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 데이트

싫은 맛도 한번쯤 도전해 볼만해

by 민트보라

-다이닝룸-

“어, 여기가 어디에요?”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저기 문이 있어요.”

“얼른 들어가 보자!”

손잡이를 잡는 하영.

“어, 안 열리는데요?”

“그래? 어쩌지?”

그 때 하영과 알렘 옆으로 지나가는 토끼 한 마리, 분명 토끼모습인데 사람처럼 걸어간다.

하영, 토끼를 부른다.

“얘, 토끼야. 너 이 문 어떻게 여는지 아니?”

토끼가 하영을 돌아보는데, 놀란 듯 빨간 토끼눈을 하고 있다.

“으악, 사람이다”

들고 있던 열쇠를 하영쪽으로 던져버리고 도망가는 토끼.

하영, 열쇠를 잡으려다 놓치는데, 알렘이 다시 잡아준다.

나이스를 외치는 두 사람,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 안에는 거인들이 쓸 것만 같은 엄청나게 큰 그릇과 달걀, 요리도구 등이 놓여져 있다.

깜짝 놀라는 하영과 알렘.

“우리가 이렇게 작았어요?”

“그러게. 몰랐네. 이래가지고는 아무것도 못 만들겠는데? 어쩌지?”

“그러게요.”

그때, 탁자 아래에 놓인 병하나를 발견한 하영.

[이걸 마셔요!]

“이걸 마시래요.”

“그게 뭐지?”

“모르겠어요. 이걸 마시면 커질지 몰라요.”

“그래두 뭔지 모르니..”

알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속의 액체를 마신 하영, 갑자기 쑥 커지기 시작한다.

자기 발밑에 조그마하게 보이는 알렘.

하영은 알렘에게 병을 건넨다.

병 속 액체를 마시고 하영처럼 커지는 알렘.

이제 주변의 모든 것들이 원래 하영과 알렘에 딱 맞는 크기다.

갑자기 박장대소 웃는 하영.

“왜?”

그런 하영이 궁금한 알렘.

“제 동생이 엘리스가 토끼랑도 얘기하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거 해보고 싶다고 했거든요!”

“아~ 그래서 이렇게 된 거야 우리?”

“그런가 봐요. 사실 저도 그렇게 돼 보고 싶었거든요.”

“거봐. 책을 글로만 보지 말고 상상을 더하니까 더 재밌지?”

“인정!”

“그럼 우리 본격적으로 요리한번 시작해볼까?”

“네!”


앞치마 두르고 재료 앞에 선 두 사람.

하영은 머릿수건도 하고 있다.

“자 뭐부터 시작하죠?”

“우선 케이크를 만들 거니까 이 카스테라 빵에다가 크림을 발라주는 거야. 이걸 아이싱이라고 한 대.”

“요리책보면 그런 말들이 너무 어려워요.”

“맞아. 따라 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려운 용어들이 좀 있더라구. 그래서 요리책은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해야 해. 그럼 해 보자.”

네모난 빵 위에 크림을 바르는 두 사람.

열심히 바르다가 콕 찍어 하영에게 묻히는 알렘.

하영, 화가 난 척 알렘에게도 묻히고 복수하고 피하고 서로 옥신각신.

까르르르.

하영, 알렘과의 이 시간이 너무 즐겁다.

하영이 바른 쪽과 알렘이 바른 쪽 크림은 모양이 다르다.

몹시 지저분하게 발라진 알렘쪽 크림.

하영, 기가 막혀 막 웃고, 알렘 민망해서 얼굴을 가린다.

그래도 즐거운 두 사람.


잠시 후 완성된 책케이크.

“짜잔, 생일 축하해!”

“윽. 아직도 생일이에요?”

“여기선 1년 365도 가능해!”

“아하! 고마워요. 책케이크는 처음 받아 봐요.”

“나도 처음 줘봐!”

하하하 즐거운 하영과 알렘.

“근데 하영이 요리에 재주가 있네. 너 아니였으면 이 케이크 완전 망했을 텐데.”

“그렇긴 하죠. 오빠가 여기다 초콜렛 범벅을 해가지고 제가 요고 살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게요.”

갑자기 인상쓰며 우울한 표정짓는 하영.

“아, 미안미안미안.”

다시 급 환한 표정 짓는 하영.

“짜잔, 괜찮지요~.”

“야, 진짜 놀랬잖아. 화난 줄 알고.”

“근데 오빠, 역시 사람은 모든 걸 갖지는 못하나봐요. 완벽할 거 같은 오빠도 이렇게,,”

다시 생각해봐도 재밌는 하영.

“그게 내 매력이잖아”

“맞아요. 너무 귀여워요.”

“그럼 나도 잘 못하는 거 도전해봤으니까 하영이 너도 한번 싫어하는 거에 도전해 볼래?”

“싫은데...요? 데이트해준다면서 왜 싫은 걸..”

아직도 흐르는 땀 닦는 알렘.

알렘에게 요리는 말 그대로 도전이라는 걸 아는 하영은 땀 흘린 알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 번 해 볼게요.”

기분 좋아진 알렘.

“넌 어떤 책이 제일 읽기 싫어?”

“과학, 사회 그런 거요. 근데 과학이 좀 더 싫어요.”

“과학 재밌지 않아? 다 그런 건 아닌데 여자친구들이 과학을 좀 재미없어 하는 거 같긴 하더라.”

“저희 반 여자애들은 다 과학 싫어해요.”

“그럼 이번엔 과학도 좀 재밌는 거라는 거 같이 살펴보면 어때?”

“과학책 속으로 가는 거에요?”

“그렇지. 사실 과학은 보기에 어렵지만 우리 주변에 너무 많아서 과학이라는 이름보다는 그냥 우리 생활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몰라. 밤에 불켜는 것도 과학이고, 날씨도 과학이고.”

“그건 좀 시시하다. 전에 플랫스탠리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요. 주인공 스탠리가 납작한 종이처럼 되기도 하고, 우주에 날아다니기도 하고 막 그래요.”

“그래 그런 상상을 현실로 실현하려고 힘쓰는 게 바로 과학이야. 옛날엔 지금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전깃불 켜는 일도, 날씨를 예측하는 것도 상상조차 못 했을테니까.”

“오빤 혹시 탄산에 멘토스 넣어보셨어요?”

“아, 그거. 유튜브에서 하는 것만 봤어.”

“전 몇 개 따라해 본 것도 있어요. 사실 실험은 좀 재밌는데 과학은 재미가 없어요. 운동에너지. 전기에너지, 삼투압 등등등 종류도 많고 이름도 어렵고 지루해요”.

“맞아. 과학실험으로는 신기하고 놀라운 게 많은데, 막상 그 이유나 원리를 설명하려고 하면 머리에 쥐나는 거지. 풍선가지고 놀 땐 재밌다가 왜 풍선이 통통 튈까 설명하면 재미가 없어지잖아.”

하영, 알렘 입술에 찍-지퍼 닫는 행동하면 정말 지퍼 모양이 생겨서 찍 닫힌다.

말 못해서 오물오물하는 알렘.


[실험실]

뭔가 알 수 없는 도구들이 가득한 어둑어둑한 실험실.

“여기가 어디에요? 왠지 으스스해요.”

“왔니?”

할아버지처럼 생긴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뭔가 일을 하며 말을 건다.

움찔하는 하영.

“누구...세요?”

할아버지를 자세히 훑어보는 하영.

분명 이 분은 나를 아는 것 같은데 하영은 전혀 모르겠다.

“어, 아인슈타인 박사님?”

할아버지를 알아본 듯 웃으며 깍듯하게 인사하는 알렘.

“응. 앉어앉어. 난 좀 바빠서”

뭔가 실험을 하느라 집중하는 아인슈타인.

“지금 뭘 하고 계신 거에요?”

하영, 할아버지 아니 아인슈타인의 실험이 궁금하다.

“응.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실험을 하고 있어.”

하영, 고개는 끄덕이지만 사실 뭔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박사님은 어떻게 그런 천재 과학자가 되신 거에요?”

말 대신 나침반 하나를 하영에게 건네는 아인슈타인.

“이건 혹시 나침반 아니에요?”

“맞아. 나침반. 어릴 적 아버지가 매일 혼자 노는 내가 안쓰러워 사다주신 나침반 덕분에 과학자가 되었지.”

“어떻게요?”

“난 매일 그 나침반을 들여다봤는데, 볼 때마다 나침반의 바늘이 북쪽을 가리키고 있는 거야.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지. 그런 과학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이 날 여기까지 오게 한 거 같아. 물론 그때는 그게 과학인 줄도 몰랐지만.”

“그래서 그 이유를 찾으셨어요?”

먼저 나서는 알렘.

“지구 자체가 커다란 자석이기 때문이야.”

영혼 없이 일단 아, 하고 끄덕여보는 하영.

그런 하영을 슬쩍 돌아보는 아인슈타인.

“우리 어여쁜 숙녀분은 혹시 상대성 이론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에에? 그걸 알아야 해요? 너무 어려워요.”

“맞아. 아주 어려운 공식 같은 거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살면 얼마나 억울할까?”

의외의 말씀에 조금은 의아한 하영.

“또 다른 세상이 있어요?”

“있지! 그게 바로 상대성 이론이 밝혀내는 중요한 포인트야.”

“오오 왠지 좀 끌리는데요. 과학이 아주 조~오금 괜찮은.. 뭐 인정하긴 싫지만 조오~금은 더 재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은 과학책도 한 번 읽어 볼래요.”

“그래 좋아. 호기심은 과학의 시작이니까. 과학이랑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알렘의 말이 길어질 거 같자 먼저 나서는 하영.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알렘이란 사람에 대한 호기심 말고는 그닥.”

손가락을 탕 튀기는 하영.

연체인간처럼 좁은 유리관을 따라 길쭉하게 이동했다가 유리관 끝을 빠져나와 별모양, 네모모양, 동그란 모양 그리고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하영과 알렘.


-서점-

반짝하고 빛처럼 다시 서점으로 돌아온 두 사람.

피곤한 듯 눈을 부비는 하영.

“근데 어려운 책을 좀 많이 읽었더니 눈이 너무 시리고 아파요~어후후”

크게 하품하다 알렘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하영.

“자 눈 감아봐.”

“네?”

“눈 감아보라고!”

“아,, 네”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치는 하영,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 눈을 질끈 감는데,

“아니아니 그렇게 꼭 감지 말고 살살~”

긴장한 눈 근육을 푸는 하영, 하지만 심장은 터질 것만 같다.

“맘 속으로 열 세고 눈 떠봐”

“하나, 둘, 셋”

‘혹시 나한테 뽀뽀하려고?’

알렘과 뽀뽀하는 상상에 빠졌다가, 다시 고개를 짧고 세차게 흔들어 상상을 지우는 하영.

“넷, 다섯, 여섯”

‘혹시 책 열심히 읽었다고 선물을 주려고?’

알렘이 예쁜 선물을 주는 상상에 빠진 하영, 다시 좋아하는 맘을 숨기느라 입을 앙다문다.

“일곱, 여덟, 아홉, 열.”

얼른 눈을 뜨는 하영,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난다.

하영의 얼굴 앞에 바짝 얼굴을 대고 있던 알렘, 피식 웃는다.

“너 무슨 생각한 거야?”

괜히 자신의 상상을 들킨 거 같아 얼굴이 붉어진 하영. 몹시 민망하다.

“생각은요 무슨. 그냥 열 셌죠. 열.”

피식 웃는 알렘.

“좋아. 책을 한 번에 무리하게 읽으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중간중간 눈을 감고 쉬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책을 무슨 원수처럼 생각하고 빨리 읽어버리려고 하지 마. 책은 가장 친한 친구야. 절친. 좋아하는 사람 만나는데 시간이 빨리 빨리 갔으면 좋겠어?”

“아뇨”

“그러니까 책과 천천히 시간을 같이 보내. 서로 눈도 마주치고, 그 친구에 대해 상상도 하고 말야. 책이 앞부분에서 말했던 내용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 봐. 그럼 그 친구랑 있던 일은 잘 안 잊혀질 거고, 두고두고 생각날 거야. 진짜 니께 되는 거지.”

알렘은 참 말도 잘해. 이래서 안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하영은 알렘의 말 하나하나가 다 좋다.

“또, 무식하게 책만 많이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 같아. 활용할 줄 알아야지. 책이 서점에 있을 땐 그냥 전시지만 니가 어떤 책을 골라 읽을 땐 그 책은 살아 숨쉬기 시작하는 거야.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읽고 버려두면 그 책은 다시 무생물이 되는 거지.“

알렘을 빤히 쳐다보는 하영.

“아.. 너무 어려운가?”

“아뇨, 뭔 말인지 알거 같아요. 제가 책에다 인공호흡을 시켜준다는 거죠?”

“인공호흡? 아, 그렇지!! 딱 맞는 말이네. 죽어가는 책 좀 많이 살려주세요! 선생님.”

그런 오버 연기하는 알렘의 모습이 재밌는 하영.

같이 웃는 두 사람.


-분수공원-

대형 분수 주변으로 사람들이 자전거도 타고 뛰어 노는 공원.

“이런데서 책 읽는 거도 좋아. 바람도 시원하고, 사람들도 보고.”

“네. 나가기 전엔 귀찮은데 막상 나오면 좋은 거 같아요.”

“하영이 덕분에 진짜 책 많이 읽었다.”

“저도요”

“난 한번 빠지면 미친 듯이 하다가 한순간에 그만두는 타입인데 이상하게 책은 꾸준히 읽는 편이야.”

“유튜브 보면 메이크업 받을 때도, 방송 기다릴 때도 늘 책을 보고 있더라구요.”

“응. 책이 날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책을 통해서 위안과 영감을 받게 돼. 음악도 가사도 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 궁금했던 것 그리고 내 상상이 더해져서 만든 거야.”

“아, 그래서 노래가 더 깊이가 있는가 봐요.”

알렘, 꼭 어른처럼 말하는 하영이 대견하다.

“항상 내 맘대로 되지는 않지만 내 목표점을 향해 최대한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 가깝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독서인거 같아.”

“뇌섹남!. 책 읽는 모습 진짜 멋져요!”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알렘.

“난 데뷔 안 했으면 작가를 했을지도 몰라. 어릴 때부터 꿈 꿨던 거야.”

“정말요? 와~ 오빠 작가해도 멋있었을 거 같아요. 지금 하면 안 돼요?”

“지금?”

“하고 싶으면 꼭 도전해보라면서요?”

“그래 좋아. 그럼 내 책 나오면 너한테 제일 먼저 보여줄게. 니가 내 책 독자로서 1호 팬이 되어줘.”

“당연하죠! 찐 1호!!”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파이팅 하는 하영.

“좋아. 파이팅 해볼게. 그런데 어땠어? 나랑 같이 보낸 책 데이트?”
“그걸 꼭 말로 해야 돼요?”

“그럼 말로 해야지. 사람이 말을 안 하면 아무도 그 맘을 몰라.”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하영.

“너~~~~~~어무 재밌었어요. 아쉬울 정도로요.”

“나도 정말 너무 좋았어. 그런데 책 읽을 땐 좋은 거만 생각하지 말고 비판도 해! 내 요리 흑역사도 좀 떠올리는 거지. 책은 친구이지 신이 아냐. 다 옳은 건 아니라는 거지. 중요한 건 니 생각이야. 독서 뒤엔 생각을 해야 돼. 이건 왜 이러지? 내 생각은 다른데! 야야 그거 아냐~ 그래? 그럼 이런 걸 더 넣으면 어떨까? 등등 온갖 생각을 다 해도 좋아. 책이랑 데이트하는 거지. 재미난 데이트.“

“데이트?”

“응. 남자친구랑 데이트한다고 생각하면 쉽지.”

“그럼 다음에 또 남자친구 해 줄 거에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대답대신 손으로 입에 달린 지퍼 닫아주는 하영.

“좋아. 그럼 다음에 또?”

“정말요?”

신나서 눈이 반짝이는 하영.

“니 상상 속에 언제든 나타날 거니까 책 열심히 읽기!”

하영, 상상만해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흠.. 이번에는 어떤 책으로 같이 여행을 떠나볼까요?”

“정말 궁금해지는데!”

“비~~밀!”

하영,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지만 기대되는 마음은 너무 크다.

두근두근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분수에 비친 햇빛이 별처럼 반짝인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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