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 인생의 금지된 장난

by 권길주


어젯밤 왓챠에서 프랑스 영화 '금지된 장난'을 봤다.

몇 십년 만에 다시 본 영화다.

너무 사랑스러운 여자 아이 폴레트에 빠져 스토리를 깊이 못 느낄 정도로 그 여자아이의 연기와

표정은 나를 압도시켰다.'


내가 너무 단순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은 영화의 배경인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라든지,

전쟁고아가 된 주인공 폴레트에 대한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저토록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르네 클레르망'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에만 내가 더 꽂혀 있었던 것이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씩은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영화가 되지 못하거나 드라마나 소설이 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거장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로 해결되기 때문에

유독 나는 드라마나 소설보다는 영화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나는 못하지만 '그'라는 타인이 만들어내는 거장의 작품들.....

소설에도 있지만, 영화에는 더 많은 거장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나의 사견이긴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고, 그 장면은 깊은 밤이 되어 잠이 들 때까지 떠올라서 가슴이 아팠다.


어린 시절 친구의 아버지는 유독 자기 집의 자녀들을 때렸다.

술을 먹다가도 말대꾸한다고 매질을 하고,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아이들이 일을 잘 못한다고 때리고,

밥을 먹다가도 밥상을 뒤엎고 때리기까지 하는 그런 아버지였다.


그런데 얼마나 매질이 심했던지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자녀들을 네명씩 줄을 세워 놓고 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니 그 친구의 엄마는 가슴이 정말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셨던지라,

그럴 때면 급히 달리면 오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우리 집으로 달려오시곤 했는데,

으레 내 손을 잡고 뛰어가시곤 했다.


이유는 누군가 집에 와서 있으면 그 아저씨가 아이들을 때리던 매질에서 손을 멈추셨기 때문이었는데,

어른이 가면 자기 아이들 훈계하는데 끼어들었다고 더 야단이 날 것 같으니

어린 내가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처음엔 그 아저씨가 너무 무서웠다.

키도 크고 잘생기셨지만, 술만 드시면 내 눈에는 드라큘라였다.

그래서 벌벌 떨고 안 가려고도 했지만, 술을 드시지 않을 때는 너무 좋은 아저씨였기 때문에

어린 내가 볼 때는 두 얼굴에 사나이 기는 해도 난 아저씨의 두 얼굴 중에서 착한 아저씨의 얼굴을 더 좋아했기도 했고, 내 친구와 그 집에 다른 형제들이 매를 맞는다는데 내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지

나는 매번 그 집 아이들이 맞을 때면 내가 가서 방패노릇을 했다.


나는 아저씨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보고는 때로는 울고 서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아저씨가 화가 잔뜩 나서 자기 집에 자식들인 그 아이들을 때리다가 멀쑥해진 표정으로 막대기를 집어 마당에 집어던지고는 대문 밖으로 나가시기도 했다.


그러면 그 집에 아이들 네 명은 전쟁통의 아이들처럼 악을 쓰고 울기도 하고 엄마에게 바락바락 화를 내기도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엉엉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매를 때리지 않던 우리 아버지보다 더 자상하기도 하고 어찌나

농담도 잘하시고 재미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는 두 얼굴에 사나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초등학교가 지나고 중학교 다닐 때부터 아저씨가 심하게 알코올중독에 빠져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친구는 공부를 잘했는데, 그런 환경에서 도저히

자신의 가능성을 찾지 못해서 결국은 여고를 졸업하고는 가출까지 하게 되었었다.


초등학교 때 반에서 여자애들 중에는 제일 공부도 잘하고 제일 예쁘던 그 친구는 일찍이 세상의 불공평과 불만에 가득 싸여 그토록 되고 싶다던 탤런트 시험은 한 번도 쳐보지를 못했고, 대학 같은 건 원서도 내본 적이 없이 인생의 험한 길을 가게 되었었다.


정말 그 친구는 내가 어릴 때부터 봐도 영화배우 뺨칠 정도로 예쁜 얼굴이었다.

그 친구의 인기는 초등학교 5~6년 때부터 온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만큼 예쁘고, 미술대회나 글짓기 대회 등 대회마다 다 상을 휩쓸어오는 내가 볼 때는 못하는 게 없는 천재였다.

그런 그 친구에게 아버지는 늘 너무나 큰 벽이었고, 인생의 고통을 주는 사람이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또 너무나 헌신적이고 사랑이 많은 엄마가 있었다.


그래서 그 집에 네 자녀들은 다 어찌 보면 엄마 때문에 크게 옆길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제일 똑똑하고 예쁘던 내 친구는 결국 여고를 졸업하고 아버지랑 살기 싫다고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왜 그 집에 아이들이 맞는 현장에 불려 가야 했는지와 급하게 친구의 엄마에 손을 잡고 논둑길과 밭길을 달려 그 집 뒷담에 서면 어찌나 가슴이 두 망 방망이 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나도 아저씨에게 맞는 건 아닌지 겁이 그렇게 났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화가 잔뜩 나서

"너 왜 왔니?" 하고 소리를 치며 물으면

친구의 엄마가 미리 가르쳐 준 데로 말을 해야만 했는데

그 말이 그렇게 떨리고 잘 나오질 않았었다.


"저 연이랑 숙제하러 왔는데요. 오늘 학교 숙제 저 혼자 못해서요."

하고 거짓말을 했어야 했다.


갑자기 내가 등장해야 하는 이유를 친구의 엄마는 미리 그렇게 항상 연습을 시키고는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가게 했고, 우연히 숙제하러 온 것처럼 연기 아닌 연기를 시킨 것이었다.


내가 어느 날 작가가 되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그때의 일들이 유독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날의 내 친구집에 사남매가 느낀 공포와 불안,

기다란 막대기나 끝이 까맣게 탄 부지깽이, 그리고 어느 날은 지게에 걸려있던 작대기.

그런 것들이 아저씨의 무기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술 취한 아버지에게 반항하거나 겁에 질려서 한마디도 못하고 마당에 서서 매를 맞고 있었다.


그리고 풀밭을 밟으며 친구 엄마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뛰어가던 초등학생이던 나의 모습.

또 불안해서 마당에 서서 그렇게 달려가는 나를 보고 있던 우리 엄마, 아버지.

철 모르고 내 뒤를 따라오던 여동생까지.


이걸 어떻게 영화나 소설로 써볼까 하는 것이 내 어린 시절의 소설의 발단으로 늘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였다.


그런데 잊고 있던 그 소설 같던 초등학교 시절이 영화 '금지된 장난'을 보며

누구는 저토록 슬픈 이야기도 저렇게 아름다운 영화로 만들어 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지지리도 글을 못쓰는 건지......... 한숨만 나왔다.


그래서 가끔은 쓰는 고통보다는 즐기는 현실을 택하고 싶은 관객의 입장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영화든 소설이든 드라마이든.


내가 관객이 되고 시청자가 되고 독자가 되면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내가 작가가 되고 각본가가 되고, 감독이 된다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래도 나는 그 '금지된 장난'을 보며 내 인생의 금지된 장난 같은.......... 어느 인생의 한 장면이 떠올랐고,

그때 내 떨리던 거짓말이 떠올랐다.


"너 왜 왔어?" 하고 아저씨가 매를 든 손을 내리면서 고함을 치면

"네 연이랑 숙제하러 왔어요."라든가

아니면 엄마가 급하게 싸준 먹거리를 내놓고

"엄마가 이거 같다 드리라고 해서요."라고 거짓말을 했던 그 기억이 내게는 '금지된 장난'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아저씨가 집을 나가서 산이나 동네 가게에 술을 마시러 가면

집에서 친구의 엄마가 해준 부침개나 군고구마를 먹으며 친구의 엉덩이에 멍도 문질러주고,

그 친구의 오빠나 남동생이 부화가 나서 화를 내며 자기 엄마에게 막 화풀이를 하면

그들을 달래주기도 하고 그들에게 먹을 거를 양보하면서 그들이 배가 불러서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으면

그때서야 우리는 우리의 양을 먹기도 했던 기억이 났다.


그 집안에 어느 정도 평화가 오면 나는 저녁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그 친구의 집을 나오면 친구 엄마가 미안해하시며 내 손을 그렇게 꼭 잡고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하시기도 했는데,

그 곱던 아줌마의 얼굴도 이제는 이 세상에서는 볼 수가 없는 얼굴이다.


커다란 담뱃잎이 푸르던 여름날, 그리고 키 큰 옥수수가 노랗게 옥수수를 익혀내던 날들과 코스모스가 유난히 많이 피었던 그 친구의 집 뒤뜰에 가을들.......... 그런 날들 속에서 난 나의 '금지된 장난' 같았던 거짓말과 어른들의 비참하기도 한 슬픈 인생들을 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식들을 때리고 술을 마시고, 화풀이를 하고, 그리 곱던 아줌마 얼굴도 다 삯아가고, 그리도 예쁘고 미인이라 소리를 듣던 내 친구의 얼굴도 고생과 고통의 그늘이 드리워지던 그날들이 난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래 어른들의 부조리한 인생을 아이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싶고,

그래서 저 영화에서 천진한 아이들은 저리도 단순한 생각으로 '십자가'를 모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금지된 장난' 그 영화에서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

전쟁과 극한의 고난 속에서 가족의 죽음이든 이웃의 죽음이든........ 그 죽음에 겉치레 같은 십자가도 있지만, 정말 그 아이들처럼 강아지의 죽음에도 진정한 사랑과 애도를 표하는 십자가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금지된 장난'의 영화음악인 '로망스'는 듣는 이로하여 금 늘 그리도 애잔하고 슬픈 마음을 계속 주는 것일까?

전쟁고아가 된 어린 영아 폴레트의 금발처럼 가볍게 살랑거리는 영화 음악 '로망스'가 밤새도록 내 귓전을 울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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