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보라 Oct 16. 2024

아는데,, 모르는 사람.

너란 사람 1.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도 아파트 엘리베이터 타는 모든 사람에게 서로 주고받는 인사는 미덕이라고 본다. 

"민종이 태권도 다녀요?

머릿속이 꼬이기 시작한다. 

누구지? 누군데 우리 아이를 알지?

슬쩍 눈을 돌려 얼굴과 차림새를 본다. 

"네" 하고 끄덕이는 척 말끝을 흐린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우리 도경이도 다닐까 하고요"

"그러게요. 같이 다니면 좋겠네요."

말은 일단 그렇게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아는 것은 아니다. 

도경이? 도경이라면 우리 아이가 이전에 같이 다니던 어린이집 친구다. 

아,, 그 친구의 엄마구나!

진짜 그렇다면 사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오며 가며 여러 번 인사했고 아이들끼리 인사도 자주 했다. 

이 정도면 안면인식장애 수준이다.


안면인식장애?

꽤 어려운 말이다. AI용어 같기도 하고, 병원에서나 진단받을 것 같은 질환명 같다.

하지만 쉽게 말하면 얼굴을 잘 못 알아본다는 것.

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한 번만 보면 다 안다는데, 심지어 우연히 한 번 보고 지난 공개수배범의 얼굴이나 미아명단의 얼굴도 잘 알아본다는 데 나는 그게 쉽지 않다.

기억력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금이야 나이가 들고, 출산을 하면서 기억력이 예전만큼 또렷하지는 않지만 문자로 본 것은 웬만하면 잊지 않는데, 어찌하여 사람의 얼굴은 실제든 그림이든 잘 눈에 들어오질 않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직업은 광고주를 상대하는 마케터다. 수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고, 방송국과 광고주 사이를 오가며 수많은 요청과 문제에 대한 조율을 해야 한다. 

물론 아주 병적으로 인간 자체를 몰라보는 정도는 아니라서 아이U를 보면 아이U인지, 전현無를 보면 전현無인지 알 수 있는 정도다. 당연히 가족도 알아보고, 친구도 알아본다. 

하지만 때로는 진짜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 할 정도로 난감할 때가 있다. 


어느 날인가는 광고주와 프로그램 제작사 사이의 미팅이 있었다. 몇 년을 보아온 제작사이기에 화기애애하게 앉아 담소도 나누고 차도 한잔 했다. 

그런데 광고주가 좀 늦게 왔다. 사정을 미리 알고 있던 터라 제작진에 양해도 구해 놨고 해서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광고주가 도착하고 나서 내가 좀 난감해졌다. 두 명의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 내가 통화했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겠는 거다.

일단 인사를 반갑게 하고 본다. 

통화도 하고 다른 미팅 때도 온 거로 아는데, 처음 보는 사람 같다니 원. 괜히 불안해지고 답답하다. 

결국 실수를 하고 만다.

"오랜만에 뵈어요."

"아이 뭐,, 지난주에도 뵈긴 했는데."

"그렇긴 하죠."

웃음으로 무마했지만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어 진다. 


왜 못 알아볼까? 기억력의 문제일까? 머리가 나빠진 걸까? 

그러고 보면 난 사람의 얼굴을 잘 안 쳐다본다. 

친한 사람의 얼굴은 잘 들여다보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사람, 만나려고 한 사람이 데려온(같이 온) 사람..들의 얼굴은 잘 보지 않는 것 같다. 


배려심일까?

무관심일까?


봐야 할까? 

봐도 될까?


이사를 앞두고 도경이 엄마를 또 만났다. 

"이사 가신다면서요?"

"아, 네."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 일부러라도 눈을 마주치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아,,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구나.

한 3년 만에 알게 된 얼굴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