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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븐데이즈 Jul 16. 2021

01. 여행, 일상이 되게 하라!


여행, 일상이 되게 하라!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말하지만 여행은 즐겁다. 그래서 나는 자주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정의나 기준이 다르다. 또 여행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여행 스타일을 선택할 뿐이다. 가까운 도시들을 방문하는 것도 여행이다. 국내여행, 해외여행은 말할 것도 없다. 자전거 여행도 있다. 배낭여행도 있고 요즘 유행하는 차박 여행도 있다.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 <백과사전>


이 여행의 정의에 충성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유람을 목적으로 전국의 많은 곳을 여행했다. 유람과 일을 목적으로 해외를 다녀왔다. 동남아 5개국, 필리핀은 3개월 거주 및 여행, 수차례의 봉사활동을 위해 방문도 했다. 신혼여행도 필리핀이었다. 가족여행으로 보홀을 다녀왔으니 필리핀 사랑이 대단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고생들을 인솔하여 속초에서 배를 타고 하바롭스크-장춘-백두산-용정-하얼빈을 탐방했다. 대학생들의 선교여행을 위해 북경을 거쳐 우루무치와 투루판을 다녀왔다. 후배 선교사 방문을 위해 곤명 지역과 따리를 다녀왔다. 교회 청년들과 허드슨 테일러의 흔적을 좇아 북경-성도-충칭(5일 동안 양쯔강을 따라 무한까지 뱃길여행)-상해를 여행했다. 저장 성 관광부 초청으로 사진 촬영을 다녀왔다. 개인적인 사진 작업을 위해 성도-리장-샹글릴라-염정을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중국 사랑도 대단했음이 보인다.


가족과 함께한 일본 여행도 추억으로 남는다. 아들과 단둘이 다녀온 2주간의 호주 여행은 압권 중의 압권이었다. 그리고 명예퇴직 후 가족들과 함께한 2주간의 미국 북부 여행은 나와 가족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갖게 했다. 이제 아들이 군 전역을 하면 미국 서부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여행은 중독이다. 알코올 중독, 담배 중독, 약물중독 등은 치료와 개선을 위한 기관이 있다. 도박에 중독되면 손모가지만 자르면 된다. 여행 중독에 빠지면 어떻게 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치료하는 기관도 없다. 그래서 그냥 중독된 채로 살고 있다.



여행의 출발점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이 한창일 때, 아버지께서 불러하시는 말씀이 “이번에 대학에 들어가는 큰누나 따라서 대전으로 전학 가라!” 이것이 인생여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시골 촌놈이 아무런 생각 없이 도시로 떠난 것이다. 이른 나이에 시작된 자취생활과 타지에서의 학업은 나의 여행 본능을 일깨웠다. 한 평 누울 곳만 있으면 어디든 만사 오케이다. 그렇다고 며칠 동안 계획을 세워 여행을 떠난 기억은 없다. 수학여행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여행에 대해 의식하고 보니 혼자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패턴이 연애시절에도 결혼 후에도 계속되었다. “오늘 꽃 보러 갈까? 바다는 어때? 지리산? 설악산? 온천 괜찮지?” 다행히도 아내 또한 계획 없는 여행을 좋아했다. 결국 우리의 여행 스타일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짐 싸는 것이 참 쉽다.



돌멩이가 없는 나라


1988년 올림픽이 성대히 끝났다. 그 자신감과 국제화의 필요성으로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가 시행됐다. 2년이 지난 1991년 나의 첫 해외여행이 의 시작이다.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거쳐 도착한 방글라데시, 말로만 들어왔던 세계 최대 빈민국의 공항 입국장에 서있다.


나의 카트에는 한국에서 공수해온 커다란 짐 가방과 캐리어가 실려 있다. 입국 전까지 들어왔던 이야기 때문인지 긴장되는 순간이 된다. 여권을 받아 든 세관원들이 나의 짐 가방을 풀어본다. 선교사에게 전달할 물품들이 가득한데… 세관원들의 눈빛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사나워진다. 이 짐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다. 선교사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어 애써 변명을 꺼냈지만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요구해 온다. 돈을 줘야 통과시키겠단다. 진땀이 난다. 일행들은 모두 세관을 빠져나간 뒤라 더 긴장되고 당황스럽다. 손이 축축해졌다. 그때 마침 42가지 색의 크레파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한국에서 100달러다. 이거면 되겠냐?” 다행스럽게도 통했다. 크레파스를 뇌물처럼 던져주고 세관을 나왔다. 일행들은 이미 마중 나온 자동차에 타고 있다. 허겁지겁 짐을 싣고 차에 탔다. 여행 리더가 외친다. “여권 잘 챙기셨지요?” 허걱! 손가방을 뒤져 보았지만 여권이 보이지 않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당황해서 나오다가 여권을 분실한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뿔싸! 여권을 안 받고 나왔다. 공항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지만 제지를 당한다. 여권을 안 받고 나왔다고 사정한 끝에야 겨우 들어갔다. 세관에 도착하니 씩~ 웃으며 내 여권을 흔들고 있다.


처음으로 발을 딛는 방글라데시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방글라데시는 벵골어로 ‘벵골의 땅’ 또는 ‘벵골의 나라’를 뜻한다. 이 지역은 벵골 지방의 동쪽에 해당한다. 국민은 벵골어를 사용하는 벵골 족이 대부분이다. 인구의 98%를 차지하며 종교는 이슬람이 86.6%, 힌두교가 12.1%, 불교가 1%, 크리스트교가 0,4% 기타 종교가 0.3%다.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서 네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삼각주다. 국토의 정중앙이 수많은 강으로 나뉘어 있다. 대부분이 다우지에 자리 잡은 데다 심각한 환경훼손으로 대홍수를 겪는 국가가 되었다.


우리 일행은 수도 다카의 음악학교에 짐을 풀었다. 한숨 돌린 일행은 음악 학교장의 안내를 따라 학교 소개를 받았다. 크지는 않지만 규모 있게 준비된 학교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악기를 배운다. 아이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심는다. 간접적인 선교가 이뤄지고 있는 현장이다. 선교사의 사명과 열정이 돋보인다. 출국 시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올 예정이기에 서둘러 다음 일정대로 움직였다.


코란도 벤에 승차하여 찔마리 의료선교 사역지로 이동했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한참을 달린 우리는 잠시 나무 그늘 아래 쉬었다. 인구밀도가 1,237명/㎢, 수도 국가를 제외하고 세계 1위다. 이런 통계가 실감 났다.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낯선 외국인 앞에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군중이 되어버렸다. 구경꾼이 뒤바뀐 상황이다. 거의 신발이 없다. 옷도 대충 걸쳤다. 헝클어지고 떡진 머리다. 무엇을 갈망하는지 모를 공허한 눈빛들로 바라본다.


이때 선교사가 우리에게 미션을 주었다. “지금부터 돌멩이를 찾아오세요. 찾으시는 분에게 100달러를 드립니다.” 상금이 컸다. 일행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돌멩이 찾기에 여념 없다. 한참 뒤에 돌아온 일행은 빈손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돌멩이인 줄 알았는데 벽돌 쪼가리다. 선교사는 빙긋이 웃으며 “이 나라는 돌이 없어요. 북부에서 큰 비가 내리면 물이 흐르는 데로 강이 되어 있던 마을이 하룻밤에 사라진답니다. 자연 자체가 이들을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죠. 오시면서 즐비한 벽돌공장 보셨지요. 그 뒤편에는 하루 1달러의 인금으로 벽돌을 깨는 아이들이 수두룩해요. 왜 애써 만든 벽들을 깰까요? 그 깬 벽돌을 돌처럼 골재로 사용한답니다.”


돌이 없는 나라가 방글라데시다. 천연적 가난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가난에 허덕인다. 이 나라의 아픔이 가슴에 비수처럼 새겨지는 순간이다.


이제 우리는 찔마리에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다. 승선하니 지붕으로 올라가라 한다. 지붕에서 점심 도시락을 받았다. 메뉴는 닭고기 카레다. 닭고기가 숭덩숭덩 들어간 카레다. 처음 받아본 음식이다. 물론 카레는 한국에서도 자주 먹었지만 닭고기 카레는 처음이다. 이들의 습관처럼 숟가락이 없다. 손으로 먹으라고 한다. 반드시 오른손으로 먹는다. 왼손은 다른 용도다. 몇 번의 실수도 있었지만 방법을 쉽게 터득했다. 낯설었지만 닭고기 카레는 너무 맛있었다. 한국에서 장사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식으로 차가 나왔다. 밀크커피? 아니다 홍차에 우유를 첨가한 밀크-티였다. 다른데 맛이다.


이렇게 방글라데시의 음식과 차를 맛보는 사이 배는 건너편에 도착했다. 우리는 다시 이동하여 목적지인 찔마리의료선교센터에 도착했다. 젊은 여자 선교사가 마중을 한다. 의료센터를 세우고, 헌신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밝다. 방글라데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을 충분하게 보였다. 낙후된 의료 지역에 젊음을 바친 여성 선교사가 존경스럽다.


며칠 사이에 햇빛에 노출된 나의 피부가 많이 탔다. 선천적이다. 쉽게 탄다. 많이 까매진 얼굴이 돼 버렸다. 큰 눈에 두껍고 깊은 쌍꺼풀이 마치 방글라데시 사람 닮았나 보다. 일행들이 놀려댄다. 너는 남아야겠다. 현지인과 똑같다. 당혹스럽게 한다. 방글라데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떠나는 시간이다. 코란도 벤에 올라탔다. 차창 밖에서 음악학교 선교사가 씩 웃으며 검지로 나를 두 번 가리키고 땅을 두 번 찍는다. 그의 손가락이 거대하게 다가왔다. 마치 어떤 환상을 보는 듯하다. 나에게 다시 이곳으로 오라는 사인인지? 어떤 의미의 사인인지? 의문을 남긴 채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방글라데시, 도시가 나라가 물에 많이 잠겨있다. 이들의 고통과 가난의 눈물이 강을 이룬 것처럼 나의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어느새 우리는 마지막 일정을 위해 필리핀에 도착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의 막바지에 와있다.



여행이 일상이 되다.


이렇게 나의 여행은 다양해졌다. 해외여행은 계획이 필요하다. 즉흥적일 수 없다. 많은 시간과 재정이 소요되기 때문에 철저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의 여행은 그렇지 않다. 여행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여행은 자유다!’라고 말하고 싶다. 자유롭고 싶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쉼이다!’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잠시 떠나 쉼의 시간을 갖는 것이 여행이다. 그래서 여행은 쉽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몸과 영혼이 쉴 수 있어야 여행이다. 쉬운 여행의 방법이 생겼다. 바로 사진여행이다. 여행이 일상이 되는 방법이 있다.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작업이다. 사진 작업은 그냥 재밌다. 누가 강요해서 하는 일도 아니다. 즐겁기에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서 좋다. 촬영의 순간에는 몰입할 수 있어 좋다. 복잡한 현실을 떠날 수 있어 좋다. 좋은 작품의 여부를 떠나 나무와 숲과 강과 바다, 들과 산을 거닐며 자연과 동화된다. 이것이 쉼이고 자유이며 일상의 여행이다.


그런데 이제 이 여행도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의 힘은 막강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여행 중독자에게 코로나19는 더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렇다고 마냥 멈춰있을 수많은 없지 않은가?


멀리 유명한 곳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다. 사진을 위한 작가라면 가까운 곳에서 충분히 피사체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나의 여행 거리는 매우 짧아졌다. 가깝다. 30분만 나가면 충분히 자연 속에 파묻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 있다. 주로 새벽 시간에 이동하기에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이 여행은 권할만하다.


사진만이 아니다. 자신만의 건강한 취미를 가지고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일상이 여행되게 하는 비결이다.



Episode / 일상의 여행지, 장태산


장태산의 메타세쿼이아 숲이 나의 관심 영역으로 불쑥 들어왔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작업이라 정보가 부족했다. 지도를 찾아보았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일반인들의 사진 정보들을 탐색해 보았지만 일출에 맞춰진 메타세쿼이아 숲 사진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직접 현장을 돌아봐야 한다. 2020년 11월 10일 화요일, 이 지역의 일출시간은 대략 오전 7시 10분 경이다. 해가 산을 넘어 장태산 골짜기까지 빛이 들어오려면 7시 45분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시간에 맞춰 장태산에 도착해야 한다. 장비를 갖추고 등산을 시작했다. 높지 않아 천천히 오르면 20분 만에 목적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상 바로 아래 전망대에는 한 명의 작가분이 열심히 산 아래 저수지 방면으로 사진을 담고 는 있다. 여기도 아니다. 정상으로 올라가니 세분의 여성작가들이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형제바위 쪽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장태산의 메타세쿼이아 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인가 싶어 구도를 잡아 카메라를 세팅하고 햇빛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지만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측광 빛이지만 거의 순광에 가까운 빛이다. 이게 아닌데… 도대체 어디에서 메타세쿼이아 숲을 담아야 할까? 주위를 둘러보니 건너편 오른쪽 하늘다리 위쪽으로 또 다른 전망대가 보인다. ‘아~ 저기다!’ 다음 날을 기약하고 산을 내려왔다.


그로부터 이틀 뒤 2020년 11월 12일 목요일, 이 지역의 일출시간대의 구름 상황, 습도, 일교차(전일 최고기온, 당일 최저기온), 바람 상태를 확인하니 괜찮은 조건이다. 전에 눈여겨보았던 전망대로 올라갔다. 후배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태산에 왔는데 전망타워로 가는 문이 잠겨 있다고 한다.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올라오라고 했다.



깨어나는 아침, 장태산


작품 속의 장면을 상상하며 3일 동안 이곳을 여행했다. 마지막 3일째 아침, 상상하던 장면이 저 너머로(Beyond) 펼쳐졌다. 환희와 기쁨이 새벽어둠을 몰아내고 피어올랐다. 소망은 눈앞에 있지 않았다. 몇 날 뒤에 있었고 저 다리 너머(Beyond)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둠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완벽하게 물러가고 생명의 기운이 안개처럼 솟아오르는 아침을 맞이한다. 일상의 여행 속에서 누리는 감격이었다. 이런 여행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여행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여행이 되기 위한 당신의 도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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