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2000년 11월
연애에도 기술이 필요한 것 일까? 기술을 연마하면 좀 나아질까? 기술적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직은 기술이 부족해서 변변한 에로스 없이 독수공방(獨守空房)하고 있다. 인간의 감정을 기술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약간 씁쓸하기는 하다. 기술보다는 순수함과 진정성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내가 원하 사랑은 쟁취, 기술, 타협 등 이런 공격적이거나 계산적인 말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물질과 경쟁을 빼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만 너무 돈질을 하는 것도 보기 좋아 보이지는 않고 이성을 경쟁해서 뺏는다는 것도 가혹하다. 사랑의 본질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치관이 같아야 연애도 지속될 수 있다. 연애도 코드가 맞아야 한다. 그리고 동등해야 한다. 좋은 것을 같은 눈높이에서 같이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순수하고 예뻐야 한다. 우월한 유전자나 힘 있고 능력 있는 자들이 사랑을 쟁취하거나 뺏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그것은 거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도 안 되고, 조잡한 기술로 사랑의 의미가 퇴색되어서도 안 된다. 연애는 기술이 아니라 마인드다.
2000년 12월
연애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여자의 NO는 당장은 YES가 아니다”
이건 또 무슨 뜻일까? NO면 NO지 당장은 YES가 아니라는 말이 참 어렵다. 여자는 남자와 달라, 빨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뇌의 구조라고 한다. 그래서 여자의 입에서 Yes라는 답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며 설령 No라고 해도 완전한 거절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case-by-case, 예외는 있다. 또 남자에게 포옹은 성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여자에게는 일반적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다고 한다. 스킨십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여성이고, 스킨십을 통한 성적인 욕구는 남성이 강하다고 한다. 지구의 반은 여자, 여자를 사귀려면 여자를 알아야 한다. 연애를 잘하려면 하다못해 연애 소설이라도 많이 읽어야 한다.
20년 전 일기니 요즘의 세태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요즘은 여자의 NO도 진짜 NO고, 여자의 거절도 여지를 두는 거절이 아니라 완전한 거절(The END)인 경우가 많다. 성별의 차이가 아니고 성향의 차이인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일이라는 것이 완전한 것은 없으므로 어제의 NO가 오늘은 YES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여자든 남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