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꿈
엄마의 하루는 온통 나였어. 아침이면 따스한 손길로 나를 깨웠고, 맛있는 밥상을 차려 손수 먹여주곤 했지. 심지어 양치도 시켜줬어. 아마 엄마는 자신이 가진 모든 사랑을 나에게 줬었을 거야. 근데 언제부터 우리 사이에 ‘조건’이란 게 생겼을까? 밥을 다 먹어야만 TV 영화를 볼 수 있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인형을 사줘야만 영어 단어를 외웠을 때부터였을까. 아마 내가 먼저 엄마한테 조건적으로 굴었을 거야. 그건 내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겠지.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무조건 울었을 테고, 엄마는 그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밤이고 낮이 내게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줬겠지. 그래놓고 나도 참 이기적인 게, 엄마가 아무런 조건 없이 날 사랑해 주길 바란다는 거야. 결국 엄마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말이야.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선생님이 가정통신문 같은 걸 주면서 장래 희망을 적어오라고 하더라고. 한 칸은 나의 장래 희망, 다른 한 칸은 부모님 꿈꾸는 나의 장래 희망 말이야. 당시에 나는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도 몰랐어. 그래서 엄마한테 물으니 ‘꿈’이라고 하더라고. 잘 때 꾸는 꿈을 물으니, 아니래 커서 내가 되고 싶은 거래.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고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지. 그럼 내 맘대로 놀아도 되니까 말이야. 그랬더니 엄마가 그건 꿈이 아니래. 어른이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되는 거고. 꿈은 내가 노력을 해서 이뤄내야만 하는 거래.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어.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그러더라.
“우리 딸은 외교관이 되면 되겠다. 자유롭게 외국도 다니고 말이야.”
그리고는 내게 연필을 쥐여주며 적으라고 했어, ‘외교관’이라고. 그리고 그 옆에 엄마도 정갈한 글씨로 ‘외교관’이라고 적었지. 그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의 나의 꿈은 외교관이었어. 외교관이 되면 자유롭게 외국을 다니면서 놀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설사 내가 외교관이 되더라도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나 마찬가지였지. 다행히도 그 꿈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점차 사그라들었어. 외교관이라는 게 얼마나 되기 어려운 건지를 깨달아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2학년 때 중간고사 영어시험에서 15점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한 거 때문이 크지. 영어 못하는 외교관이 어디 있냐고. 거대한 꿈일수록 기대치는 오히려 낮은 거 같아. 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서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외교관’이라는 단어 자체를 말하지 않게 됐거든.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식 날 아침, 엄마가 내게 빳빳하게 다린 새 교복을 건네며 그러더라. 이제 놀만큼 놀았으니 공부해야 한다고. 노는 건 딱 중학교 때까지라고. 순간 내가 얼마나 놀았다고 그러지? 하면서 화가 나다가도 여태 내가 받아 온 성적을 생각해서 참았지. 그냥 경고 정도라고 받아들였는데 아니었어. 엄마는 종합 학원 하나, 영어 과외와 수학 과외까지 붙여줬지. 그래서 성적이 올랐느냐. 응 올랐어, 아주 많이. 하위권에서 놀던 내가 반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로 말이지. 어쩌면 내가 서울대에 갈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했었어. 문제는 내가 사춘기 아닌 사춘기가 왔다는 거지. 그것도 제일 중요한 3학년 시기에 말이야.
그냥 어느 날 독서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화가 나더라고. 문제를 푸는데, 자꾸 집중은 안 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거야. 도대체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하는지 의문이 들더라고. 진짜 이렇게 하면 서울대에 갈 수 있나? 내가 죽어라 노력해도 서울대는 못 갈 거 같은데. 그럼 연세대와 고려대는? 거기는 갈 수 있나? 전교 1등도 못했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근데 내가 거기 가서 뭐 하지? 대학교에 가서도 똑같이 책상에 앉아서 공부해야 하고, 졸업은 해서도 똑같이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해야 하는데. 나 그만 앉아있고 싶은데. 그만 노력하고 싶은데. 죽는 그 순간까지 이렇게 노력만 하면서 살 거 같은 거야. 손에 얼마나 힘을 줬는지 쥐고 있던 샤프가 부러지더라. 그러면서 손을 할퀴는 바람에 피도 났지. 곧장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
처음엔 불빛이 가득한 거리였고. 다음엔 가로등도 없는 거리였어. 그러다 소주병을 껴안은 채 잠든 노숙자를 봤어. 코를 엄청 심하게 골더라고, 덥수룩한 수염과 지저분한 옷차림, 꼬질꼬질한 냄새를 맡으니 정신이 순간 확 들면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왔던 길을 돌아갔어. 생각보다 꽤 멀리 왔더라고. 분명 아까도 지나쳐 온 길인데 처음 본 길처럼 낯설었어. 한참을 걷다보니 독서실이 앞이었어. 해도 떳더라. 첫차를 타고 갈까 망설이다 그냥 그대로 쭉 걸었어. 최대한 늦게 도착하고 싶었거든. 문 앞에서도 한참을 서성였던 거 같아. 더는 춥고 피곤해서 안되겠다 싶어서 문을 조심스레 열고 현관에 들어서는데, 불 꺼진 거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리더라.
“어디 갔다 왔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곧장 방으로 들어갔어. 엄마가 따라 들어오더라고. 끈질기게 어디 다녀왔냐 물어댔어. 끝까지 대답하지 않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학교로 갔지. 아빠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고. 그날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지 않았어. 독서실도 가지 않았지. 끊임없이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무시한 채 PC방에서 게임을 했어. 게임을 하는 내내 어젯밤 본 그 노숙자가 떠올라서 도저히 집중이 안 되더라. 어느덧 밤이 왔고 가게 직원이 미성년자는 나가라면서 날 내쫓았어. 그래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지. 현관문 앞에서 또 한 한 시간은 성성이다 들어갔어. 엄마가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더라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붓고 볼은 수척하게 파여 있더라. 엄마가 나를 보며 물었어. 자기한테 왜 그러냐고.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대학도 멀어져만 갔지. 담임 선생님은 내게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러냐고 걱정 섞인 핀잔을 줬고. 엄마는 더는 내 성적을 묻지도 않았어. 아니 아예 아무것도 묻질 않았지. 참 이상한 게, 막상 내 미래를 걱정하며 공부하라고 닦달하던 사람이 없으니까. 두렵더라고, 아무도 내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대학 가서 뭐 해? 안 가면 뭐 할 건데? 회사 다녀서 뭐 해? 회사 안 다니면 어쩔 건데? 열심히 살기 싫어? 열심히 안 살면 뭐 어쩔 건데? 답도 없더라. 그제야 깨달았어. 답이 없으니까 공부라도 하는 거라고. 그렇게 수능 석 달을 앞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 그와 동시에 자연스레 엄마와의 사이도 좋아졌어. 직접 전공도 골라 줄 만큼 말이야. 1 지망 사회복지학과, 2 지망 신문방송학과, 3 지망 경제학과로 말이야. 아마 엄마가 생각했을 때 가장 취업하기 좋은 학과였겠지. 그때의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지방에 있는 4년제 국립대학교 경제학과 합격했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지 못한 것과 1 지망이 아닌 3 지망 학과에 들어가게 된 것에 대해 부모님에게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오히려 부모님의 반응은, 뭐랄까? ‘오, 나쁘지 않네.’ 이런 느낌이었어.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기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딱히 서운하다거나 그러진 않았어. 오히려 다행이었지.
1학년 때의 우수했던 성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떨어졌어. 대신에 각종 자격증이나 시험 점수들이 생겼지. 일종의 ‘스펙’이랄까. 그때까지만 해도 일종의 자신감 같은 게 있었던 거 같아. 내가 나온 대학보다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할 거라는, 뭐 그런 거. 직접 입 밖으로 꺼내 말 하진 않았지만, 엄마도 그랬던 거 같아. 그러니까 강남에 있는 유명 토익 학원이나 자격증 학원 같은 것들도 보내주고 그랬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일은 우리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어. 우리는 계속해서 눈을 낮춰야 했거든. 눈을 낮출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고. 반대로 엄마는 점점 더 커졌어. 엄마의 존재가 너무나 커서 내가 금방이라도 그 밑에 깔려 버릴 것 같을 정도로.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나한테 화를 내거나 잔소리하며 압박을 가했던 건 아니야. 아주 무던하고 덤덤했지. 그게 이상하게 나를 더 작아지게 하더라고.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중소기업이라고 부르기도 뭐 할 정도로 작은 회사에 입사했어. 그렇게 어렵게 입사한 회사인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더라. 뭐, 애초에 오래 다닐 생각도 없었고 경력만 쌓고 더 좋은 회사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 근데 출근 첫날 엄마가 고등어 한 점을 내 밥 위에 올려주면서 그러는 거야. 거기서 딱 1년만 버티고 더 좋은 회사로 가자고. 참 이상해. 내가 생각했던 걸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아직도 나를 기대하는 엄마가 존나 짜증 나더라. 참 우리 엄마가 독한 게 1년도 안 돼서 회사에 잘려서 그 기대마저 또 저버렸는데도, 엄마는 우는 내게 괜찮다고 요즘 경제가 어려워서 다들 많이 해고당한다고. 더 좋은 회사 가면 된다고 위로한답시고 희망을 품더라. 그게 얼마나 나를 죽이는 말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엄마가 살기 위해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네. 아, 아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하는 말이었을 거야. 기대가 없는 사랑은 없다고 하잖아. 기대 없이는 도저히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거야. 그리고 나를 사랑해야 엄마가 살 수 있었겠지. 나는 천하의 나쁜 년이어서 그런지 그마저도 들어줄 수가 없었어. 백수가 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파도처럼 밖에서 안으로 밀려들어 갔지. 그러다가 방 밖으로 아예 나올 수조차 없게 됐고. 내가 방에서 나가지 않은 지 일주일 정도 됐을 즈음, 새벽에 엄마가 내 방 문고리를 잡고 울면서 그러더라.
“나는 네가 최소한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서 남들처럼 일하면서 평범하게 살길 바랐어. 그게 그렇게 큰걸 바란 건 아니잖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