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책보다 더 싫은 독서록
-학교-
학교에 간 하영.
오늘도 하영은 비치에스와 알렘 얘기로 친구들과 시끌벅적.
알렘과 만났던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아이들이 믿지 못할 것도 분명하고, 알렘 오빠와 맹세한 비밀 데이트 약속을 말할 수 없어 입은 근질근질하고 속이 탄다.
아침 조회시간, 선생님이 탁자 앞에서 말씀하고 아이들이 모두 집중하고 있다.
“이번에 전국어린이독후감대회가 열려요. 그래서 수행평가는 독서록으로 대체할 예정이고, 제출한 독서록은 대회에 출전시켜 볼 거에요. 혹시 우리 중에 독후감 대상이 나오는 건 아닌지 기대 돼요.”
-서점-
다시 알렘을 만난 하영은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알렘은 그런 하영이 신경 쓰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한숨만 쉬는 하영.
“아, 오늘이 마지막 데이트라 아쉬워서 그러는구나?”
“그건 당연한 거구요!”
“그럼 또 뭐?”
“선생님이 다음 주 국어 수행평가를 독서록으로 한 대요.”
하영의 모습이 귀여워 웃는 알렘.
“아~ 아무리 내 사랑 오빠래도 그렇게 비웃는 건 못 참겠어요.”
당황해서 웃음 거두는 알렘, 하지만 미소가 삐져 나온다.
“아냐아냐 웃는 거. 그냥 뾰로통한 니가 너무 귀여워서 그렇지.”
“흥. 저한테는 독서록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단 말이에요. 쓸게 없는데 뭘 자꾸 쓰라는 건지? 책 읽는 것도 힘들지만 독서록은 정말이지 끔찍하단 말이에요. 그나마 생각나는 거 썼더니 길게 쓰래. 그래서 기억 안 나는 내용을 억지로 생각해 내서 줄거리 열심히 썼더니 느낀 점을 쓰래. 느낀 게 없는데..뭘 느껴야 하는 거죠?”
“너! 너를 느껴야지”
“네에?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뚱딴지가 아니고. 그건 니가 니 마음을 안 보고 그냥 지나쳐서 그런 거야..”
“제 마음을 봐요? 책을 봐야지 왜 제 마음을 봐요?”
“예를 들면, 니가 버스를 타고 어딘가 가고 있다고 생각해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어. 그럼 넌 지나가는 사람들, 차들, 건물들을 보게 되겠지. 근데 정말 아~무 생각없이 ‘사람이네’ ‘차네’ 하면서 지나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니 머릿속에 남는 건 없어. 하지만 반대로 지나가는 풀 한포기도 신경을 쓰면서 보려고 하면 그 자리엔 니 마음이 남는 거야.”
“어떻게요?”
알렘, 마치 연기하듯 과장되게 말한다.
“어 저 꼬마애 춤추는 거봐. 엄청 귀엽네. 하는 행동이 나 유치원 같이 다녔던 현수랑 닮았다! 어우 저 아저씨 뭐야. 머리스타일 완전 촌스럽다. 티비에서 본 미국 대통령 같애. 히히히. 와~ 저차 너어~무 멋지다. 크면 나도 저런 차로 사야지!”
다시 정색하며 말 이어가는 알렘.
“이렇게 니 생각과 마음이 말풍선처럼 붙잖아. 책은 그냥 까만 글자다 라고 생각하면서 멍 때리니까 기억도 안 나고 쓸 거도 없는 거야. 책을 보면서 나오는 등장인물이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고 그 상황들이 바로 내 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봐. 지금 우리처럼 말이야. 그럼 너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을 거고, 느끼는 바가 있을 거잖아. 그런 하나하나가 다 책에 대한 독서록이 되는 거야.”
“코멘트네요?”
“코멘트? 코멘트라는 말도 아는구나?”
하영, 알렘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네 책에서 봤어요.”
“하나하나 실력이 좀 늘어가는 게 보이는데! 맞아. 코멘트. 그런데 그런 것도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근사하게 뭘 해 볼려고 하면 사실 쉽지 않아. 차 타고 가면서 한사람 한사람 보면서 느낀 걸 생각하듯 책도 한 장 한 장, 또는 그 상황을 보면서 느끼고 생각한 걸 책 내용 옆에 바로바로 적어봐.”
“그런데 전 책에다 낙서하는 거 정말 싫어해요. 책 더러워지는 거 으윽- 왠지 내가 더러워지는 거 같아요.”
“그래 그런 친구들도 있더라. 사실 나도 어릴 때 좀 그랬던 거 같아. 그래서 난 언제든 뗄 수 있게 포스트잇을 많이 썼던 것 같애. 근데 떨어져 없어지기도 해서 지금은 별도의 노트에다 쓰곤 해. 어디든 상관없지만 그렇게 흔적을 남기면서 기억을 붙잡는 게 중요해. 그리고 나중에 독서록 쓸 때 들춰보면서 쓰면, 의외로 쉽고 길게 독서록이 완성되더라구.”
“왠지 흐름이 끊길 거 같고, 빨리 책 읽는 거 끝내고 싶어서 그런 거 일부러 안 했었는데 이젠 오빠 말대로 한 번 해 볼래요.”
“그래. 안 해 봐서 좀 익숙해질 때까진 어색하겠지만 몇 번만 하다보면 저절로 좋은 습관이 생기는 거야.”
“네!”
“그래도 잘 안되면 이런 방법도 좋을 거 같아. 나한테 편지 쓰듯 독서록을 쓰는 거야.”
다시 과장된 알렘의 말과 행동.
“오빠, 오늘 땡땡땡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똥똥똥이라는 애가 나와요. 걘 되게 이상해요. 방귀를 뽕뽕뽕 뀌는데 냄새가 달콤하고 향기롭대요. 너무 웃기죠? 어떻게 방귀가 달콤할 수 있어요? 제 짝꿍 방귀는 김치 한달 썩은 냄새가 나는데,,”
또 다시 정색모드로 바뀐 알렘.
“뭐 이러면서 말이야. 줄거리도 필요 없고 그냥 니 느낌대로 남겨봐. 내가 다 듣고 본다고 생각하고 말이야.”
“그거라면 자신 있죠. 100통도 쓸 수 있어요.”
“그래 좋아. 책 속에 내용을 상상하면서 그림도 그려봐. 책과 어울릴만한 음악을 추천해줘도 좋아”
“좋아요. 이름하야 팬서록!”
“오~올. 팬서록! 이름 좋은데! 당분간 못 보더라도 팬서록 꼭 성공해!”
“네!”
자신 있게 얘기했지만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걱정이다. 한숨이 새어나오는 하영.
-학교-
띵~동띵~동----
쉬는 시간 종이 울린다.
“자, 시간됐으니까 독서록 다 작성한 사람은 저기 교단 위에 올려놓고 집에 가면 돼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아이들이 내는 독서록을 멀리서 지켜보며 하교 지도하는 선생님.
독서록을 낸 뒤 가방 챙겨 나가는 하영.
단짝 연지도 가방 챙겨 나오며 하영에게 다가온다.
“하영아, 독서록 잘 썼어?”
“모르겠어. 그냥 오빠가 하란대로 했어.”
“오빠? 어떤 오빠?”
하영, 아차 싶어 빠른 걸음으로 교실 빠져 나간다.
“야, 너 오빠 없잖아? 어떤 오빤데?”
급하게 따라가는 연지.
“있어”
“누군데?”
도망가듯 멀어지는 하영과 따라가는 연지.
그 위로 하영이 쓴 독후감 내용 들린다.
“오빠, 제가 오늘 ‘독도참치’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너무 재밌어서 도저히 편지를 안 쓰면 안 될 거 같아요. 이 책의 주인공은 찐이라는 아이인데요....”
며칠 후.
“엄마~~~~”
우당탕탕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하영.
“왜?”
책 정리하던 엄마가 돌아본다.
“나 대상 받았다아~~!”
상장과 트로피 내미는 하영.
“대상? 무슨 대상?”
말 대신 상장을 펼쳐 보이는 하영.
뭔가 싶어 고개만 빼고 상장을 훑어보던 엄마가 깜짝 놀라 정리하던 책들 다 내려놓고 상장을 받아든다.
“옴마나 축하해. 책 한 권도 읽기 싫어서 몸을 배배 꼬던 니가 왠일이라니. 아이고야 완전 축하한다. 전국에서 니가 독후감 제일 잘 썼다는 거 아냐? 우리 집에 경사났네 경사났어, 보자”
몹시 뿌듯해하며 상장을 읽는 엄마.
“위 어린이는 2025년 전국어린이독후감대회에서 이와 같이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였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어머어머어머 정말 놀랠 노자다. 김하영?
“왜?”
“최고!!!”
하영 볼에 뽀뽀해주려고 달려드는 엄마에 기겁하며 몸을 뒤로 빼는 하영.
그러나말거나 엄마는 좋아서 난리다.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정말 대견하게 느껴지는 하영, 어깨가 더 으쓱해진다.
벽에 붙은 알렘 포스터를 올려다보는 하영.
"오빠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