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눈_1

엄마의 꿈

by 유가람


아무리 화상회의여도 일은 일이라고 옷은 제대로 갖추고 일하자더니 도대체 지는 뭔데. 축 늘어진 빨간색 등산복 안으로 보이는 처진 가슴팍, 얼마나 빡빡 긁었는지 손톱자국이 그대로 다 보이더라. 게다가 방에서 담배를 뻑뻑. 누가 기러기 아빠 아니랄까 봐. 화면 너머로 홀아비 냄새가 넘어오는 것 같았어. 부장은 뭐 자기 나름대로 심각한 분위기를 잡으려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만 푹푹 내쉬는데. 나 원 참, 난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게 되더라.


“미안하게 됐어, 소정 씨.”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진짜 미안하긴 한 걸까?


“소정 씨도 알잖아, 우리 회사 요즘 많이 힘든 거.”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힘든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무래도 소정 씨가 제일 늦게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어, 무슨 말인지 알지, 소정 씨?”


웃겼어. 무슨 말인 줄 아냐는 말은 결국 ‘너도 너 잘린 거 알지?’라는 말이잖아. 나도 알겠는데 정말 다 알겠는데, 변명이 너무 구차하더라.


“정은 씨는요?”


당황하며 어버버 대는 부장의 얼굴이 꼴 보기 좋아서 한 번 더 따져 물었어.


“정은 씨가 제일 늦게 들어왔잖아요. 근데 왜 저예요?”


자기도 기분이 나빴나 봐. 어린년이 말대꾸해서, 누르스름한 흰자위가 빨갛게 변하더니 매서운 눈으로 나를 째려보더라.


“… 소정 씨, 김정은 씨가 소정 씨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일을 더 잘하잖아요.”


와, 할 말이 없더라. 진짜 너무 쪽팔려서 얼굴까지 새빨개졌는데, 주먹은 막 부들부들 떨리는데, 뭐라 말을 못 하겠더라. 근데 부장 놈은 꼭 한술 더 떠요.


“미안하지만 회사에선 당연히 더 돈이 되는 사람을 고용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소정 씨 생각해서 나름 돌려 말한 건데. 소정 씨는 끝까지 눈치도 없네요.”


무슨 핀이 팍 나간 것처럼, 나도 모르게 책상을 주먹으로 후려쳤어.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지.


“이런 좆…!”


근데 거기서부터 목소리가 막 안 나오는 거야, 이런 좆같은 회사 필요 없다고, 회사도 월급도 쥐똥만 해서 여기 다닌다고 말하기도 쪽팔렸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좆’ 이후로 말이 안 나오더라. 막 목을 부여잡고 입 모양으로라도 쌍욕을 뱉으려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입이 안 움직이는 거야. 그런 나를 지켜보는 부장은 표정 하나 안 변하더라. 부장도 알았던 거지, 그냥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걸. 결국 분을 못 이긴 나는 덥석 노트북을 집어 들었어.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번쩍 들어 올리고 이걸 던져 말아 그러고 있는데 부장이 그러더라.


“소정 씨, 그거 던지면 어떡하려고? 소정 씨 노트북 살 돈은 있어?”


마지막까지 쪽팔리게. 어떻게 그런 것까지 들키냐. 참나, 홧김에 들어 올리고 일 초도 안 돼서 생각했어. 아. 나 노트북 살 돈 없는데 다시 내려놓을 수도 없고. 근데 거기서 내가 어쩌겠어. 나도 자존심이 있지. 나는 네 말이 틀렸단 걸 증명해야 했거든. 나 그 정도로 거지는 아니라고. 그래서 눈 딱 감고 노트북을 꼭 잡은 손에 힘을 쓱 풀었어. 무슨 산꼭대기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 천천히 아득히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나도 모르게 눈을 꼭 감고 소리를 지르게 되더라 안돼! 하고. 그리고 눈을 떠보니 불 꺼진 형광등이 보였어. 또 꾼 거지 이놈의 개 같은 악몽. 매번 꾸는 악몽인데도 꾸는 그 순간만큼 현실하고 분간이 잘 안 돼. 늘 생생해. 해고됐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쿵 하고 아래로 무겁게 떨어지는 느낌마저도 항상 똑같아. 심지어 목에 무슨 커다란 알맹이라도 낀 듯 말이 안 나오는 느낌까지도 말이야. 나는 늘 이렇게 내 아침, 아니 오후를 사실 알 게 뭐야. 어차피 내 방은 눈을 떠도 감은 것처럼 캄캄한데 말이야. 일어나서 제일 먼저 노트북을 켜. 그때가 내 세계에서 해가 뜨는 시간이야.


방에서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없을 수도 있어. 나의 경우엔 그 후자였어. 난 생각보다 많은 걸 하지 않았어. 가축만큼이나 아주 단순한 삶을 살았지. 눈을 뜨면 곧바로 게임을 했고, 그러다 배가 고프면 방문 앞에 엄마가 놔둔 밥을 먹었지. 그리고 다시 게임을 하고 졸리면 잤어. 이런 생활을 한, 한 달 정도 반복하다 보면 너무 한심해서 나를 죽이고 싶었어. 나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길어지다 보면 결국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 마치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말이야. 직장을 다닐 때도 자주 그랬었는데. 집에 있어도 그러더라고. 결국 인간은 생각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행복할 수 없는 존재인 거 같아. 그래도 밖보단 방이 나아. 방에는 ‘타인’이 없잖아. 물론 방문 너머에는 ‘가족’이라는 타인이 살고 있지만 말이야. 맞아. 그게 제일 골칫거리였던 거 같아. 방문 너머 사는 타인.


직장인은 직장에 있고 학생은 학교에 있을 시간, 한 2시쯤. 그 시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어. 엄마랑 아빠가 집에 없는 시간이기도 하고 말이야.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으면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그 소리가 꼭 파도 소리 같이 들려. 손톱만큼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살며시 들어와 머리칼을 살살 날리면 딱딱한 방바닥은 어느새 견고하게 만들어진 낡은 나무배처럼 느껴지고, 이부자리를 둘러싼 쓰레기들은 배를 둘러싼 작은 섬들 같아. 그 고요함, 그 평화, 나는 그 시간을 가장 좋아했어. 그러나 언제나 좋은 시간은 길지 않았지. 행복이라는 건 내 맘대로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주변 상황이 따라줘야 가능한 거지. 나에게 있어서 그 주변 상황이란 ‘엄마의 귀가’였어. 하루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집으러 귀가하신 거야. 그것도 자기 친구들이랑 함께. 나의 평화는 아줌마들의 귀를 찌르는 듯 높은 음의 웃음소리와 함께 무너졌지. 그럴 때마다 정말 드는 생각인데, 엄마는 참 이기적인 거 같아. 이 집에 자기 혼자 사는 것도 아닌데 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마음대로 친구들을 데리고 오잖아. 심지어 이 집의 명의가 엄마가 아니라 아빠인데도 말이지. 그것보다 더욱 짜증 나는 점은 당최 조용히 있질 않는다는 거지. ‘거실’이라는 가족의 공용공간을 마치 자기들 안방이라도 된 것처럼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큰 소리로 떠들어대. 이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통화하는 그런 몰상식한 사람들이랑 다른 게 뭐냐는 말이야. 내용은 하나 같이 전부 자식 자랑이야. 자식의 자랑이 곧 자신의 자랑인 셈이지. 그래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 근데 왜 내 얘기를 하냐고. 내가 자기들 자식도 아닌데 왜 나를 걱정하는 척 위선을 떠냐고. 왜 나를 이용해서 자기 자식 올려치기를 하냐는 말이야. 근데 더 열받는 건, 엄마가 거짓말을 했어. 아직도 취직 못 했냐는 아줌마들 질문에 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 어렸을 때부터 엉덩이가 커서 그런지 앉아서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더라. 엉덩이 큰 나는 책상에 앉아서 게임하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말이야. 아줌마들은 엄마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어. 나라도 안 믿었을 것 같아. 그중 자기 아들이 차장으로 승진했다고 자랑을 늘어놓던 아줌마는 서른셋이나 먹은 아가씨가 무슨 공부를 하냐, 자기 집이 그렇게 잘 사는 것도 아닌데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냐 그러더라. 근데 엄마는 무슨 대사라도 준비한 듯 한치에 망설임 없이 거짓말을 술술 하더라니까.


“회사는 더는 평생직장이 아니지. 기대수명 100살 이상인데, 겨우 나이 오십에 정년 퇴임 당한 나 보면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공무원이 정답이지. 우리 딸 소정이는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숲을 보는 거야.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 거라고.”


그건 아마도 엄마가 원하는 딸 ‘소정이’의 모습이었을 거야. 그래서 내 방 앞에 매번 밥이랑 같이 공무원 시험 문제집을 가져다 놓았던 거지. 지겨웠어.

아직도 서른셋의 딸을 자신의 꿈으로 삶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