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졸업식을 다녀왔다. 딸이 절친한 짝꿍 A양과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런데 딸아이 친구가 너무 예쁘다. 예쁘다는 것이 마론인형이나 비너스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표정이나 말투 그리고 천진함과 순수함이 예뻤다.
괴테가 74세 때 17세의 소녀 울리케와 사랑에 빠졌다고 하던데 상식적이지 않지만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사람은 그런 감정이 생겨도 이성으로 억제하지만 괴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괴테가 살짝 부럽기도 하다. 그렇게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이 사랑을 했다는 것이.
아직은 우리의 아이들이 이쁘고 맑고 순수하다는 것을새삼 느꼈다. "소년심판"과 "더 글로리"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면 아이들의 폭력성이 심각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생각보다 우리 아이들은 순수하다. 직접 얘기해 보고 표정을 보면 느낄 수 있다.
10대는 이쁘다.
20대는 아름답다. 화창한 봄날에 하늘거리는 원피스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보면 저절로 눈길이 간다. 아름답다는 표현 외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힐끔 쳐다보고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 찰나적이어서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아름다움과 섹시(sexy)는 다르다.아름다움은 4월의 벚꽃나무 아래서 니트나 청바지를 입고 가만히 있어도 아름다운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이다. 외모나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청춘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20대는 아름답다.
40대 여성들은 멋있고 섹시하다. 진짜 섹시함은 내적인 섹시함이 아닌가 싶다. 성공을 하거나 지식이 많지 않아도 된다. 고급 세단에 최신 노트북을 싣고 브런치를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건 이제 흔하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내가 느끼는 중년의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섹시함은 다르다.
군대를 제대하고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40대 중반의 여성이었는데 차림새는 평범하고 수수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보였는데 그렇다고 스타일이 없진 않았다. 화려한 치장도, 장식도 없었고 세련된 헤어스타일도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있었다. 아마 그녀는 아들의 옷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즐거워 보였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훗날 나도 결혼을 하면 나의 아내도 저런 엄마가 되면 좋겠다.'
섹시함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 손님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다. 가정에서의 중년의 엄마도 충분히 섹시하다. 돈으로 만드는 섹시함은 한계가 있다. 엄마가 집에서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다고 해서 섹시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섹시하던가? 중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런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