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눈_3

이렇게 살기 싫어서 그래

by 유가람

셀 수없이 많은 사람을 쏴 죽이고, 죽기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곤 했어. 멈추고 있는 건지 뛰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던 심장도 빠르고 강하게 쿵쾅쿵쾅 뛰었고, 온몸에 피가 확 도는 기분이었지. 한 마디로 도파민이 내 몸과 정신을 완전히 지배했다는 거야. 그래서 게임 중독이 무서운 건 가봐. 그런데 어쩌겠어, 그 방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자극이라고는 도파민뿐인데. 그러다 어느 날 게임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난 킬러가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웃기겠지만, 진짜 진지했어. 혼자서 아무도 안 만난 채 방에만 있어 봐. 이런 상상쯤은 우스운 측에도 못 껴. 사람의 머리는 너무나도 똑똑해서 세상의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다 만들어낼 수 있거든. 생각해 봐, 신이 어떻게 생겼겠어?


아무튼 그렇게 킬러의 빙의한 채 거대한 컨테이너 뒤에 숨어서 열심히 총을 쐈어. 그들은 날 보지도 못한 채 영문 모를 죽임을 당했지.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자주 하는 살인 방법이었어. 한참 도파민과 자만심에 취했을 때쯤 그만 적에게 들켜 뒤에서 어깨에 총을 한 방 맞고 말았어. 근데 그때 내가 하필 머리를 긁으면서 게임을 하고 있었던 거야. 왜 그 있잖아, 진짜 큰 비듬을 뜯어낼 때 느껴지는 그 더럽고 변태 같은 이상한 쾌감. 그날따라 그 쾌감을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 한 손으로는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열심히 도망쳤어. 만약 머리 긁는 걸 포기했더라면 그렇게 죽진 않았을 거야. 머리에 총을 맞는 일까지는 없었을 거라고. 요즘 게임 참 잔인하도록 현실적이더라. 머리가 무슨 폭탄 터지듯 터져버리더라고. 화면은 온통 빨간 피로 적셔지더니 검은 화면으로 뒤바뀌었어. 그리곤 확인 사살이라도 하려는 듯 큰 글자로 문구 하나가 띄워지더라.


‘YOU DEAD’


근데 거기까지는 뭐 그렇게 충격도 아니었어. 늘 있는 일이었으니까. 죽고 사는 일이라는 게 늘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거잖아 원래. 아무튼 진짜로 충격적인 건 화면에 튄 정체 모를 하얀 가루들이었어. 화면에만 묻어있는 게 아니라 키보드 여기저기에도 다 튀었더라고. 무슨 분필 가루 튀듯이. 손가락으로 쓱 닦아서 보는데 이런 미친, 손톱에도 끼어있더라니까. 딱 보니까 뭔지 알겠더라. 근데 알면서도 확인해보고 싶은 심리 알지?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한 번 털어봤어. 너 혹시 한여름에 내리는 눈 본 적 있어? 난 있어. 긴 머리칼을 타고 눈이 내리듯 하얀색 비듬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걸, 진짜 와, 실소가 터져 어이가 없어서.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살 바엔 죽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뒤질 용기는 있나, 뭐 그런 생각. 홀린 듯 책상 서랍에서 가위를 꺼냈어. 그리곤 거울 앞에 섰지. 먹고 버린 햄버거 껍질 위에 비장하게 서서는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목 어딘가 부분까지 싹둑싹둑 잘랐어. 이상하게 시원하더라고. 뭐랄까 가벼워진 느낌? 그때 암막 커튼 사이로 햇빛이 슬며시 들어오는데, 문득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늘 머리칼이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없으니 가벼워진 것 같으면서도 휑한 느낌이 들었어. 뭐랄까 무언가 툭 떨어져 나간 느낌? 이제 더는 물러날 곳도 없겠더라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내가 했던 건 고작 방문을 두드리는 일이었어.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내겐 진짜 큰 도전이었어. 무려 내가 먼저 엄마에게 대화를 신청한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거든. 그게 뭐라고. 아무튼 방문 넘어 작게 뚜벅뚜벅 걸어오는 엄마의 발소리 들리자,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 그 짧은 사이에 고새 손톱도 다 물어뜯어 버렸더라고. 발소리가 멈추고 이윽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어.


“왜?”


차갑더라. 내 예상 밖이었어. 뭐 되게 기뻐하길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딸이 몇 년 만에 먼저 말을 걸었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놀랄 줄 알았거든. 근데 너무나도 담담한 듯한 엄마의 태도는 날 더 긴장시켰어. 결국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지.


“뭐 필요한 거 있어?”

“…”

“소정아.”

“…”

“… 생각나면 말해.”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종료를 알리는 엄마의 한 마디에 갑자기 화가 나더라. 내가 먼저 입 다물어 놓고는 엄마가 왜 맨날 이런 식인지, 왜 내가 준비될 때까지 도통 기다려주질 않는지 참아줄 수가 없겠더라.


“기다려. 이제 말하려 하잖아.”


신경질적인 내 말투에 엄마도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나는 최대한 감정을 뺀 목소리로 말했지.


“빗자루랑 쓰레받기 좀. 아, 그리고 쓰레기봉투도 큰 거로.”

“… 청소기 있어. 청소기로 줄게.”


진짜 짜증 나더라. 솔직히 아주 잠깐 내가 엄마 우위에 있는 기분이었는데, 결국 내가 아래라는 걸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된 것 같더라고, 그것 좀 모른다고. 그렇게 엄마한테 청소도구를 받고 나서는 미친 듯이 청소했어. 구석구석 깨끗하게.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해, 한 번도 쉬지 않고 모든 걸 쓸고 또 담아냈어. 그리고 마침내 깨끗해진 방을 마주했을 때, 이상하게 불안하더라. 다음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막 미친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좁은 방을 뺑뺑 돌았어. 점점 숨이 가빠오기 시작하더니 머리가 어지럽더라. 방 안에 있던 물건들을 점점 형태를 잃어가고 세상은 뺑글뺑글 돌았어. 끊임없이 회전하는 찻잔 놀이기구를 탄 듯 배속 깊은 곳에서부터 구역감이 올라왔지. 그러다 픽, 그냥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져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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