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는 장터에서 영어로 계속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선장 장터이건 온양 장터이건 예산 장터이건 방개를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데, 방개가 가끔씩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기도 하고 영어를 혼자 중얼거리고 다니는 걸 보면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냉이를 내다 파는 할머니에게도 영어로 '굿모닝'에서부터 장터 구석에서 국수장사를 하는 영희 엄마에게도 '아일러브유'라고도 하고 고무신 장사를 하는 허우대 좋은 장 씨에게도 목수로 일하고 있는 이서방에게도 방개는 종종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영어로 혼자 답을 해댔다.
"아휴, 저 새끼가 왜 저렇게 혼자 유식한 척을 하는지 물러, 방개 주제에"
장터에서 방개가 영어를 중얼거리면 종종 방개의 뒤에서는 야유의 소리가 들려오면 왔지 영어를 하는 방개를 보고 좋게 말하는 사람들은 없었고, 어느 때는 자신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중얼대는 방개에게 침을 뱉는 작자들도 있었다.
"에잇 퉤, 재수 없이 방개 새끼가 어디서 서양귀신을 부르는가, 하나도 알아먹지도 못할 말만 씨부렁대고 다니냐 말이다. "
"에이 씨발, 저 놈 때문에 오늘도 아침부터 재수가 동텄다니까, 저 놈이 저 이상한 영어만 중얼대고 다니면 장터가 다 시끄럽고 어지럽다니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영어를 하는 방개를 무시하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어를 잘 구사하는 방개에게 무식한 자신들의 모습이 들킨 것 같아서 창피한 것도 있는 것을 약간은 폭력적이고 심하게는 욕을 하면서 방개를 무시하는 걸로 방개에게 수치당하는 것을 묵살하려고도 들었다.
왜냐하면 방개가 아무리 간단한 영어로 안부인사를 물어도 그것에 답변할 기초 영어도 모르는 자신들의 영어 실력으로는 방개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무시하고 묵살하는 것이야말로 체면을 구기기 않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미친 여자 엉가 엄마까지 데리고 사는 방개를 이해할 사람은 장터에 아무도 없었고, 방개랑 조금이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방개를 놓고 장터 사람들이 수군대는 거는 대개는 이런 말이었다.
"방개가 머리가 너무 좋아서 중학교 때 미쳤다던데."
"아녀, 방개는 전쟁 나갔다가 거기서 미친 거야. 지금도 가끔씩 총소리가 귀에서 하루 종일 들리고 환청에 시 달린 던데."
"무슨 소리여, 방개는 자기 엄마가 머슴이랑 바람이 나서 나가는 바람에 친아버지가 무지 애를 미워하고 배다른 형들이 하도 때려서 매를 맞고 정신이 돌았다던데."
"아무튼 방개가 불쌍하긴 혀, 엄마도 첩으로 들어갔다가 바람났지, 6.25 전쟁통에 끌려가서 환청에 시달리지, 머리 좋아서 공부도 잘했나 본데 저렇게 머리까지 살짝 돌아버렸으니 워쩌면 좋아요, 거기다가 왜 또 미친 여자 엉가 엄마는 끌고 다니나 몰라. 둘이 사는 것도 아니라던데, 엉가 엄마가 혼자 애를 업고 다니다가 굶어 죽을까 봐 데리고 다닌다던데.... 그걸 보면 착하긴 무지 착한 눔인데."
"에이 여보게 그게 착한 건 감. 바보지, 요즘 세상에 저렇게 살면 저게 바보지 뭐가 바보여. 지 앞가림이나 해야지. 엉가 엄마는 무슨 엉가 엄마여, 그 여자가 거지로 돌아다녀도 지 마누라가 아니면 상관할 바가 아니지."
"허허, 이보게 그렇게 매정한 소리만 하지는 말게나 방개가 우리 같은 장돌뱅이보다야 낳지 뭐.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도 내 식구도 제대로 못 먹여 살리는데, 방개는 떠돌이로 살아도 우리보다 낫지 뭘 그래."
방개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뭐 하고 하든 말든 그런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고, 개의치도 않았다. 다만 방개는 자신에게 남겨진 한국전쟁의 흔적인 환청과 어머니에 대한 고통이 가슴속에서 씻겨지길 바라고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영어를 좋아하고 영어를 하고 싶은 것은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였기에 짧게 배운 영어지만 그 영어 단어나 문장을 절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다른 과목의 공부는 다 까먹었지만, 영어만큼은 그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영어 책이 어디 있으면 그리고 누가 자기에게 영어를 좀 더 가르쳐준다면 그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거나 영어책이나 영어 사전을 빌려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기에 그는 혼자서 중학교 때 배운 영어를 까먹지 않기 위해 생각날 때마다 영어로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말도 걸고 한 것이었다.
방개는 자신이 천재도 아니고 바보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개는 정말 가슴이 날마다 아픈 것은 사실인데, 그 마음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서 그는 사람들에게 보통은 아주 재미난 농담도 잘하고 사람들을 보면 웃기는 얘기도 곧잘 하는 편이다.
사촌형 종택이가 다녀간 뒤로는 어머니가 결국은 그렇게 기가 막히게 슬픈 인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늘 허허벌판에 허수아비처럼 거센 바람이 그의 속을 후벼 파듯이 에이고 동지섣달에 꽁꽁 언 얼음골처럼 속에 있는 아픔들이 차디차게 얼어붙고는 했다.
그래서 방개는 수시로 선장에 장터를 돌아다녔고, 온양과 예산의 장터를 돌아다니다가 덕구네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럴 때면 친구인 덕구는 더 사는 게 가관이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덕구의 조카 다섯은 이미 제멋대로의 생각과 행동으로 나돌아 다니기도 하고 동네에서 벌써 고아티를 내는 아이도 있었다.
친구를 때리거나 남의 물건을 훔쳐오기도 하고 특히 어느 집에 고구마 쪄 놓은 것이 없어졌다거나 시렁에 감추어둔 떡이 없어졌다 하면 대다수 덕구의 조카들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도둑질을 해오는 것이었다.
덕구는 그러면 그 조차 다섯을 모조리 방에 세워놓고 회초리가 부러지도록 매를 들었다.
그런데 그 매를 가장 견디지 못하는 애는 둘째 조카 미자였다. 미자는 이제 나이가 열다섯 살로 막 꽃봉오리가 피어 올라오려고 하는 것처럼 사춘기 소녀로 피어나고 있었는데, 유달리 몸매와 얼굴이 빼어나게 예쁜 여자애였다.
아직 꽃도 피지 않은 봉우리도 되기 전인 그 작은 여자 애가 방개는 이상하게 걱정스러웠다. 바람이 불면 어딘가로 날아갈 듯하고 반항심이 강해서 쉽게 꺾이지도 않을 것만 같은 애였다.
그런데 그 미자가 제일 예뻐하는 애는 자기 어린 동생들이 아닌 엉가 엄마 딸인 어린 엉가였다.
미자는 수시로 엉가를 업고 다니기도 하고 엉가의 코 묻은 얼굴을 깨끗한 물을 받아서 얼마나 보들보들 잘 닦아 주는지 정말 그 애의 손이 닿기만 하면 엉가는 순식간에 얼마나 예쁘던지 마치 마술사 손 같았다.
"저 계집애가 손재주가 있구먼."
방개도 덕구도 덕구의 색시도 그 아이의 손재주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손재주 있는 미자가 어느 날 사라지고 없었다.
해가 저물어도 그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덕구가 제 조카 다섯을 다 모조리 세워놓고 매질을 했던 다음날
저녁이었으니 덕구는 애가 타도 보통 타는 게 아니라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