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헌과 유전학이 알려주는 가지의 변천사
아주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나고 자란 식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일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신사임당 초충도 (신수3550)는 10폭에 달하는 병풍이다. 다양한 꽃과 채소 그림이 곤충과 함께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 디테일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과연 곤충이 진짜로 그림에 앉았다는 소문이 날만하다.
그 중 가지 그림이 유독 인상적이다. 붉게 자줏빛으로 익어 가는 가지는 오늘날 마트에서 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마트 가지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 눈에 띈다. 바로 꼭지, 혹은 꽃받침에 달린 가시다. 신사임당은 왜 가지에서 볼 수 없는 가시를 저렇게 열심히 그렸을까?
가지는 아시아 문명에서 아주 오랫동안 키워 오던 작물이다. 중국 문헌 기록으로는 기원전 59년, 왕포의 <<동약>>이라는 책에 가지 묘종을 옮겨 심는 이야기가 등장해, 이 때부터 이미 가지(茄子)를 키워왔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서는 그보다도 이전에 가지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2008년 학술지 <식물학 연보 (Annals of Botany)>에는 중국 고문헌에 기록된 가지에 대한 묘사를 분석해 시대에 따라 변해 온 가지의 모습을 추적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일단 12-13세기 기록에는 가지가 동그랗다는 표현이 등장하다, 14세기부터 길쭉하다는 묘사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묘사로 볼 때, 신사임당의 그림 속 가지의 형태는 15세기라는 시기와 비교적 잘 맞는다.
한편 13세기 송나라의 왕개(王介)는 <<이참암본초>>라는 책을 편찬하며 각종 식물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여기에도 가지 그림이 남아 있다. 신사임당이 그린 가지보다 훨씬 동글동글한데, 가시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가시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식물학 연보>의 논문 저자들은, 중국 고문헌 기록에는 '가시'에 대한 내용이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아,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다. 약초로서의 효능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에게 꽃받침의 가시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작물로 재배되는 가지 중에도 꽃받침에 가시가 있는 품종들이 있다. 다만, 수확을 하고 운반을 하기에 가시가 없는 것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육종 과정에서 잔가시로 변한 품종이 선호되면서, 신사임당의 그림 속 가지와 같은 무시무시한 가시를 보는 게 어려워졌을 뿐이다. 이 가시는 가지의 조상인 Solanum insanum에서는 꽃받침 뿐만 아니라 줄기와 잎에서도 발견된다. 현대 과학자들은 아예 가시 발달에 꼭 필요한 유전자를 찾아내, 가시가 아예 없는 가지를 만들기도 했다. 이 유전자는 장미의 가시 발달에도 필요한 유전자라 가시가 하나도 없는 장미도 조만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끊임없이 육종을 하며 작물을 변화시켜왔고, 옛 그림에는 그 흔적들이 남았다. 그러니 다음에 박물관에 가서 예전에 그려진 채소 그림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면, 그건 화가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채소가 변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