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은둔형 외톨이
“전방 1km 앞, 고속도로 출구 전 마지막 휴게소입니다.”
내비게이션 안내 멘트와 함께 스르르 눈을 떠보니, 뻥 뚫린 회색 아스팔트 위, 푸른 하늘이 보이더라. 어찌나 맑은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더라고. 작은 백미러로 보이는 오랜만에 보는 아빠의 얼굴. 많이 늙었더라. 걱정이 짙은지 미간도 움푹 패어있고. 엄마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 세월이 세월인지라 늙은 것도 늙은 거지만 살도 많이 쪘더라고. 근데도 야위어 보였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도로 위 휴게소 전광판을 보더니, 아빠가 물었어.
“깨울까? 마지막 휴게소인데.”
“뭐 하러.”
휙 하고 부는 바람에 담배 연기가 순식간에 차 안을 빠져나갔어. 마치 엄마의 말처럼.
낯선 천장, 낯선 형광등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생각보다 위를 올려다보는 건 어디서 이건 딱히 기분이 좋진 않다는 거야.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 안을 살펴보는데 인터넷에서 봤던 것보다는 확실히 작더라고. 분명 16평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실평수는 거의 뭐 6평 남짓 정도 해 보였어.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어. 주방에 일체형처럼 붙어 있는 작은 세탁기와 냉장고도 있고 책상도 있었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화장실이 너무 좁아서 샤워하면 물이 변기까지 물이 다 튀겠더라고. 사실 욕조도 좀 있었으면 했는데, 나름의 로망이었거든. 시원한 맥주 한 캔 딱 마시면서 반신욕 하는 뭐 그런 거. 아쉬워도 뭐 어떻게, 그냥 살아야지. 맥주를 생각하니까 목이 타서 냉장고 문을 열어봤는데, 텅 빈 냉장고 안에 500ml 생수 한 병이 덩그러니 놓여있더라고. 밑에는 노란 포스트잇이 붙은 신용카드가 있었어. 포스트잇에 적힌 글씨체를 보니까 딱 알겠더라, 엄마인 거. 앞에 편의점 있으니 뭐라도 사 먹으라고, 인스턴트 같은 거 말고. 편의점에 인스턴트 말고 뭐가 있다고.
참 오랜만에 창문 밖을 내다보는데, 정말 아무도 없더라. 낡은 건물들도 울창하게 심어진 나무들도 모든 게 멈춰버린 듯 딱 그대 론데 사람만 없었어. 아주 완벽하게도. 그런데 왜 도시가 소멸했다고 하는 걸까. 도시는 여기 그대로 제 자릴 지키고 있는데. 사람이 없는 도시는 도시가 아닌 걸까? 그건 너무 인간중심주의 적인 생각인 거 같아.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저 비둘기들에게도,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들한테도 이곳은 여전히 도시로서 존재하는데 말이야. 물론 나에게도 말이지. 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창밖을 내려다보는데, 이 정도면 나갈 수 있겠더라고.
문이 많이 낡았는지 아주 살짝만 열었는데도 칠판을 긁는 듯, 끼익 하는 소리가 귀때기를 때렸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 굵기 정도로만 열어 밖을 내다봤는데 역시나 아무도 없더라고. 딱 제 몸 하나 옆으로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정도로만 문을 열고 조심히 빠져나오는데, 스스로도 그 모습이 약간 웃기는지 실소가 터지더라고. 아무도 없는데 그러는 것도, 그렇지만 검은 모자에 검은 후드티까지 뒤집어쓰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문밖으로 나오는 게 만화에서 본 영락없는 도둑의 모습 같았달까. 그때만큼은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던 거 같아. 하지만 곧장 현실에 부딪혔지. 불이 들어오지 않는 엘리베이터 버튼 세 번 정도쯤 눌러보고 나서야 깨달았어. 더는 작동이 안 된다는 걸 관리비가 분명 오만 원 정도였던 거 같은데. 무엇을 위해 내는 거지 살짝 화가 나더라. 사실 그보다 더 화가 난 건 우리 집이 502호, 5층이었다는 거야. 내려가는 건 별문제가 아니라도 올라오는 건 확실히 문제일 게 분명했거든. 아무튼 뭐 어떡하겠어, 일단 비상계단으로 내려갔지.
굴같이 어두운 복도에서 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걸어 나가는데, 와 진짜 밝더라. 왜 영화 같은데 보면 죄수들이 감옥에서 출소할 때 밝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눈살을 찌푸리잖아. 딱 그 장면 같았어. 너무 오랫동안 안에서 살다 보니 밖이 얼마나 밝았는지 까먹었던 거지. 왜 이제야 나왔나 싶으면서도 따가운 햇살이 마냥 좋지만은 않게 느껴지진 않았어. 뭐랄까 잔인하달까. 하지만 관리 안 된 관리사무소의 쌓인 먼지를 보며 괜히 맘이 편해졌지. 오랫동안 아무도 없었다는 건 잔인할 수 없다는 것과 같았으니까. 그러다 스치듯 관리비 오만 원이 떠오르긴 했지만.
시간이 멈춘 듯 황폐한 거리는 어쩐지 아름다웠어. 간판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낡은 상가들 안에는 고운 입자의 먼지가 쌓여 있고, 그 안은 사람 대신 이름 모를 어떤 풀이나 자연으로 채워져 있었지. 얼마 못 가 딱 보이더라, 엄마가 말한 편의점. 이곳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어. 애초에 여기 있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아주 새것처럼 딱 각이 잡혀 있고, 아기 궁둥이처럼 페인트칠도 매끌매끌 잘 되어 있더라고, 간판도 똑바르고. 유난스럽게도 깨끗한 유리문을 당겨 여는데 이상하게 안 열리는 거야. 안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고. 그래서 어떡하지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데, 옆에 보니까 카드 인식기가 있더라고. 알고 보니 카드를 넣어서 인식하면 자동으로 열리는 거더라고. 내가 그래, 밖으로 안 나간 지 너무 오래되다 보니 그런 것도 잘 몰라. 생각보다 편의점 진열장은 가득 차 있었어. 손님이 없어서 그랬다기엔 누군가 꾸준히 관리한 듯 아주 멀끔했어. 전과는 다르게 새로 나온 상품들도 많아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이 작은 편의점 안에 CCTV가 무슨 5대나 있더라. 누가 뭘 훔쳐 간다고. 근데 사실 바구니 안에 컵라면을 쌓아 올리면서 그냥 가져갈까 생각하긴 했어.
내 몸엔 근육이란 게 없나 봐. 분명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계단을 오르려니까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땀이 뻘뻘 나더라고. 얼마나 흘렸는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려 티셔츠를 끌어당겨 닦아봤는데, 티셔츠도 이미 축축하게 다 젖어있더라. 고작 5층까지만 올라가면 되는 건데도 말이야. 중간 정도쯤에선 욕도 한 거 같아. 너무 힘들어서. 근데 딱 진짜 죽고 싶다 생각이 들 때쯤 커다란 철문 위에 ‘5’라고 층수를 표기해 둔 간판이 보이더라고. 겨우 자살은 면했지 뭐.
502호, 드디어 문 앞에 서서 땀에 젖어 미끄러운 손을 바지에 닦아내고 비밀번호 키패드를 누르는데, 이런 망할… 번호가 안 눌리는 거야. 손이 젖어서이겠지 하고 다시 바지에 땀을 벅벅 닦아내도 소용없었어. 그때 머리에 불안한 생각에 스치더라. 그 엘리베이터, 아무리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던 그 버튼. 그것도 딱 그랬어. 아무리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던 거지. 생각해 보니 나갈 때, 잠길 때 나는 요란한 전자음이 우리 집에서 나던 소리보다 더 길고 요란했던 게 떠오르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결국 못 열었어. 엄마한테 전화할 생각까지 했는데 이런 미친,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핸드폰이 없더라고. 방에 두고 나온 거지. 밀려오는 황당함과 허무함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어. 다 포기하고 싶은데 포기할 방법도 없더라. 그냥 멍하니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바라봤어. 그러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 옛날에도 이런 적 있었지 않았나? 하고.
교복 치맛자락을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난 이런 생각을 했었지. ‘내 나이 열아홉, 오줌을 지리게 되는 날이 오는구나.’ 그때쯤이었나, 쿵. 쿵. 쿵.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구세주의 발소리. 경비아저씨가 짤랑짤랑 소리 내는 커다란 열쇠 꾸러미를 들고는 터덜터덜 걸어오며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했어.
“학생 비켜 봐.”
경비아저씨가 열쇠 꾸러미에서 네모난 직사각형의 배터리를 번호키에 대자, 띠리리 소리가 나더니 번호 키패드의 불이 들어왔어.
“자, 이제 비밀번호 눌러봐. 열릴 거야.”
무작정 뛰어 내려갔어. 분명 올라올 땐 30분도 넘게 걸렸던 것 같은데 막상 내려올 땐 고작 1분도 안 걸리더라니까. 물론 숨은 올라갈 때만큼 찼지. 무릎을 잡고 헉헉거릴 만큼.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옆을 딱 보는데
관리사무소에 유리창에 비친 내 눈동자에 정확히 들어왔어. 벽에 걸린 9V 배터리가. 아예 빨간색 글씨로 ‘비상용’이라고 스티커에 적혀 있더라고. 그 순간 희열과 흥분감에 가득 차 문도 아니라 유리창으로 그냥 막 직진했어. 유리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해서는 그대로 유리창에 이마를 박고 말았지. 뒤로 넘어갈 정도로 세게 박고 나서야 아마 알아차렸을 거야. 아차차 하고 옆에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여는데, 젠장 또 잠겨있더라고. 그 앞에서 진짜 소위 ‘별 지랄’을 다했을 거야. 안 열리는 문을 발로도 차보고 매달려도 보고, 심지어 오피스텔 건물 화단에 있는 돌도 집어와서 문고리에 내려쳐도 보고, 유리창에 돌로 찍어도 보고 던져도 봤는데 안 되더라. 무슨 관리사무소 유리창을 방탄유리로 만들었나 봐. 한국에서 총 맞을 일이 뭐가 있다고. 결국 그렇게 포기하고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편의점으로 가봤어. 배터리를 들은 본 거 같긴 한데 9v 배터리는 못 본 거 같았거든.
나의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 잘 맞아.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만. 편의점 진열대 맨 아래 건전지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없더라고. 앞쪽에 있는 것들도 다 들추고 꺼내 봤는데도 소용없었어. 포기하는 심정으로 편의점을 나오는데 또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 그래서 그냥 거기에 쭈그려 앉았어. 어차피 갈대도 없었거든. 밀려오는 좌절감에 죽어버리고 싶었어. 내가 혼자 살고 싶다고, 이젠 변하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온 지 하루 만에 이런 일이 생겼고, 벌써 후회하고 있다는 거야. 근데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방법도 없었어. 핸드폰도 없고 날 도와줄 사람도 없었거든. 사람이 없어서 좋아서 이곳으로 왔는데 참 아이러니하더라.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밀려왔어. 이런 상황을 초래한 내가 너무 밉고 한심해서 죽여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더 죽고 싶었어. 근데 또 웃긴 게 엉엉 울면서 그런 생각도 했어. 아무도 없으니까 이렇게 맘 놓고 크게 울 수라도 있다고. 내가 너무 밉다며 내 머리를 때리면서 말이야.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날 때리는 손바닥도 너무 아프고, 맞은 내 머리도 너무 아파서 그만두고 싶을 때쯤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웬 남자가 날 쳐다보고 있더라고. 그것도 트렁크 팬티만 입은 예수 머리를 한 남자가 말이야. 어정쩡한 자세와 당황한 듯한 눈빛. 나는 그 남자와 약 3초간의 길고도 짧은 눈 맞춤을 하고는 냅다 비명을 질렀어. 그러자 남자는 더 당황한 눈으로 손을 막 아니라고 휘휘 저으며 일단 아니라고만 소리쳤지. 일단 비명을 멈추고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어.
“뭐가 아닌데요?”
“변태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 자연인이요.”
“…근데 왜 팬티만 입고 있어요?”
“아무도 없는 줄 알고요….”
“근데 왜 여기에 있어요. 여긴 자연이 아닌데, 자연인이라면서요.”
“뭘 좀 가지러 왔어요….”
“뭘 가지러 왔는데요?”
“스팸이요…….”
남자는 부끄러운 듯 빨개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며 말하더라. 나도 순간 풉 하고 웃음이 터져버렸어. 자연인이라면서 스팸을 가지러 왔다니. 뭔가 핀트가 안 맞잖아. 그래도 예의상 알려는 줘야 할 것 같아서. 여기 편의점에 스팸을 판다고 알려줬어. 그랬더니 남자가 뜬금없이 그러더라.
“저… 자연인이라니까요.”
순간 머릿속에서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요 하고 물어보니까. 머리를 막 긁적이면서 자기는 도시에 속세를 벗어던지고 자연으로 와서 자연과 함께 살기로 했다고 말하더라고. 근데 그건 뭐랄까 대답이 아니잖아. 동문서답 같은 거잖아. 그래서 다시 한번 물었지.
“그런데요?”
“그러니까 저…… 돈 없다고요.”
그 순간 싸늘한 바람이 한 번 휙 하고 지나간 거 같았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그래서 그냥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지.
“아…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남자가 갑자기 ‘저기요!’하고 또 나를 부르는 거야. 그래서 돌아보니까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불쌍한 얼굴을 하고는 이러더라고.
“저 3일 굶었어요. 아직 사냥하는 법도 익숙하지 않고, 더 따먹을 만한 것도 없어요. 그래서…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측은한 마음이 들더라고. 딱 봐도 엄청 뼈밖에 안 남은 듯 마르긴 했어.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지.
“혹시 핸드폰 있어요?”
“아니요.”
핸드폰 전화라도 빌려주면 스팸이라도 사줄까 싶었는데 그것도 없고 어쩌지 싶었어. 그냥 친절을 베풀기엔 나 나 역시도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스팸 사줄까요?”
“네?”
“대신 저 뭐 좀 찾는 것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