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박위(위라클)님이 최근 연애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인연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연애 상대는 시크릿 출신 가수 겸 배우 송지은이었다. CBS방송의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의 MC를 할 때 "참 괜찮은 사람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되었다니 축하해 줄 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통의 연애와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하늘이 맺어주는 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인연이란 절묘한 타이밍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혼할 때가 돼서 결혼을 하는 것을 인연이라고 말하나 보다. 나의 젊은 시절 연애사를 돌아봐도 비슷한다. 20대에 한두 번의 인연으로 맺어질 뻔한 적이 있었으나 서로의 때가 맞지 않았고 그 후 10년이라는 연애 공백기가 지나고 나서야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이 지금의 아내 K였다.
사이가 좋은 때는 인연이라고 느껴지고, 사이가 나쁜 때는 악연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인간의 조악한 마음이다. 인연도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으로 인연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도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 없이 얻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운(運)이 좋은 것일 뿐이다. 춘향이가 사또의 수청을 들었지만 사또와 사랑으로 승화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변사또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노력을 해도 안되었겠지만)
그 당시 K와 나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산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K와는 간헐적으로 학교 모임에서 몇 번 얼굴을 마주쳤지만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K와 나는 20대 때처럼 얼굴이 풋풋하지도 않았고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K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어지간히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달변가도 아니고 숫기도 없었던 나는 연애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었다. 결혼은 하고 싶었지만 노력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나쁘게 말하면 연애 결격사유가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등산모임에서 등산을 가게 되었다. 쉬는 날 할 일도 없어서 등산을 가려고 했지만 참석자들의 댓글을 보니 멤버가 시원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등산을 포기하고 집에서 영화나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다시 한번 카페 접속을 했는데 그녀 K가 등산에 참석을 한다고 댓글 올린 것이다. 아마 늦은 밤에 댓글을 올린 것 같다. K의 댓글을 보고 나도 재빨리 참석 댓글을 달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불과 2-3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씻지도 않고 대충 등산 가방을 챙겨서 약속 장소로 나갔다.
나는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사람들과 함께 K를 기다렸다. 그런데 K가 약속시간이 30분이나 지났는데 오지 않는 것이다. 카페 주인장은 시간을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다며 따로 산행을 하자고 했다. 나는 이왕 기다린 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약 20분이 더 경과하고서야 K가 나타났다. 그날 K는 초행길이라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잘못 타서 늦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 늦어서 산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다시 왔다고 한다.
그날 K와 나는 함께 등산을 함께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K는 지금의 마누라가 되었다. 아내와 사이좋을 때는, 그날 아침 내가 늦잠을 자서 K의 댓글을 보지 못했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하며 나의 인생을 구해준 것은 아내라고 생각을 하지만, 아내와 싸움이라도 한 날에는 그날 아침 내가 늦잠을 잤어야 했는데 잠도 없이 괜히 일찍 일어나서 인생이 꼬였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현실 부부고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다.
다 좋은 날도 없고 다 싫은 날도 없다. 결혼 생활도 상위 0.1의 잉꼬부부를 상상하지 말라. 서울대 가는 1등급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을 비교하지 말라.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부러워할 필요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가 장땡이다. 다수가 행복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공감할 수 없는 소수의 0.1%에 들려고 용쓰지 말라.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그렇고 변함이 없다.
그날 K가 댓글 달지 않았다면, 다음날 내가 새벽에 깨지 않고 늦잠을 잤더라면 나는 지금 원하지 않는 비혼으로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나도 결혼형 인간보다는 비혼형 인간에 가깝다. 운 좋게 결혼을 해서 결혼형 인간으로 살다 보니 그것도 살만하고 행복하고 보람이 있다. 결혼도 재미와 감동이 있다. 어떤 영화보다도 리얼하고 재미와 감동이 있다.
20대 때 한두 번 괜찮은 사람이 지나가고 그 후로 십 년이 지나서 괜찮은 사람 K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 추세라면 이 사람 K를 놓치면 다시 좋은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십 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영영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갑자기 나타날 것 같은 희박한 확률을 기다리면 안 된다. 이상형이 45세 이후에 나타난다면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결심도 있었다.
이상형이 쉬흔 살, 예순 살이 넘어서 나타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살아있는 동안 즐거운 시간,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지 죽기 전에 이상형이 나타나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었다. 그런 낭만 소설을 쓸 만큼 내 삶은 여유롭지도 못할뿐더러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낭만은 낭만적인 나이일 때 가장 낭만적인 것이다.
계산기를 두들겨 보면 결혼을 한 것이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수사적 표현이니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적어도 지금까지의 결혼 생활은 그렇다. 열 가지의 힘든 일이 있다면 한 가지의 기쁜 일로 모든 힘든 일을 상쇄하고도 남은 것이 결혼생활이다. 기본적으로 결혼은 희생을 깔고 간다고 생각하면 신간이 편하다. 지지고 볶으며 살 각오를 하고 결혼해야 한다. 물론 결혼 생활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