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늘에는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결국 봄은 또 오고야 말았다. 태양은 밝고 바람은 상쾌하고 여성들의 스커트 길이는 짧아진다. 오늘밤도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암울한 현실이 참 처량하다. 변변한 에로스 한번 없이 20대를 보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
많이 사랑하기보다는 깊게 사랑하자는 것이 에로스에 대한 철학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구질구질한 사랑이라도 한번 해볼 걸 그랬나? 하는 비굴함이 뇌리를 스친다. 나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있긴 하다. 메이드가 안 돼서 그렇지.
Case1
6년 전. 친구가 좋은 사람이 있으니 만나보라고 했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당장 자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흔히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하던데 그때 처음 그 말뜻을 알았다. 청순가련, 순진무구, 순수고결 했다. 너무 좋았고 그래서 강하게 대시했다. 탱크주의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결과는 KO 패였다. 태어나서 처음 인생의 쓴맛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랑이란 게 나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H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아이였다.
Case2
3년 전. 그 녀는 착하고, 똑똑했다. 침착하고 흔들림 없이 자기의 길을 가는 아이였다.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는 현모양처 스타일의 조신녀였다. 그런데 그 녀와의 만남도 오래가지 못했다. 헤어지는 남, 녀들이 흔히 말하는 그런 시시껄렁한 이유 때문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부담스럽다는 둥,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둥”나도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런 건 모두 핑계다. 그냥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끝까지 노력도 하지 않고 미리 포기하는 나약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부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E대학병원 간호사로 재직 중에 있는 아이였다.
Case3
1년 전. 모임에서 알게 된 아이였다. 간단하게 술자리를 마치고 노래방을 갔다. 눈에 띄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S 양! 노래를 어찌나 기가 막히게 부르던지...... ‘노래 하나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한 달 후에 모임에서 등산을 갔다. 1200m나 되는 높은 산이었다. 전날에 밤을 새워서 놀았기 때문에, 모두들 잠이 부족했을 것이다. 더구나 여리여리한 여성이어서 산행을 포기할 줄 알았는데 상상을 깨고 힘든 표정 한 번 짓지 않으며 정상까지 올라갔다.
관심은 관심일 뿐 데쉬하지 않으면 연인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나는 다음날 친구에게 찾아가 물었다.
“야, 저번 모임에 S양 성격도 좋고, 얼굴도 준수하고 괜찮은 애 같더라. 산에 올라가는 거 보니까 끈기도 대단하고 노래도 잘하고 말이야~ 근데 걔 뭐 하는 애냐?”
친구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조곤조곤 대답했다.
“아~ 선미! 얼굴도 이쁘고 똑똑하고 참 괜찮은 애지. 얼마 전까지 기독교 회관에서 일하다가 그만뒀어. 지난달부터 간호학원 다닌다고 하던데? 간호사 될 거래. 자격증 따서 미국 간다나?”
한참을 듣고만 있다가 나는 먹던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간호사냐.......’
연애에도 징크스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술술 풀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몽룡이 그네 뛰는 춘향을 보고 반하듯이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단 하늘에서 감나무 떨어지기만을 기대하는 망상적 인연은 버려야 한다.
인연도 노력하는 자에게 온다. 일생에 단 번 지나간다는 그 사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간호사분들을 보면 그때의 애틋한 기억이 떠 오르곤 한다. 같은 하늘 아래 어느 병원에선가 환자들을 돌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