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군대

by JJ

00년 0월 0일

오전에는 중대막사에서 대기하다가 오후에 막사 주변의 풀을 뽑았다. 내일은 거미줄을 제거해야 한다. 모레는 화단에 물을 줘야 한다.


00년 0월 0일

군가와 주특기 교육 암기사항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군대 오면 머리 쓰는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머리 쓸 일이 너무 많다.


00년 0월 0일

오늘은 하루종일 배수로 작업을 했다. 군인들은 이해가 안 간다. 장비를 세워 두고 왜 삽으로 땅을 파는지 모르겠다.


00년 0월 0일

군단 기무부대로 파견을 갔다.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고 생활을 한다. 밥도 사제 밥보다 좋고 전투체육으로 수영장 가서 물놀이를 했다.


00년 0월 0일

기무부대 파견을 마치고 자대로 복귀했다. 땅개(육군보병) 체질도 아니지만 기무사는 더 재미가 없다.


00년 0월 0일

날씨가 무척 춥다. 오전엔 대대장님 정신교육 오후엔 전투 체육으로 산악행군을 했다. 발에 동상이 걸려서 고생이다. 발가락에 감각이 없다. 다음 주 군수지원태세 확립의 날 행사로 이번주도 바쁠 것 같다.


00년 0월 0일

군수지원태세 확립의 날이다. 개인장구류를 파악 정리했다.


00년 0월 0일

오전엔 국기게양식. 오후엔 동계훈련에 대비해 교장에 가서 주특기 교육을 했다. 최대사거리 3750m, 유효사거리 1750m, 분당 550발, 5분마다 총열교환, 보통분해, 특수분해, 덮개분해, 기능순환 8단계, 초과 완만 작용. 오늘부터 M60 사수가 되었다.


00년 0월 0일

국가기능공 집체교육 파견을 마치고 자대로 복귀하려고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휴가를 나오는 군인들로 꽉 찼다. 10분쯤 지났을까? 정류장에서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할머니 버스 안을 쭉 둘러보고 하시는 말씀......

“사람은 없고 군바리들이 왜 이렇게 많아?”

군바리는 사람이 아닌가?


00년 0월 0일

동상이 심해서 인사계님의 배려로 보름간 취사반 파견을 왔다. 하루종일 파를 다듬었다. 내일은 김치를 잘라야 한다. 모레는 마늘을 빠야 한다.


00년 0월 0일

오전에는 헌혈, 오후엔 태권도.

승단했다.


00년 0월 0일

오전에는 FTX를 대비한 군장결속, 개인 임무카드를 숙지했다. 오후에 M60 사격을 했는데 대대 1등을 해서 표창을 받았다. 중대전술, 대대 ATT, 전투지휘검열, 끊이지 않는 훈련들.


00년 0월 0일

연대 자격사격 측정이 있었다. 사격 저조자는 376 고지를 전진 무의탁으로 3번 올라갔다.


00년 0월 0일

오전엔 부대정비. 오후엔 귀순용사 정신교육을 했다. 9월도 정신없다. 체육대회, 유격, RCT, 진지공사, 개인 공용화기 측정 대비 훈련.......


00년 0월 0일

보름간의 진지보수를 마치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다시 작업이다. 오늘도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삽질, 곡괭이질, 당까질.


00년 0월 0일

4박 5일간의 동계훈련이 끝났다. 힘들다. M60(기관총)만 없어도 지구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군장을 메고 기관총까지 든다는 건 정말 힘들다. 딱총수가 부럽다.


00년 0월 0일

RCT.

9박 10일간의 400Km 행군은 별 탈 없이 끝났다. 행군만큼 힘든 것도 없는 것 같다.


00년 0월 0일

오전에 대대 야산으로 밤 주우러 다녔다. 연예인이 한 놈이 들어왔다. 오후에는 얘랑 놀았다.


00년 0월 0일

검열관계로 대대가 바쁘게 돌아간다. 하루종일 PX와 이발소에서 놀았다. 노는 것도 지겹다.




지금 생각해보연

군 생활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걸 그랬다. 상명하복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거부감도 있었지만 그때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서 매사가 부정적이었고 반항을 했던 시기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군단 기무부대로 차출되어 몇 개월 간 기무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형이 인맥을 통해서 편한 곳으로 파견을 보낸 것이었다.


기무부대 부대장님은 내가 자대로 복귀하던 날 조용히 방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전역하고 어려운 일 있으면 꼭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아마 그때 연락을 했다면 지금쯤 국방부에서 나랏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물론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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