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2002년 9월
퇴근길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
옆자리에 예쁜 아기를 안고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이 앉았다. 아기의 엄마로 보인다. 나이는 많아 보이지 않았다. 나와 비슷하거나 나 보다 조금 어려 보인다. 10분쯤 갔을까? 아기를 품에 안고 꾸벅꾸벅 졸던 엄마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많이 피곤했던지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아마 우리를 부부로 착각했을 것 같다. 차가 덜컹거리며 도로 모퉁이를 돌면서 움직임이 심해지면서 아이 엄마의 얼굴이 내 얼굴과 점점 가까워졌다. 난감했지만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흔들어 깨울까 생각도 했지만 평화롭게 잠든 모녀의 모습을 보니 깨우기가 미안했다. 할 수 없이 아기 엄마가 깰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5분, 10분이 지나고 집은 다와 가는데 모녀는 여전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깨워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어떤 남자가 벌떡 일어나 그녀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여보, 다 왔어 내리자”
잠에서 깬 그녀는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나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목례로 답했고 마침 그들과 방향이 같아서 함께 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낯선 여자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잔다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잠깐 그런 생각도 했다.
'이 여인과 이 아기가 그냥 내 여자와 내 아기였으면......'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 어렵다. 남들이 하는 것은 쉬워 보이는데 내게는 너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인간은 태아일 때 어머니와 한 몸을 이루지만 탄생과 더불어 두 몸으로 갈라지는데, 그러한 분리감은 일종의 결핍이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결핍감을 충족시기기 위해 사랑을 한다고 한다. 그것이 에로스이고 에로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합욕구(정신, 육체)로 발휘된다고 한다.
만남-연애-결혼-출산까지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에로스의 시작과 끝인가 보다. 그러면 에로스의 절정은 어디일까? 어제 처음 만나 눈빛을 주고받았던 그 사람을 향한 설레임일까? 아니면 만난 지 3개월 된 그녀와의 극장데이트 일까?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일까? 그것도 아니면 결혼식장에서 주례 선생님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신랑과 신부의 모습일까? 에로스는 생략해도 좋으니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