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기 싫어서 그래
세상에 진짜 정확한 건 하나도 없는데 내 배꼽시계만큼은 정말 정확해. 내가 딱 배고파서 눈을 뜨면 곧장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찔러. 이 시간만큼은 본능적으로 아는 거지. 아빠가 돌아오는 시간. 현관문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나면 습관적으로 눈을 감아. 이제 더는 내 방에 들어오지도 않는데도 자는 척을 해.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지 9시까지만 참으면 된다고. 분명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나에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가했던 건 아냐. 그냥 좀 안 친해서, … 좀 부담스럽달까? 아무튼 그날따라 시간이 정말 안 갔어. 잠도 안 오고 배는 미친 듯이 고프고. 어떻게 하면 이 괴로운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핸드폰을 들었어. 그리고 사탕을 부수는 게임을 켰지. 이름이 무슨 ‘크러쉬’였는데…. 그 사탕이 세 개 이상 모이면 터지는 게임 말이야.
아무튼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동시에 8시 뉴스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어. 개 같은 거, 1시간이나 더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었지. 뉴스가 끝나야지만 아빠가 안방으로 돌아가거든. 아마 그런 컨디션으로 게임을 해서 그런가, 평소엔 관심도 없고 잘 들리지도 않던 뉴스 소리가 다 들렸어. 출산율 하락이니 뭐니, 시험관 출산 실험이 어쩌고 저쩌고. 돈을 무슨 몇 조를 쏟아붓는다더라고. 그럴 바엔 나 나 주지. 솔직히 그렇지 않아. 사람들이 시험관 출산이 가능해진다고 해서 애를 낳고 싶겠냐고. 그렇잖아, 내 배 아파서 애 낳는 거보다 키우는 게 더 골치니까 안 낳고 싶은 거 아니겠어? 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회피하는 거지. 골치 아프고 받아들이기 싫으니까 괜히 딴짓하는 거. 그것만큼은 은둔형 외톨이인 내가 잘 알지. 그렇게 혼자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에서 불꽃이 타오르면서 퀘스트가 뜨더라고. 무려 점수 2배 찬스. 거기서 딱 500점 정도만 넘으면 신기록 달성이었지.
나도 내가 그렇게 그 게임을 좋아했는지 몰랐는데 막상 기회가 오니까 사람이 달라지더라. 무릎까지 꿇고 바짝 엎드려 화면 안에 들어갈 듯 게임을 하더라니까. 사탕이 깨지고 점수가 차오를수록 점점 더 흥분됐어. 이제 머지않아 내 한계를 부실 수 있었거든.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사탕이 폭발하듯 깨지고, 20850점. 신기록을 달성했지. 얼마나 기뻤는지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만세를 했어. 팔을 막 온 방향으로 흔들면서 말이야. 근데 꼭 좋다고 흥분해서 까불면 사고 치는 거 알지? 그 느낌에 너무 몰입하느라 주변 신경을 못 써서 말이야. 내가 그랬어. 그렇게 까불다가 그만 핸드폰을 무릎 위에 떨어뜨렸지. 그냥 떨어뜨렸으면 몰라. 이게 또 하필 모서리로 떨어져서 무릎뼈를 정통으로 때린 거야. 와, 나 진짜 무슨 종이라도 친 줄 알았다니까. 막 댕 하고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진동이 뼛속 깊이 퍼져나가는데, 진짜 내가 살면서 신체적으로 이 정도로 고통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더라고. 무릎을 감싸 안고 버둥거리며 온몸으로 고통을 진정시키려 하는데, 그때 다시 희미하게 뉴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라.
“대표적인 곳으로는 경북 상연시, 전북 김제시, 그리고 충남 공주시 중동이 있습니다. 이 세 지역 중 특히 상연시는 아예 사람이 한 명도 살지 않아 도시 자체가 이미 소멸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판단됩니다. 현재 상연시에 나가 있는 김재필 기자가 시내 거리 상황 전달해 드립니다.”
그 뉴스는 아마 내가 태어나서 들어본 뉴스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뉴스였을 거야.
생각 외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건 불행하지 않아. 그러니까 방에서 안 나가는 거 아니겠어? 왜 쇼펜하우어가 그랬잖아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기는 일이라고. 뭐, 다만 조금 외로울 뿐이지. 만약 불행과 외로움 둘 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거 같아? 난 외로움. 어차피 불행은 외로움을 낳거든. 사람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불행한 사람은 전염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소외되게 돼. 오히려 사람과 함께 있으면 더 외로워지는 거지. 뭐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어. 그 사람이 가족이라 해도 예외는 없었지.
중학생 때였을 거야. 설인지 추석인지 아무튼 명절이었는데 그때 온 가족이 할머니 댁에 모였었어. 며느리들을 제외한 나 포함 가족들은 거실에 둥그러니 앉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지. 명절 특집 예능 같은 거였는데, 한참 재밌게 보고 있는데 엄마가 과일 좀 가져가라고 나를 막 부르는 거야. 무시하니까 내 이름을 연속 세 번이나 부르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엌에 갔지. 사과, 배, 딸기, 등등 참 많이도 깎았더라고. 아마 과일 장사를 하시는 큰아빠가 가지고 오신 거였겠지. 무거운 과일 쟁반을 들고 거실로 갔어. 가족들이 앉은 맨 가운데 바닥에 딱 두면 되겠더라고. 그래서 허리를 푹 숙여 쟁반을 두려는데 그때 찰싹. 누가 내 엉덩이를 때리더라. 화들짝 놀라서 쟁반에 있던 과일도 쏟아버렸는데, 큰아빠가 나를 보고 실실 웃고 있더라고. 그리곤 내 엉덩이를 꽉 움켜쥐더니 그러더라.
“소정이는 좀 더 먹어야겠어. 나중에 애 잘 낳으려면 엉덩이가 커야 해.”
진짜 사람이 너무 황당하고 당황하니까 아무 말이 안 나오더라. 수치스러워서 얼굴은 빨개지는데 큰아빠는 호탕하게 웃고 있고, 고모는 떨어진 과일 아까워서 어떡하냐며 줍고 있더라고. 마치 이 상황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이야. 여기서 뭐라 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거 같았어. 그래서 뭐라고 할 수가 없겠더라. 물론 나도 가만히 있고 싶진 않았지. 근데 그 어린 내가 갓난아기 때부터 알고 지내던 피 섞인 가족이 날 성추행했다고 노발대발하면 그때 누군가가 내 편은 들어줬을 거 같아? 난 없다고 봐. 아빠마저 날 외면했는데 누가 내 편이 되어주겠어. 울먹이며 도와달라는 자식의 눈빛도 모르는 척 피하는데. 엄마도 다를 거 없어. 그렇게 큰 큰아빠의 목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는데 묵묵히 설거지만 했잖아. 어른들은 그런 불편한 상황을 싫어해.
고등학생이 되고 나는 가족으로부터 채울 수 없는 내 외로움을 친구와 연인으로부터 채우려 했어. 그리고 그들은 꽤 잘해줬지. 그 시절엔 진짜 가족보다 또래 친구가 먼저잖아. 어른들이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다 먼저 알아주고 공감해 주고. 날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건 그들밖에 없다 뭐.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잠시 했었지. 근데 그것도 얼마 못 가더라. 글쎄 학원 가는 길에 내 절친하고 남자친구가 서로 팔짱을 끼고 걷는 걸 봐버린 거야. 심지어 그 썅년이 그놈 볼에 뽀뽀까지 쪽 하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두 연놈에 머리끄덩이를 잡고 확 박치기해 버리는 건데, 안타깝게도 난 그때도 아무것도 못 했어. 그냥 수치스럽더라고. 큰아빠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여태껏 속아왔다는 생각에 배신감도 컸지만, 일단 내가 병신 같았어. 절친한 친구에게 남자친구를 뺏긴 내가 불쌍한 게 아니라. 자존심이 상했어.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냥 모르는 척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다짐했어. 다시는 인간 새끼는 믿지 않기로.
그 일이 있었다고 해서 내가 여태 연애도 못 하고 친구 한 명 못 사귄 건 아니야. 나도 꽤 많은 남자를 만났고 친구도 적당히 사귀었지. 생각해 보면 대학 시절 내 인생이 가장 찬란하고 즐거웠던 거 같아. 몰래 수업을 안 듣기도 하고, 술 먹고 친구랑 싸우다가 울며 화해하기도 하고,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복학생과 사랑에 빠져보기도 했지.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었어. 물론 마냥 좋기만 한 대학 시절은 아니었지만, 안 좋은 추억마저도 좋은 추억처럼 생각날 만큼 좋은 시절이었지.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나의 암흑기는 다시 시작됐어. 취직이란 걸 해야 했거든. 졸업한 지 1년 정도 되니까, 친구들 사이도 취직한 친구와 취직 못 한 친구, 그렇게 나뉘더라. 좀 배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었어. 내 기준에서는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 회사만 들어간 것처럼 보였거든. 뭐 나는 내 나름대로 대단한 도전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 그렇게 2년 정도 됐을 땐 취직 못 한 친구가 한 명도 없더라. 나만 못 했던 거지. 다들 날 무시했어. 내가 그들을 무시했던 것처럼. 난 걔네랑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걔네보다 못했던 거지 뭐. 그렇게 내 주제를 깨닫고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월급을 주는 어느 중소기업에 취직했어. 나는 나름 눈을 낮출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낮춰 없는 자존심 상해가며 취직한 회사였는데, 근데 거기서도 날 병신 취급하더라. 팀장님은 내가 일한 서류만 가져다주면 혀를 끌끌 찼어. 그리곤 말했지.
“아니 소정 씨는 일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일이 안 늘어요, 도대체?”
뒤에서 풉 하고 웃음 터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지. 웃겼나 봐. 내가 일한 지 한 달 좀 넘었는데도 일을 제대로 못 해서. 귀찮다고 제대로 알려준 적도 없으면서. 그래도 억울해할 순 없어. 나보다 늦게 들어와서 똑같이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애가 나보다 잘하니까.
지옥 같은 회사에서 퇴근하고 숨 좀 돌리나 싶으면 지하철을 타야 해. 그럼 다시 또 시작인 거야. 역 출입구에서부터 막 한숨이 나와. 이미 줄이 기다랗게 서 있거든. 분명 30분 걸리는 거리인데도 1시간이 넘게 걸려서 가야 해. 그렇게 겨우겨우 승강장까지 내려와서 이제 막 지하철을 타려고 하면 뒤에서 사람들이 막 밀어. 내 발로 걸어가고 있는 건지 파도에 떠밀려 들어가는 건지도 몰라. 그렇게 지하철에 타면. 어깨를 반으로 접어야 해. 그래도 사람들이 자꾸 닿아. 가슴이고 엉덩이고 할 거 없이. 사실 뭐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내 등에 핸드폰 기대고 영상 보는 놈도 있는데. 가장 최악이 언젠 줄 알아? 열차가 멈추고 출입문이 열릴 때야. 누군가는 사람들 속을 파헤쳐 문밖으로 나가려 하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는 이 안으로 들어오려고 사람들을 밀어 넣거든. 그땐 장기가 눌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히려 지금이 덜 불행하다는 거야. 봐봐 지금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
다시 방문 앞에 섰어.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더라. 축축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 그때도 너무 떨렸는데 이번엔 정말 차원이 다르더라니까. 어쩌면 그 순간이 내가 무언갈 가장 크게 결심한 순간이었던 거 같아.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는지, 곧 있으면 해가 지겠더라고.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도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주먹을 꽉 쥐고 방문을 두들겼어. 엄마는 역시나 무심한 발걸음으로 걸어와 세상 관심 없는 목소리로 답하더라고.
“왜?”
순간 아무 말도 안 나오더라. 계속해서 답이 없는 내가 답답했는지, 배가 고프냐, 뭐 또 필요한 게 있냐 자꾸만 물어대는데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는 거야.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엄마도 슬슬 지치는 듯했어.
“말할 거야 안 할 거야?”
“…”
“더 기다려줘야 해? 아니면 이따 다시 생각나면 이야기할래?”
“…”
“가도 되는 거지?”
“… 아니!”
“이제 생각났어?”
“응. 엄마, 나…….”
“응, 너.”
“그러니까 나…….”
“응.”
“그게 그러니까…….”
자꾸만 머뭇거리기만 하고 말은 안 하니까 결국 엄마가 신경질을 내더라고.
“그게 그러니까, 너, 뭐.”
“……혼자 살고 싶어.”
뱉고 나면 엄청 속 시원할 줄 알았는데, 막상 안 그렇더라고. 오히려 엄마의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어서 미친 듯이 떨리더라니까. 분명 안 된다고 할 거란 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 근데 어떤 식으로 안 된다고 말할지를 모르니까. 그래도 나름대로 엄마를 설득할 번지르르하고 논리적인 말들을 꽤 준비했는데 막상 닥치니까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무것도 생각도 안 나더라고.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아무 말도 안 하던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어. 아주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소정아.”
“응.”
“… 너 어차피 혼자 살잖아.”
와, 그 순간 크게 한 방 먹은 듯 정신이 멍해지더라.
“그 방에서 나오질 않는데 어떻게 우리가 같이 사는 거야, 그게. 너 혼자 사는 거지.”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은데 너무나도 사실이라 뭐라 할 말이 없더라.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순간 울컥하더니 눈물까지 고이더라니까. 근데 어떻게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엄마……, 나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 이렇게 살기 싫어서 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