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욥기 22장 28절)

by 권길주

어젯밤 11시 30분,

송구영신예배에 참석을 하기 위해 나는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작업실에서

택시를 불렀다.


이렇게 늦은 밤에 택시를 불러서 시내에 있는 교회를 간다는 것은 거의 나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제는 아버지께는 작업실에서 글쓰다가 잔다고 말하고 올라올때 부터 내 치밀한 거짓말은 사실 계획중인거나 마찬가지였다.

거짓말을 하고 밤 외출을 한다는 것은 요즘의 내게는 있을 수는 없지만,

송구영신예배를 가야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밤 10시가 넘으니 혼자서 택시 탈 일도 무서웠지만, 몰려오는 졸음과 피곤에 갈까말까를 갈등하다가

가까이에 사는 교인이 올때는 내가 데려다 준다는 말에 자의반 타의반 교회를 간 것도 사실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예배와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의 예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예배가 송구영신예배인데, 요즘은 새해 대망예배라고도 많이 불리고, 신년축복성회라고도 하고, 송년예배라는 말로도 쓰인다.


각자의 교회대로 불리는 이름이 틀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자동차나 기차를 이용해 몇시간씩 정동진이나 명소에 해돋이를 찾아서 가는 사람들에 비해서

교회에서 한 시간 정도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찌보면 그다지 수고가 들지 않는 새해맞이이기도 하다.


그리고 교회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이 소중한 첫날의 예배에는 성경말씀을 뽑는 기대와 설렘의 순간이 있어서 교인들에게는 말씀 카드를 뽑는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말씀카드를 뽑을 때 굉장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대도 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성경말씀처럼 어렵기도 하고 설명도 힘들고, 해석도 힘든 책은 난 이 세상에 없다고 본다.

그런데 그 수천만가지의 성경 말씀 중에 한 절을 뽑아서 한 해의 가장 소중한 말씀으로 새기고 기도도 하고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처럼 붙들고 살아가는 의미는 남다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제 바로 말씀 카드 뽑는 시간에 이 말씀을 뽑았다.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욥기 22: 28


와우, 순간 내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나는 내가 결정하는 일마다 실패같고 내가 하는 일마다 막히는 것같은 인생을 얼마나 오래 살았던가

특히 2023년은 내가 살아오던 해 중에서 가장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말기암 발견으로 온 집안식구들이 좌충우돌할 수 밖에 없었고, 이제는 5년이 되어가는

엄마의 뇌경색은 점점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낳는 병이 아니라서 우리 형제들이 다 지쳐가고 있는데,

아버지의 전립선암 말기는 가족 모두가 충격 그 자체였던 터라 너무 경황이 없었던 지라 나는 나의 계획이

완전히 무산된채 지난 일년 동안 시골살이가 시작되었었다.


그래서 얼마전에 아버지의 암이 점점 낳아지고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듣고서 아버지는 너는 어서 나가서 네 일을 해라 하고 말씀은 하셨지만, 난 밤이면 이 고민을 해결할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가 없어서 그저

브런치에 글쓰는 것으로 내 괴로움을 덜어가고 있을 뿐이다.


강의하는 일을 다시 해야하나?

아니면 방개아저씨 장편소설을 엉덩이가 땀띠가 나도록 앉아서 써야하나?

다시 논술 학원을 해야하나?

아니면 영화시나리오를 써야 하나?

그도 아니면 소소히 독서모임을 해볼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아프신 부모님을 두고 시내로 이사를 해야하나??????


언제나 고민의 끝은 마지막 숙제같은 부모님과의 분리.... 이게 제일 문제가 되었다.

자식들이 수시로 드나들어도 매 끼니에서 두끼를 아버지가 식사를 준비하시는 일은

아무래도 무리가 될 것 같아서다.


아버지는 아직은 멀쩡히 걸어다니시고, 아픈데도 없으시니 누가 봐도 환자가 아니지만

암은 언제 어떻게 환자를 공격할지 모르니까

난 중풍걸린 엄마보다는 아버지가 더 걱정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매일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다 잠이 들기 일쑤다.


그런데 어제 이 성경 말씀을 뽑고나서 밤에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집을 이사하는 것은 우선은 포기해야 할 일중에 하나로 판단을 했다.


이유는 언제 떠나실지 모르는 부모님의 식사준비와 여자의 손이 가야하는 엄마를 챙기는 일 때문이다.

매끼 먹는 밥을 차리는것이 귀찮을 때도 많다.

그러나 잘차려드리든 별반찬이 없든.... 그와는 상관없이 그냥 한해를 더 같이 살면서

난 엄마 아버지께 하루 두끼를 차려드리기로 했다.

(점심은 엄마의 요양사님이 아버지까지 같이 점심을 차려주신다.)

지난해 나는 혼자 살던 습관 때문에 여럿이 먹는 밥상을 차리는게 그렇게 힘들고

지치고 불평이 많았는데, 그걸 고치기로 한 것이다.


내가 원래 음식하는 걸 좋아했던 시절로 되돌아가기로 한 것인데,

나이가 들다보니 예전처럼 음식하고 설것이 하는 일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동생 셋을 데리고 객지에서 살던 적도 있어서 20대에 나는 완전히 주부 9단이였음)


그러나 내가 새해 첫날인 오늘 나를 위한 두가지를 결정한 일이 있다면

첫째는 올해 책을 두권 내는 일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강의할 곳을 찾아서 강의를 다니기로 한 것이다.

강의중에는 독서모임도 생각을 해볼 요량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해를 시골에서 살 생각을 하면 너무 깝깝하고 그저 한숨만 나왔는데,

이 두가지를 결정하고 나니 새삼 내가 정상적인 시골 생활이 가능해질 것 같다.


책은 어떤 책을 두권을 낼까는 아직 다 결정을 못했지만,

그 중에 한 권은 아무래도 지금 브런치에서 쓰고 있는 장편소설 '방개아저씨'를

완성해서 장편소설책으로 내고 싶은 것이고,

그 다음엔 기독교문학지에 그동안 발표하던 단편소설과 시나리오 , 뮤지컬 대본을

하나로 묶어서 또 한권을 낼지

아니면 첫번째 시집을 낸후, 21년만에 두번째 시집을 내볼까 생각중이다.


그것도 아니면 두번째 책은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경제책을 낼지도 모른다.

예전에 라디오에서 경제프로그램을 했을때 경험을 살려서 한국의 부자이야기를

쓰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이건 취재를 해야 가능한 이야기라서 사실 고민이 좀 된다.


나는 내 느낌대로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기를 원했지만, 돌아보면 인생은 절대 그렇게

돌아가지를 않는다.

2024년도 부모님이 다 건강하게 살아계시기를 바라고, 형제들도 건강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교회 보육원의 아이들과 교회의성도들 또 내 이웃의 외로운 할머니들이 건강하게 사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올 한 해도 누구에게 다가가 쓰담쓰담 해줘야 할지 모르지만,

난 눈만 뜨면 내 옆에 두 분의 부모님이 다 중증환자시고,

내 이웃의 80넘은 할머니들이 홀로 살고 계시는 분들이 다 쓰담 쓰담의 대상인 것 같다.


시골마을에 평균 연령은 70대를 넘긴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나처럼 젊은 사람은 그저 마을에 몇명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 마을에는 집안에 오빠들이 최근에

새로 집을 짓고 이사를 오기도 하고, 대학에서 편집장을 하던 오빠도 내려와서 어머니를 돌보는

효자 오빠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올 2월이 작업실 월세가 일년 약정으로 끝나는 시기인데

이 작업실을 빼고 근처에 카페로 글을 쓰러 다닐지

아니면 작업실을 그냥 놔두고 여기서 글을 써야 할지를 결정을 못했다.


사실 카페를 가는 것은 시골이 너무 답답해서 나가는 것인데, 글에 집중력이 그다지 높지는 않아서

작업실을 내놔야할지는 아직은 고민중인것이다.

이 작업실을 지은 전원주택의 사장님은 이 작업실이 팔리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부동산이

너무 침체기라서 팔릴 확률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나도 작업실을 연장 계약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하루 종일 있는 것은 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치면 너무 과한 장소라서

나는 낮에는 부모님과 분리된 장소에서 글을 쓰길 원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별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난 믿음을 붙잡고 산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 그 분이 손을 데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었고 괴로웠던 한 해가 갔지만, 부모님이 더 아프시지만 않으신다면 난 정말 좋겠다.


오늘은 모처럼 만에 동생댁이 와서 금일봉을 하사하고 갔다.

"고모 고생한다고 ...... 그런데 고모 나가서 학원 같은거는 하지 말고

여기 계시라고 복이 들어올거라고."

동생 와이프한테 처음 듣는 말이다.

평상시 같은면 은근히 부화도 나고 얄미웠을지도 모르는데, 오늘은 그 애 말이 다 수긍이 갔다.

금일봉때문은 아니다. 내가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심겨졌기 때문에

내게 새로운 희망봉이 떠오른 것이다.


동생댁이 준 금일봉에는 십만원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 엄마, 나 세사람에게 똑 같이 십만원씩을 넣어서 봉투를 가져왔는데,

작은 금액이지만 얼마나 고마운지

그저 수고한 돈을 가족한테 쓰는 것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도 평생 일하느라고 고생하는 동생댁이 안스럽기도 하고 야윈 몸매가 불쌍하기도 해서

대박나라고 크게 축복을 해줬다.


동생 와이프가 갈때 엄마 손을 꼭 붙잡고 기도를 해드리고 가는 걸 보니 이제 진짜 신자가 된것 같고

나보다 훨씬 믿음도 좋은 것 같아서 대견한 마음도 들었다.


이제는 글쓰는 시간의 스케쥴표를 짜고 하루에 써야 할 원고 분량을 정해서 글쓰는 일만 남았다.

예전에 처럼 정신을 차리고 쓰면 하루에 기본적으로 책상에서 꼬박 8시간 이상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나이지만, 그래도 남들도 직장에서 기본적으로 8시간은 근무를 하는데,

나 역시 8시간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 하루에 분명히 A4 용지 10장 이상은 충분히 쓸 것이다.


그리고 독서하는 시간을 겸하여 글을 쓰려면은 하루에 12시간 이상은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

그래도 예전의 글발이 나오지는 않을까 싶은데,

사실 예전의 글발도 책을 안읽을때는 형편이 없었다.


요즘 사실 내가 가장 고민스러운 것 중에 하나는 브런치에 글쓰기에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내 글이 다른 작가분들에 비해서 너무 형편없다는 사실이다.


나를 살리고 나를 회복하는 브런치 글쓰기가 때로는 무의미한것은 왜일까?

아마도 내게는 방송에서 원고를 쓰던 습관때문에 원고료가 없는 글쓰기는 오래하기가 힘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기독교문학지에서 6년이 넘도록 원고료를 한푼도 받아본 적이 없이 소설을 쓰던 터러

그 정도는 이제 기본으로 깔고 가지만, 그래도 가끔씩 내가 이거 미친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은 난 돈되는 글쓰기를 오래하던 방송작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분들이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내 인생을 살맛나게 해주는 소소한 기쁨과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에 없어서는 안되는 블랙 커피 같은 느낌이다.

쓰지만 졸음을 방지해주고, 해야 할 오후에 업무를 끝까지 해 낼 수 있도록 돕는 블랙 커피 한잔.

브런치에 글쓰기는 내 인생의 후반에 아마도 점심식사 후에 블랙 커피 한잔 같은 선물을 주는 플랫폼으로

나에게 글쓰기를 끝까지 응원하는 간이역이고 종착역이길 바란다.


나는 새해에 첫날에 결정했다.

올해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서 살기로 .

그리고 브런치와 문학지에 열심히 글을 쓰기로.

그리고 책을 두권 내기로 .

또 열심히 강의하러 다니기로.


그리고 택시비 아끼고 자전거 타고 다니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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