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은 보통 4월 초에 봄개장을 해서 7월 말에 폐장을 한다. 그리고 9월 초에 가을 개장이 시작되고 11월 말에 폐장을 한다. 주말 농장을 9년째 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비하다. 아이들 때문에 농장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우리 부부의 놀이터가 되었다. 젊었을 때 카페, 호프집, 당구장, 노래방, 나이트클럽이 놀이터였다면 지금의 놀이터는 주말농장과 북한산 둘레길이다.
지금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며 낭만적이게 소주를 한 잔 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듯싶다. 즐기는 것도 적기(適期), 타이밍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즐겨야 최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은 농작물에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며 수확을 하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굳이 행글라이딩이나 번지 점프를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을 해 보고 싶었던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지금은 무섭고 위험요소가 있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나쁘지 않다"는 감정으로 살기보다는 "좋다"의 감정으로 살고 싶다. 그것이 주말 농장이 될지는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남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흙이 좋으면 흙이 좋은 것이다. 굳이 백화점에 갈 이유가 없다.
글 쓰기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는 남이 원하는 글을 써야 하지만 내 삶을 위해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 드라마를 만들거나 책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닐 수 도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대중도 원하면 가장 좋다.
한 번쯤은 자신이 원하는 글이나 작품을 써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평생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글만 쓰고, 남이 원하는 작품만 만들다가 인생을 마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글도 훌륭하지만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테레사 수녀나 헬렌 켈러 같은 위인들은 평생을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사셨으나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남에게 득이 되지는 않는 삶이지만 해가 되지도 않는, 그저 자기 삶을 즐기는 것도 행복한 인생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래도 여유가 되면 남을 돕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작년에는 고추농사가 망했는데 올해는 풍작이다. 맛도 좋다.
올 해는 감자를 늦게 심어서 알이 작다. 감자는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을 해야 한다. 썩기 일보직전이다.
감자를 수확하기 위해서 새벽에 집을 나왔다. 농장은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데 도착하니 5시 30분이었다. 내가 1등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일찍 온 사람이 3명이나 있었다. 차가 한대, 두 대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6시 30분이 되니 주차장은 만차가 되었다.
그동안은 낮에 와서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았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일찍 나와서 농작물들을 돌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부지런해야 농사도 짓는다는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집에 와서 감자를 쪄 먹었는데 상상 이상의 맛이었다.
같은 감자라도 직접 수확한 유기농 감자는 먹을 때의 기쁨이 남다르다. 감자, 가지, 고추, 상추, 아욱, 오이, 토마토를 심었는데 대체로 양호했고 오이는 실패했다. 동물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지만 식물은 치유를 준다. 식물은 식물만의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일단 조용하다.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자동차로 부를 상징하고 계급을 나누기 위해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동차는 편하고 빠르게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동차를 만든 목적이다. 그 이상의 것은 옵션이다. 옵션이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옵션은 말 그대로 옵션일 뿐이다. 옵션에 흔들리면 안 된다.
삶도 그래야 한다. 본질을 알고 나서 옵션을 갖다 붙여야 한다. 2시간 만에 동해바다를 갈 수 있느냐가 본질이고 무슨 차를 타고 갈 것이냐는 옵션이다. 옵션으로 조금 더 기분이 좋아지거나 낭만적일 수는 있으나 그것에 휘둘리지 말자.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더 좋은 차를 보면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 잊지 말자. 본질에 충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