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 동생 땡칠이가 동네 친구들과 떡을 훔쳐서 산에 올라가 먹고 내려오던 날 덕구네 집엔
다섯의 조카들이 줄을 서서 매를 맞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집을 나간 미자가 안 들어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덕구와 방개는 밤을 새워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뒤지고 장항선 역이란 역을 다 뒤지고 돌아다녔봤지만,
열다섯 살 미자를 찾을 길이 없었다.
덕구는 계집애를 사내애들과 같이 때린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고, 조카지만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하지 않던가, 어떻게 하면 조카들을 죽은 형과 형수가 하늘에서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다섯이나 되는 그 애들 밥 안 굶기고 사람답게 키울 것인지 고민이 돼서 밤을 하얗게 새우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배운 것 없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은 그저 나쁜 짓하면 회초리로 애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어리고 사춘기인 미자에게는 안 통했던 훈육방식 같았다.
그러나 후회를 해봤자, 벌써 아이는 매 때문인지 자신의 환경 탓인지 모르지만, 작은 아버지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미자는 어디로 갔을까 견딜 수 없이 궁금하고 걱정이 돼서 밥알이 모래알처럼 씹히는 덕구에게 미자의 편지 한 통이 배달이 된 것은 미자가 집을 나간 지 보름만이었다.
작은아버지 전상서
작은 아버지 저는 잘 있습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전 이제부터 돈을 벌거예요.
제가 돈을 많이 벌어서 작은아버지도 호강시켜 드리고
제 동생들도 배부르게 먹고 학교 다니게 해 줄 거예요.
제가 돈 벌면 작은 아버지한테 돈 많이 부쳐드릴게요.
제 걱정은 마세요 작은 아버지
미자 올림
열다섯 살짜리 여자애가 어디를 가서 어떻게 돈을 벌며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편지를 보니
이미 미자는 어딘가에서 돈을 벌려고 자기 몸 하나를 의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덕구는 형이 남겨둔 다섯 조카들이 무겁게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애들을 다 중학교 이상은 가르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미자가 중학교를 다니다 말고 튄 것이다.
분명 서울로 갔거나 아니면 온양시내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도 같은데, 생면부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서울에 그 어린것이 설마 올라갔을까 싶은데, 생각보다 담대한 구석도 있는 미자가 자신의 손재주를 생각하고 서울에 미용실에 취직하러 갔는지도 모른다,
미자가 집을 나가고 그 해 겨울이 다 지나고, 방개가 덕구네 사랑채에 들어와 산지도 한 해가 지났다.
미자는 겨울에도 편지가 없었고, 봄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덕구도 이제는 미자를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여자애니까 어디 몸을 망치지만 않았다면 부디 누구의 손에서라도 밥이나 굶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고, 야무진 손재주를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라도 하나 배울 수 있다면 천행이다 싶은 마음이었다.
방개는 미자가 미용실에 취직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자주 했다.
"왜 미용실이라고 생각하남."
"저번에 우리 엉가 머리를 감기고 나서 엉가의 머리를 빗기면서 자기는 꼭 미용사가 될 거라고
했거든."
아, 그랬구나 미자가 남의 머리를 만지는 걸 좋아하고 유난히 머리 모양을 바꾸거나 머리카락을 만지는 걸 좋아한 걸 보면 방개가 하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그 뒤로 덕구는 온양 시내에 장을 보러 오는 날이면 미장원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미자를 찾기 시작했다.
서울에까지는 못 갔을지도 모르고 온양 시내의 미장원에 시다로 혹시 취직해서 있는지 미장원 밖을 두리번거리며 조카 미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릭 미장원의 여자 원장들이 멋진 포즈로 아가씨나 아줌마를 의자에 앉혀 놓고 머리에 파마를 하거나 고대기로 고대를 하는 것을 보면 그 여자들이 서양에서나 온 듯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대를 우아하게 올리고 나오는 부인들을 보면 자기 부인도 언젠가는 저렇게 우아하고 멋있게 꾸며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조카들 다섯을 키우느라 젊은 새댁이 밤이 되면 코를 드르렁 거리며 깊은 잠을 자기 일쑤였고, 자기 먹어야 할 밥도 어리고 배고픈 조카들에게 한 숟갈이라도 더 주느라 밥상에서 매번 숟가락으로 밥 한 번을 제대로 떠먹지 못하고 살고 있는 아내에게 도회지 여자들이나 하고 다니는 고대머리에 양장을 곱게 입혀 보고 싶은 마음으로 덕구는 온양장에만 오면 미장원을 기웃거리고 다녔다.
어느 세월에 땅을 사서 조카들도 학교 제대로 보내고, 아내에게 저런 고대머리로 사모님처럼 멋있게 차려 입혀서 나들이라도 간단 말인가, 덕구는 이런 시내에서 그런 낭만을 즐기고 사는 사람들은 별천지에 사람들 같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