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없이 맑던 하늘은 어느새 석양의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우리는 간판도 없는 어느 폐 가게 안을 뒤지고 있었어. 아마 그게 열한 번째로 들어간 가게였을 거야. 진열대엔 물건은 몇 없고 먼지만 가득하더라. 심지어 가게 안에는 시멘트 바닥을 뚫고 생명을 피워낸 이름 모를 잡초 같은 풀들도 많았어. 그래도 뭐라도 없나 꼼꼼히 찾아보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남자가 소리치더라.
“어떻게 생긴 배터리라고요?”
“크고 네모난 모양이요! 9V 배터리!”
혹시나 하는 기쁜 마음에 남자가 있는 진열대로 가봤는데. 역시나 아니더라고. 남자는 지친 듯한 얼굴로 말했어.
“여기도 없는데요? 아무래도 없는 거 같아요. 곧 있으면 해도 질 거 같고.”
딱 봐도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어. 3일이나 굶었는데 얼마나 피곤했겠어. 근데 이상하게 난 도저히 포기가 안 되더라고. 눈치도 보이고 미안하기도 한데. 그냥 이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이름이 뭐였죠?”
“김한진이요.”
“한진 씨, 스팸 3캔은 어때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알 수 없는 얼굴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진열대에서 검은색 작은 손전등 두 개를 꺼냈어. 버튼을 눌러 불이 들어오는지까지 확인하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라.
“이제 갈까요?”
처음엔 좀 무서웠어. 무슨 공포체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가로등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밤거리를 작은 손전등 빛에 의지한 채 걸어 다녔으니까. 근데 한참을 걷고 몸도 힘드니 무섭지도 않더라. 결국 감정이라는 건 육체가 지배하는 게 아닐까 싶어.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슬플 때마다 미친 듯이 뛰어다녔을 텐데. 그럼 슬픔이란 걸 느낄 수도 없었을 거야. 더는 내 다리가 버텨주질 못해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을 땐 그냥 내가 먼저 포기하자고 말했어. 의외로 한진은 고민하더라고. 이번엔 자기가 포기하고 싶지 않았나 봐. 한진은 잠시 가만히 서서 생각하다 손전등으로 이곳저곳 주위를 비추어 봤어. 이제 더는 건물조차도 안 보이더라고. 한진도 포기하려는 듯 나를 따라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어. 그리고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 다 보더라. 아마 별을 보고 있는 듯했지. 나도 한진을 따라 멍하니 별을 올려 다 봤어. 얼마나 올려 다 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더는 별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이었을 거야. 내가 한진에게 먼저 물었어.
“이제 그만 갈까요?”
한진은 여전히 별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한진이 나를 따라 일어나더니 갑자기 소리치는 거야.
“잠시만요!”
한진은 내 뒤를 손전등으로 비췄어. 그리고 말했지.
“저기 봐봐요.”
빛을 향한 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커다란 영어 단어 ‘e’가 보이더라. 옆에 살짝 ‘m’도 건물에 가려져 보이는 거 같았어. 그게 뭐였는지 알겠어? 난 단번에 알았어. 이마트.
잠가 놓지도 않았더라고. 딱히 들어올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마트 안, 수북이 눈처럼 쌓인 먼지만 봐도 알 수 있겠더라고. 난 빠른 걸음으로 한진을 앞서 걸어가며 넓으니까 갈라져서 찾자고, 이쪽은 내가 찾아볼 테니 한진은 저기 반대편 쪽에서 찾아보라고, 대답도 듣지 않고는 가버렸지. 멀리 뒤에서 한진은 소리치더라. ‘정말요? 괜찮겠어요?’ 그의 떨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더라. 지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마 내 눈에서 불이 났다면 그 손전등보다는 밝았을 거야. 진짜 눈에 불을 켜고 진열장 한 칸 한 칸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봤거든. 이곳에서도 못 찾으면 정말 좆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진짜 그냥 망한 정도가 아니라 ‘좆됐다는’ 정도로 말이야. 그렇게 한참을 살펴봤을까. 어느새 마트 중간 지점쯤에 왔더라고. 아직도 못 찾았는데 말이야. 불안감이 엄습해 오자 바로 한진 생각이 났어. 그래서 소리쳐 물었지. 뭐 좀 찾았냐고. 저 멀리서 한진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어.
“네! 많이요!”
많이? 그게 무슨 말이지 하는 생각에 잠겨있는데 뒤에서 드르륵드르륵 카트 끄는 바퀴 소리가 들리더라. 돌아보니 한진이 무슨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더라고. 회색 트레이닝복 바지까지 입고 말이야. 카트에는 무슨 캠핑용품 같은 걸 잔뜩 싣고는 난생처음 보는 스텝을 밟으며 리듬 타면서 걸어가더라고. 누군 지금 배터리 찾겠다고 개고생 하고 있는데 지는 신나 가지고. 조용히 한진의 뒤를 쫓아가는데. 가관이더라. 보이는 물건마다 오! 아! 아싸! 각종 감탄사를 연발하며 걸신들린 듯, 이미 가득 차서 더 들어갈 때도 없어 보이는 카트에 테트리스 하듯 쌓아 올리더라고. 자기 눈을 가릴 정도로 쌓았는데도 얼마나 잘 쌓았는지 코너 끝을 좌회전하듯이 돌 때도 흔들림이 전혀 없더라고. 뭔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니까. 그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라고. 그리곤 갑자기 뒤를 탁 돌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봤어. 나는 화들짝 놀래 손을 저으며 그게 아니라고 막 하면서 변명을 하려는데. 카트를 놓고 걸어오더라고. 그리곤 내 옆을 쓱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쭉 걸어가더라. 당황한 내 고개와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를 쫓았어. 코너 맨 끝, 복도 중간에 있는 크고 네모난 철제 진열대 앞에 한진이 멈췄어. 그리곤 한참을 그곳을 들여다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저… 찾은 거 같아요…!”
내가 그리 원하던 걸 손에 넣었는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 혹시라도 이걸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리진 않을까, 가지고 갔는데 만약 안 되면 어떡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면서 무섭더라고. 나는 이렇게 진땀 나고 죽겠는데 한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더라. 자기는 자기 할 일 다 했다 이거지. 약속한 스팸에 덤으로 공짜 생필품까지 잔뜩 챙겼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한진이 무인 계산대를 지나 출입구 쪽으로 카트를 끌고 빠져나가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삐. 삐. 삐. 귀때기가 떨어질 정도로 큰 기계음이 공허한 마트 안을 울리는 거야.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한진의 양옆 하얀 기둥 같은 기계가 반짝반짝 빨간 불빛을 내며 ‘이놈이다, 이놈!’ 하듯이 삐삐거리더라고. 한진은 멍한 얼굴로 나를 보다, 카트를 한 번 보고는 다시 나를 봤어. 지도 아는 거지. 지 때문인걸. 한진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눈알을 굴리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튈까요?”
“네?”
“아니… 뭐 상관없지 않나?”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진이 말하는데, 뭐 맞는 말이잖아 사실. 아무도 안 살고 버려진 마트 물건 좀 가져가는 게 도둑질 같은 건 아니잖아. 근데 그 순간에는 그게 도둑질 같았어. 그 망할 놈의 삐 소리 때문인지 뭔지. 그런데 진짜 문제는 내가 아주 잠깐 망설이던 사이, 윤리인지 도덕인지, 아니면 양심인지 때문에 정신없었던 그 사이, 시끄러운 도난방지 기계 소리를 뚫고 어디선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났어.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머리가 새하얘지는데, 한진을 보니 걘 완전 정신을 놓았는지 돌처럼 굳었더라고. 딱. 딱. 딱. 구두 소리는 점점 커지고 가까워졌어. 한진의 눈을 보는데 그 소리가 정확히 어디서 나는지 알겠더라고. 내 뒤, 바로 내 뒤에서 누군가가 오고 있던 거야. 그걸 한진이 본 거고, 그 사람도 봤겠지. 정확히 왼쪽 귀 옆에서 구두 소리가 멈췄어. 나는 귀신이라도 마주한 듯, 고개가 왼쪽으로 덜덜 떨리면서 돌아가더라. 키가 아주 큰지 팔뚝이 보였어. 아주 단단한 근육질이더라고. 그리고 팔 사이로 튀어나온 큰 가슴. 누가 봐도 f컵 정도는 될 거 같아 보였어. 딱 달라붙는 빨간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 다음 바로 엉덩이로 시선이 가더라. 물론 엉덩이도 엄청 났어. 머리도 얼마나 긴지 꼬리뼈까지 내려왔더라고. 그녀의 엄청난 몸매에 감탄하다 못해 경악한 표정으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시선이 올라갔는데, 짙은 화장을 한 그 여자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더라고. 한심해 죽겠다는 얼굴로.
“뭘 그렇게 쳐다봐요.”
아무런 대답도 못 하는데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한 번 뀌어주더니 다시 물었어.
“마트 안 가봤어요? 마트 안 가봤냐고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진과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놀란 눈으로 쳐다만 보는데, 됐다 싶었는지 한숨을 푹 쉬며 말하더라고.
“바코드를 찍어야죠.”
그 순간 둘 다 동시에 ‘아’하고 긴 감탄사를 내뱉는데 여자가 우리 둘을 보며 웃더라고.
“거기 오빠 빨리 마저 찍어요.”
한진이 그 많은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서 바코드를 찍는 동안 여자는 대뜸 내게 처음이냐고 물었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여자는 그 짧은 사이도 못 참고 다시 물었어.
“이 동네 처음이시냐고요.”
“아… 네.”
“그럼 동네 커뮤니티부터 가입해요.”
“네?”
“집에 컴퓨터, 스마트폰 없어요?”
“아뇨 있어요”
“그럼, 온라인 주민 커뮤니티부터 가입하라고요.”
알겠다고는 말했지만, 사실 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었어. 커뮤니티라니, 주민이라니 그런 게 있으면 사실 안 되는 거잖아. 멍한 표정의 나를 여자는 멍청하다는 듯 내려다보더니 혀를 한 번 쯧 차고는 그대로 뒤돌아 가버리더라, 특유의 딱딱하고 정제된 구두 소리를 내면서 말이야. 그대로 가버리는구나, 드디어 이 상황이 끝나는구나 하고 긴장이 슬 풀리려는데, 갑자기 소리가 멈췄어. 여자는 고갤 돌려 흘깃 보더니 알 수 없는 소리를 했어.
“지금은 제 외출 시간이에요.”
우리는 다시 편의점 앞에 섰어. 하루가 벌써 지났는지 날이 밝아오고 있더라고. 한진의 카트 위에 살며시 스팸 3캔을 올려줬어.
“오늘 고마웠어요. 덕분에 살았어요.”
되게 기뻐할 줄 알았는데 한진은 왠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어. 대답도 하지 않고는 멍하니 스팸 3캔을 바라보더라. 왜 그러는 거지 싶으면서도 뭔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냥 간단히 목례만 하고 가려는데 한진이 날 불렀어.
“저기요!”
대답 대신 뒤를 돌아봤어. 한진하고 눈을 마주쳤는데 내 눈을 피하더라고. 말을 하려는 건지 아닌 건지 우물쭈물하며 우리는 아주 짧은 정적을 함께했어.
“이름이 뭐예요?”
“… 강소정이요.”
우려와 달리 다행히 9v 배터리는 작동이 아주 잘 됐어. 집에 가자마자 대자로 뻗었지. 맨날 누워있었는데도 엄청 편하게 느껴지더라.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편했어. 그런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말이야. 이제야 거기가 내 집이구나 싶더라고. 그대로 누워서 바닥에서 잘까 하는데 갑자기 여자의 말이 떠올랐어. 그 주민 커뮤니티 어쩌고 있잖아. 곧장 초록색 검색창에 ‘상연시 주민 커뮤니티’하고 검색해 보니까 딱 하나 온라인 카페가 뜨더라. 이름도 참 특이했어. ‘소멸도시로 오세요.’ 들어가자마자 메인 화면엔 달력이 크게 하나 있더라. 위에는 ‘외출 스케줄’이라고 굵은 글씨로 적혀 있고. 달력의 날짜 칸 하나하나마다 시간과 회원 닉네임이 적혀 있었어. 오늘 날짜의 마지막 시간 외출자는 ‘보라돌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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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도시에 오신 주민 여러분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카페의 회장이자, 제 일 주민인 닉네임 소멸지기입니다. 행복한 주민
생활을 위해 아래의 규칙을 잘 따라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규칙을 따르지 않을 시, 카페 강퇴를 비롯한 생필품 나눔이 즉시 중단됩니다.)
1. 카페 내에서는 실명이 아닌 닉네임을 사용할 것.
2. 실명이나 개인 정보를 묻지 않을 것
3.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거리 산책 및 장보기 등 야외 활동을 할 것
4.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가, 주민을 마주친다면 절대로 먼저 아는 척하지 않을 것.
5. 재사용이 가능한 물품이나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물품은 ‘아름초등학교 1학년
1반’ 복도 서랍에 넣어두고 표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