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가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 고장에서 그리고 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덕구가 방개와 엉가 엄마를 덕구네 집 사랑채에 조그맣게 방한칸을 이어 붙여 지어주고 방개와 엉가 엄마 그리고 아기 엉가를 한 방에서 지내게 한 뒤부터는 방개는 가끔씩은 말없이 혼자 집을 나가서 며칠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지만, 아주 집을 나가지는 않았다.
덕구도 다섯의 조카 중에 미자만 집을 나갔지 나머지 애들은 그럭저럭 작은아버지 밑에서 말도 잘 듣고 집안 일도 곧잘 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덕구의 안 사람이 이제는 마음을 잡고 조카들을 키우는데 그다지 날을 세우지 않는 편이고 고아가 된 조카들을 불쌍히 여기며 데리고 있는 것이 덕구로써는 가장 안심이 되었고, 자기도 자식을 하나 낳고 보니 어찌도 이리도 박복한 자식들만 데리고 사는가 싶어도 미친 여자 엉가 엄마가 데리고 온 엉가마저도 불면 날아갈까 귀여워라 하며 자기 입에 있는 것도 엉가를 먹여주는 방개를 보면 세상사 인심은 사나워도 자기네 집안에 온기는 한 겨울 냉골도 녹여줄 구들장처럼 뜨뜻한 안방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덕구는 방개와 같이 면장네 논에 거름을 주다 말고 방개를 붙잡고는 농담처럼 방개의 심사를 물었다.
"자네는 이제 떠돌아다니는 병은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엉가 엄마랑 혼인을 하문 어떻겠어. 가만히 보면 엉가 엄마가 요즘 정신이 좀 올케 돌아온 것도 같고, 어느 때 청소랑 빨래를 하는 걸 보면 손도 무진장 야무지고
보통 살림꾼은 아니었던 것 같거든. 그 정도면 잘해주고 이뻐라 하고 챙겨주다 보면 다시 온전한 정신이 돌아올 것도 같은데, 방개 자네야 일은 잘하니까 이 동네에서 품팔이만 하고 살아도 먹고는 살지 않겠나."
"뭐유, 엉가 엄마랑 혼인이유. 아이고야. 사람 잡네요."
"왜, 자네나 엉가 엄마나 서로 의지하고 설문 그만이지 뭐가 안된다는겨. 이 사람아."
"지는 돌아다녀야 사는 사람이디, 무슨 장가유, 절대 그런 말 마슈. 그리고 엉가 엄마도 아직도 성한 여자 아녀요."
방개는 커다란 등짝을 움쩍움쩍 하면서 덕구에게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손사래를 친다.
덕구는 방개가 그렇게 펄쩍 뛸 줄은 몰랐는데, 방개는 두 번도 더 듣기 싫다는 듯이 커다란 발을 저벅저벅 거리며 덕구를 돌아보지도 않고 논두렁으로 걸어 나간다.
"어이참, 사람이 정상으로 살기는 힘들겠구먼, 저렇게 떠돌아다닐 생각만 하니. 방개가 달래 방개 거었어, 물에 떠돌아다니는 방개처럼 허구한 날 이 동네 저 동네, 이 역전 저 역전 온 장항선에 역이란 역은 죄다 돌아다니니 방개라고 허지.
무슨 팔자소관인지 내가 알 수가 있나. 저리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한 집에 있지도 않은데, 그래도 내 집 와서 엉가 엄마랑 벌써 일 년을 넘게 살았었으니 그게 기적이지 뭐가 기적이겠어."
덕구는 앞서 걷는 방개가 듣거나 말거나 엉가 엄마와의 혼인 얘기를 꺼냈다가 단박에 거절을 당하자
무안한 마음도 들도 미친 여자 엉가 엄마편만 들고 자신이 방개에게 얼개를 씌운 것처럼 된 것도 미안해서 구시렁거리며 방개의 뒤통수에 대 대고 듣거나 말거나 한 소리를 혼자서 하며 논둑을 나왔다.
그리고 덕구는 방개가 얼마나 더 엉가 엄마와 엉가를 데리고 살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고아가 된 조카 다섯의 입도 큰 입이 되어 버린 자신에게 만약에 방개가 엉가와 엉가 엄마를 내버려 두고
또 어딘가로 떠나버리면 자신의 발등에 다시금 감당할 수 없는 불이 떨어질 것도 은근히 덕구는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그 공연스러운 걱정거리가 결국은 보기 좋게 퇴짜를 맞고 말았으니 이 걱정이 공연한 걱정이 아니라 현실적인 걱정거리로 언젠가는 자신에게 올무가 될까 근심이 되었지만, 파란 보리가 논바닥을 가득 채운 것을 보니 언 논바닥에서 보리가 자라듯이 사람이 사는 것도 다 신이 주신 환경대로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는 안도의 한숨도 생겼다.
"보리싹도 겨울 언 땅에서 자라는데 사람 목숨이 뭐가 모자라서 지 입에 풀칠 할거 못 달고 나왔겠어. 엉가 엄마도 엉가도 지 입에 풀칠한 복은 타고났으니까 저런 착한 방개등에 엉가가 업혀 다니며 꽁보리밥이라도 얻어먹고 목숨을 연명한 거 아녀."
덕구는 그런 착한 방개가 엉가 엄마와 혼인은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방개는 그저 떠돌이의 근성을 버리기는
힘든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