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나는 깡통도 보석이라면 믿을까 2

빛나게 그냥 두지 그랬어

by 한숨

20대 중반이 넘어 사회로 와보니,

고졸로 남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의 시간은 총알보다 빨라서, 돌아와 보니 이젠 전문대도 뽑는 곳이 많지 않았고 고졸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20대는 아직 늦지 않았기에 취업활동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멋진 직장은 아니라도 전공을 살린 직장으로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나에게 멋진 직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강남의 그림자만 줄곧 밟아왔기 때문에 내가 알아온 그들처럼 나도 언젠가는 꽤나 잘 나갈 것만 같은 착각으로 살아왔나 보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보다 더 많이 그렇게 되지 않았고, 나는 많이 우울하고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존감은 바닥치고 열등감으로 가득한 못난 깡통이 되어 30대가 되어갔다.


나에게 멋진 직장이 아닌 곳들은 우리가 아는 대기업과는 많이 달랐다.

'개인사업자'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거 완전 개인사업자."라는 말은 말 그대로가 아니라 "사장이 깡패다."라는 말이다.

작은 기업들은 사장의 어쩔 수 없는 횡포(?)가 종종 있다.

물론 집단 따돌림 문제도 보통이 아니었는데(이건 추후에 설명하겠다)

조금만 참다 폭발하고 퇴사하는 나에게는 임시 거처에 불과했다.


멋들어진 강남에서 양재천 하나를 두고 악취와 벌레가 가득한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 살았던 나는 그 세상이 내 인생과 많이 닮은 것 같아 소름 돋을 때가 있다.


겉이 번지르르하고 속이 썩어가는,

유명한 대기업의 계약직으로 살아가던 내 모습이다.


나는 빛나 보이던 내 깡통의 삶이 좋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진짜 강남인 그들 틈에 있으면 나도 마치 그런 일부인 것 같아서 더 당당하고 빛이 나 보였고 어디서든 큰소리쳤다.


사실 일도 꽤나 잘했다. 내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만큼 똑 부러지게 하는 편이었고, 군대만큼 동기애가 끝장나는 대기업의 분위기상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알았던 것 같다.

내가 겉만 빛나는 깡통이라는 걸...


완벽한 나의 착각 속에 배신으로 얼룩졌던 짧은 계약이 끝나버렸다.


원래 처음에 들어갈 때 나는 이미 30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정규직을 원했으나, 담당자가 나를 마음에 들었는지 무기계약직을 약속받고 들어갔다.

그래서 다양한 부탁에도 투덜대면서도 묵묵히 일을 했다.

일단 내가 담당한 업무량이 동급 사원 대비 확연히 많았다.

같은 직무 여직원들에서도 리더가 되어 업무교육과 매뉴얼을 담당하고 직장생활에 대한 고충과 실질적 도움도 물론 주었다. 누군가가 괴롭힌다면 찾아가서 중재도 해주었다. 개인적 상담도 기꺼이 받았다.

나는 그렇게 살가운 성격이 못되지만 붙어있겠다는 욕심으로 사무실 전체의 살림을 담당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성희롱은 못 참겠더라, 나는 정말 참지 못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성희롱이다.

이 내용은 한때 너무 억울하여 기업 평판으로 올렸다가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하네마네 난리가 나서 내리게 되었지만, 나는 그 무기계약을 들먹이던 담당자가 추근대는 꼴에 참다 참다 철벽 치고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둘이 밥을 먹자고 했다.

점심이면 그럴 수 있지만 퇴근 후에는 아무리 법인카드를 꺼내도 그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여직원을 데려갔다.


그리고는 호칭을 슬쩍 바꿔 본인을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역겨웠다.

나이는 8살 정도 차이 났지만 지나 만 가도 담배 재떨이 냄새를 풍기던 그 사람에게 내 빛나는 깡통 자존심은 1g도 허용하지 않았다.


점점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한마디 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경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그날 이후 지옥처럼 목을 조이는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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