 수는 없다. 그건 바로, 민들레 씨가 바람에 날아가기 전까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갈고리 모양으로 되어 있어, 위쪽으로 향하는 바람이 불어야만 갈고리가 풀리기 때문이다. 마치 옷에 달린 훅을 한쪽 방향으로만 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 있는 능력 덕분에 민들레는 곳곳에 퍼져 있지만, 전세계 모든 곳에 바람만 타고 이동하지는 않았다. 흥미롭게도, 민들레가 1620년 북아메리카로 이주하던 청교도들의 배 '메이플라워 호'에 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것도 정식으로! 많은 동식물, 특히 잡초가 우연찮게 대서양을 오가는 배에 탔던 반면, 민들레는 건강 상의 효능을 인정 받아 사람들이 '모시고' 왔다고 전해진다.
1638년과 1663년, 두 번에 걸쳐 뉴잉글랜드를 방문한 존 조슬린 (John Josselyn)은 '잉글랜드 인들이 뉴잉글랜드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자란 식물들 (Of Such Plants as have sprung up since the English Planted and kept Cattle in New-England)에도 민들레가 등장한다. 근 20년 사이에 민들레는 아메리카 대륙에 빠르게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250만 년 전인 빙하기 (플라이스토세; Pleistocene) 때,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아 베링 해협이 땅이었을 때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민들레'가 넘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민들레'가 우리가 아는 '민들레'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민들레가 속한 Taraxacum 속 식물은 실제로 캐나다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특히 북극 근처와 캐나다 동부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그 중 일부 종은 민들레 (T. officinale)와 매우 비슷해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북아메리카의 민들레가 유럽에서 건너왔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 2017년, 오하이오 주립대의 카트리나 코니쉬 (Katrina Cornish) 팀은 미국 곳곳에 민들레를 수집해, 이를 유라시아에서 수집한 민들레와 비교했다. 민들레 중 일부 종은 무수정생식 (apomixis)가 가능하다. 이는 유성생식 없이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생식 방식이다. 유성생식을 하게 되면 정자와 난자에서 염색체가 한 쌍씩 이(2)배체를 이루게 되지만, 무수정생식을 하면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론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배수가 무의미해진다. 연구 결과, 코니쉬 팀이 수집한 미국의 민들레는 '모두' 무수정생식을 하는 삼배체였다. 그에 반해 유럽에서 수집한 민들레는 유성생식을 하는 이배체와 무수정생식을 하는 삼배체가 공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무수정생식을 하는 민들레가 대부분 건너왔음을 의미한다. 물론 반론도 있다. 삼배체 민들레가 아메리카 대륙에 더 잘 적응했을 뿐이고, 이배체 민들레가 적응하기에는 대서양을 넘어 온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누가 맞았는지, 이 진화 실험은 몇 백, 몇 천 년 후에나 판가름이 날 예정이다.
바람을 타고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퍼진 후, 사람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퍼진 민들레. 이쯤 되면, 세상 전체가 민들레 밭이 아닌 게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천하의 민들레도 이미 다른 식물이 잘 뿌리내린 곳에서는 자랄 수 없다. 가축이 땅을 짓밟은 곳, 벌목이 되어 벌건 흙이 드러난 곳,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콘크리트 틈이 민들레가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곳이다. 민들레는 인류가 개발이라 부르며 헤집어 놓은 땅을 상징하는 식물이다.
참고 문헌
민들레 갓털이 만드는 소용돌이에 관한 논문
Cummins et al. (2018) PMID: 30333579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18-0604-2
Ledda et al. (2019)Flow dynamics of a dandelion pappus: A linear stability approach. Phys. Rev. Fluids.
바람의 방향이 민들레 비행에 미치는 역할에 관한 논문
Shields et al. (2025) PMID: 40925555
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doi/10.1098/rsif.2025.0227
존 조슬린의 민들레
Crosby, Alfred. Ecological Imperialism : The Biological Expansion of Europe, 900-1900. Second edition. Chapter 7. Weeds
Stewart-Wade et al. (2002) The biology of Canadian weeds. 117. Taraxacum officinale G. H. Weber ex Wiggers. Can. J. Plant Sci.
Iaffaldano et al. (2017) Genome size variation among common dandelion accessions informs their mode of reproduction and suggests the absence of sexual diploids in North America. Plant Syst Ev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