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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람 Feb 06. 2024

유행이 반복 되는 이유, 레트로

‘과거’라는 이름의 해독제


현재까지도 식을 줄 모르는 90년대와 2000년대 레트로의 유행. 이제는 패션뿐만 아니라 음악과 음식, 미디어 콘텐츠까지 트렌드의 중심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레트로(retro)는 추억이라는 뜻의 영어 ‘Retrospect’의 줄임말로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을 뜻한다. 레트로의 핵심은 단순히 과거를 따라 하려는 경향이 아닌 재해석을 통한 재탄생에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에만 그치지 않고, 지금 시대의 맞게 새로워져야 진정한 레트로라 할 수 있겠다.     


레트로의 등장과 포스트모더니즘      


Yves Saint Laurant, Haute couture drawing. 1971


‘레트로’라는 단어는 1970년대 프랑스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영국을 통해 영어권 국가까지 널리 확산하면서 패션, 인테리어, 대중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레트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1971년 이브 생 로랑에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스타일에서 착안된 ‘40년대’ 컬렉션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Marcel Duchamp <fountain>1917


레트로가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된 중심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란 탈근대주의로 1960년대 과거에 근대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문화운동을 일컫는다. ‘과거에서 벗어난다는’ 측면을 이유로 레트로와는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특성 중 하나인 ‘절충주의’ 즉 기존의 것에서 유용한 것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재창출한다는 의미에서 레트로의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맥을 같이 한다. 근대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단순히 과거의 모습을 찬양하고 베끼는 것이 아닌, 현재의 불만족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과거를 현재에 맞게 재해석해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Movie <Midnight in Paris> 2012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_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中   



우리가 과거에 열광하는 이유


많은 연구와 매체에서 레트로의 유행 원인을 ‘경제 위기’로 꼽고 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과거를 다룬 영화 <써니>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등이 크게 흥행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레트로 열풍이 본격화되었다. 그렇게 2019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이후 경제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레트로가 재등장하기 시작했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어른제국의 역습>. 2001
“20세기 사람들에겐 꿈과 희망이 있었어. 그들에게 21세기는 희망 그 자체였지. 하지만 모든 게 달라졌어. 남은 것은 썩어 버린 돈과 타지 않는 쓰레기뿐. 우리가 꿈꾸던 21세기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_극장판 짱구는 못말려:어른제국의 역습 中     

심리적으로 인간은 어떤 위기를 느끼게 되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특히 경제가 어려울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과거의 행복한 기억과 소중한 추억이 현재 상황을 벗어나게 해주는 일종의 해독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 현상은 일종의 ‘무드셀라 증후군’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무드셀라’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가장 오래 생존한 인물인 ‘므드셀라’를 어원으로,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좋은 추억만 더 회상하게 되는 그의 심리 성향을 가리킨다. 이 증후군의 특징은 과거를 회상할 때 나쁜 기억은 빨리 잊고 좋은 일만 기억하려는 기억 왜곡 현상으로 ‘퇴행 심리’를 보인다는 것이다. 또 이는 과거와 달리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처한 사람에게 흔히 나타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사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상황을 들 수 있다. 당시 그의 선거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였다. 그는 불안한 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과거에 미국의 영광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그리고 그의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잘 통했다.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부터 그리고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그의 망언과 망업을 보도해 오며 그의 이미지의 많은 스크레치를 냈다. 그러나 이미 경기 침체를 피부로 직접 느끼던 미국 국민들에게는 사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령 그가 지독한 인종차별자 라고 해도 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이었다. 죽 과거에 부유함과 위대함을 되찾아 줄 사람, 미국인들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트럼프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한 나라의 총수이자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 경제가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위대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레트로 패션의 유행, 그 내면



아무래도 마음이 허전해지니까요. 요즘 사람들은 마음이 황폐해지고 물질적으로 마음을 만족시키려고 하죠.
_극장판 짱구는 못말려:어른제국의 역습 中


유행은 자기표현의 욕망이자 모방과 동조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한편 유행을 따르는 것은 시대의 뒤떨어지고 싶지 않은 욕망과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기도 하다. 작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올드머니 룩과 프레피 룩, 이 둘은 과거에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레트로’이자 상류층을 대표하는 패션이다.


©instagram_@kendalijenner & ©instagram_@sarahtkhan808



올드머니(Oldmoney)는 단어 그 자체로 오래된 돈 즉, 유산을 뜻한다. 한 마디로 전통적인 부자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프레피(Preppy)는 2000년대 초 미국의 명문대 상류층 자제들의 스타일을 일컫는다. 이러한 두 레트로 패션이 같은 시기에 동시에 유행했다는 것, 이는 이 시기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앞서 언급했듯 ‘레트로’는 경제적으로 불안할 때 흥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유행은 모방과 동조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즉, 상류층 패션을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올드머니와 프레피의 유행이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불안을 느낄 때 상류층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갈망이 더 커진다는 것을 시사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고급스럽고 화려한 올드머니 룩과 프레피 룩, 이 둘의 유행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들의 불안과 욕망이 뒤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레트로의 긍정적 측면       

       

©New Jeans  Album jacket photography


과거를 계속 회자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걸까? 아니다. 이는 의외로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영국의 사우샘프턴 대학 심리학자 사회 심리학자 팀 와일드슈트(Tim Wildschut) 연구진이 진행했던 연구에 따르면 과거의 즐거운 날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미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견해를 보일 수 있다는 결과가 있었다. 연구진은 먼저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추억을 떠올릴 만한 일 혹은 최근 일상에 관한 기억을 기록하게 한 뒤 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옛 추억을 기록한 그룹의 문장에서 일상을 기록한 그룹보다 긍정적인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향수를 떠올릴 만한 곡과 평범한 곡을 무작위로 재생했을 때는 향수를 떠올릴 수 있는 곡을 들은 참가자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낙관적이라는 결과가 있었다. 와일드슈트 박사는 “향수는 자아존중감을 높여 인간을 낙천적으로 만든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행복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되새김질은 오히려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레트로는 세대 간의 ‘연결고리’로서 작용될 수 있다. 레트로가 기성세대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일으킨다면, 개인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레트로의 아날로그적 느낌은 새롭고 독특한 매력이 된다. 또 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를 경험하게 되면서 두 세대 간의 공통된 ‘문화 코드’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는 서로가 다르다고 생각한 그들 사이의 공감과 소통을 끌어낼 수 있다. 즉,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세대 간의 거리를 확 좁혀줄 수 있는 ‘연결고리’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를 끌어와 현재를 파는 기술 레트로      


©Hite Jinro. AD

레트로는 비용 대비 효율성이 뛰어난 마케팅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빠른 변화와 불확실성 속 레트로 관련 상품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인지도를 바탕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편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는 안정적인 매출로 이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상품 대비 확실한 홍보 비용 절감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활발히 이루어진 소비 행동 심리학에서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인간의 소비심리를 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있었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저서 <레트로토피아>에서 대중이 과거를 찾는 이유가 “추정된 안정성과 그로 인한 신뢰성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과거에 투자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instagram. @yim_siwang

                     

레트로는 특히 콘텐츠 미디어계에서 ‘과거를 끌어와 현재를 파는 기술’로 불리며 각광받고 있다. 애니메이션 ‘짱구는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그리고 최근에 나온 OTT 드라마 ‘소년 시대’ 등 과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연이어 크게 흥행했다. 이러한 레트로 작품들의 성공 비결은 과거의 영화·드라마·책 등이 당시 추억을 형성하는 데 주요한 근간이라는 점이다. 레트로 관련 콘텐츠는 ‘추억’을 이용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동시에 공감을 산다. 즉 등장인물에게 더 쉽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해, 내용 안에 완전히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감정 이입’은 서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일수록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드라마나 영화 제작사 또는 투자사 측의 수익에 대한 ‘안정성’까지 부과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투자자 없이, 즉 ‘자본’ 없이는 제작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콘텐츠 미디어계에서 과거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계속해서 제작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레트로의 미래     


레트로의 원동력은 ‘추억’이다. 지나간 모든 시간은 곧 과거가 되고 우리에게 추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레트로는 이 추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형태로 제시된다. 그러니까, 시간이 멈추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계속해서 생기는 이상 레트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문화를 재해석하고 재생산하는 것. 이미 ‘레트로’라는 의미 자체에 그것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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