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나의 소설 방개아저씨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내가 요즘 쓰고 있는 연재소설 '방개아저씨'(브런치에서 화, 수, 목, 금 발행)는 실제 인물이었다.
방개 아저씨는 내 상상의 인물도 아니었고, 나와는 거의 한 번도 말을 해본 적도 없는 아저씨지만,
그 아저씨는 내 어린 시절과 사춘기까지 내 일상의 삶에 배경에서 가끔씩 보거나 어느 때는 자주
만날 수 있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내 고향의 시골 마을과 인근에 장항선 일대를 떠돌던 떠돌이 아저씨였지만, 가끔씩은 우리 마을에서 몇 달도 살고 오며 가며 머물렀던 아저씨다.
지금 우리 아버지의 연세가 올해로 89세가 되셨다. 그래도 권 씨 집안 어르신 중에는 최고로 장수하신 편이신데, 그 방개 아저씨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분은 내 주변에서는 내 아버지시다.
그 외에 마을에 나이가 먹은 오빠들도 내 동창이나 후배들도 다 대수 우리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방개 아저씨를 잘 안다.
그러나 내 아버지도 방개아저씨의 정확한 이름이 방개인지 아니면 다른 이름이 있는지도 잘 모르신다고 하는데, 내가 기독교 소설을 쓰기 전부터 나는 소설을 쓰려고 하던 40대 초부터 어린 시절에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이고 특이한 사람, 방개 아저씨를 소설화시켜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갔다 오다 보면 우리 동네 저수지에는 여름이면 방개아저씨가 웃통을 벗고 혼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마름이라는 식물이 저수지에는 둥둥 떠 있었는데, 그 마름은 어떤 때는 학교 갔다 오는 어린 우리들에게는 먹거리가 되어 주기도 했는데, 아저씨는 저수지 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우리가 마름이 먹고 싶다고 하면
녹색의 마름 줄기를 걷어서 우리에게 던져주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아저씨가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아도 직접 말을 걸어 본 기억은 없었다. 다만 내 친구들이 아저씨가 던져주는 마름을 먹자고 하면 같이 옆에서 따 먹은 기억만 있고, 동네에서도 방개 아저씨가 멀리서 오면 나는 그 아저씨를 무섭다고 피해 다닌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방개 아저씨가 우리 친척집의 머슴인 줄만 알고 어린 시절을 보냈고, 커서도 그 사람은 동네에서 날품팔이를 하는 일꾼일 줄만 알았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어느 날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 잠시 내려와 있던 날이었다.
옆집 아줌마들이 우리 집 거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 중에 나는 방개 아저씨가 아주 특이한 삶을 살았던 것을 알게 된 것이었고,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는 소설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그 방개아저씨의 어떤 삶의 흔적들이 조금씩 내 기억에서도 되살아났고, 동네 어르신들이 한 말들도 기억이 나서 그걸 동화로 먼저 한편을 써두었었다.
그러다 어느 때 그 동화의 원작이 사라지는 사건으로 나는 다시금 그 동화를 재작업에 들어갔지만, 처음 쓴 동화의 느낌이 영 살아나질 않았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다시 단편소설을 한편 써서 두었는데, 내가 소설가로 등단할 때 나는 단편소설을 세작품을 보냈는데, 그중 '방개아저씨'가 소설가 황충상 교수님에게 굉장한 칭찬을 받은 작품으로 뽑혔다.
황충상 교수님은 '방개'라는 이런 특이하고 향토적인 인물을 찾아서 쓰는 소설가가 요즘 드물다며 어디서 이런 인물을 찾아냈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때 제 고향에 떠돌이로 살던 분인데, 지금도 그분이 살아계신지도 모르고 죽었는지도 마을 사람들도 잘 모른다. 그런데 그는 정말 천사 같은 사람으로 또는 마을 모두의 일꾼으로 그리고 장항선 일대의 이 동네 저 동네의 일꾼으로 살았던 사람이라고 들었다고 그에 관한 얘기를 아주 짧게 전해 들렸더니 교수님이 이런
특이한 인물을 잘 연구해서 장편소설로 써 봐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황충상 교수님의 그런 조언을 들은 나로서는 그 뒤에 계속 '방개아저씨'가 내 인생의 숙제처럼도 느껴진 것이었다.
시인에서 방송작가로 그리고 소설가로 다시 펜을 바꾸어가며 잡아가며 나는 이십 대에서 삼십대로 삼십 대에서 사십대로 넘어가고 오십대가 되어 늦깎이 소설가가 되고 보니 소설이란 긴 글을 쓰는 것도 만만하지 않았고, 더구나 기독교 색깔을 가지고 쓰는 기독교 소설은 신앙심이 부족하 내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방개아저씨는 교회를 다녔는지 안 다녔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나로서는 긴 장편소설을 방개아저씨를 주인공으로 쓴다는 것은 굉장한 무리수가 있을 것 같아서 몇 년 동안 그 작업을 시작을 못했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대학생이 된 내 제자가 (세종시 교육청에서 방송작가반 강의를 할 때 만난 제자) 우연히 내 소설을 읽다가 '방개아저씨'를 읽고는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단편소설이니까 잠시 그러려니 했더니 그 학생이 자꾸만 이 소설은 김유정의 '봄봄' 같다고 나를 붕붕 띄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너무 진실한 성격이기도 하고 책을 무척 많이 읽던 아이라 그 말이 또 공연한 말로 들리지도 않고 해서 나는 그때부터 심각하게 그 제자의 말을 믿기로 하고 황충상교수님이 처음 작품을 뽑을 때 칭찬과 함께 해주셨던 조언이 자꾸만 나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렇게 일 년 이상을 더 묵히던 생각들이 결국 작년에 시골집에 내가 내려오게 되면서 나만의 작업실로 전원주택을 25평이나 되는 걸 얻은 이유가 되었다.
세종에서 소설의 초입을 시작은 하고 왔지만, 작업실 마당에 잔디밭이 깔려 있어도 나는 봄과 여름 내내 작업실을 오지 못했던 것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말기암 발견으로 '방개아저씨'를 거의 손을 못 대고 있었다.
그런 내가 '방개아저씨'를 다시 쓸 수 있었던 것은 브런치 작가가 되고 그동안 초벌구이 같은 '방개아저씨'를 별생각 없이 내 작가의 서랍에서 꺼내어 조금씩 올리다 보니 어느 날 이상하게 의외로 '방개아저씨'의 독자가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방개아저씨는 실존 인물의 행적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지만, 소설화된 한 사람의 주인공이 되어서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내 이웃의 언니 오빠들의 추억 속의 인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이 감히 김유정의 '봄봄'같은 유수한 작품은 아니더라도 나는 그런 비슷한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 지금도 내 기억의 저편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 집 저 집 일을 해주던 방개아저씨가 해가 질 저물녘에 남의 밭에서 땀이 흠씬 젖고 흙물이 누렇게 번진 누더기 옷을 입고 저 아래의 냇가를 걸어가거나
행길을 걸어올 때면 그 아저씨가 누구에게든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싱글벙글 웃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난 소설가로서 대단한 자부심은 크게 없더라도 최소한의 독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고, 또 나의 소설의 스승이신 황충상 교수님과 이건숙 소설가께 부끄러운 제자가 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으로 소설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내 제자가 칭찬해 준 김유정의 '봄봄'처럼 한국소설의 우수한 작품으로 뽑힐 만큼의 재주나 탁월함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그 제자가 "선생님 정말 수고하셨어요 장편을 쓰시느라"라는 정도의 격려만 받아도 난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실 것 같은 방개아저씨가 하늘에서 내게 나를 주인공 삼아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신다면 그로써 얼마나 위안일까 싶은 것이다.
이 땅에 대다수의 민초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찰나 같은 한순간을 살다가 간다.
그 이름의 덧없음, 민초들이 살아가는 서러움, 상처, 그리고 가난과 한숨이...... 잡초처럼 자라서 이 땅에서
그래도 오늘 하루를 힘 있게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위로이고 위안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방개아저씨가 살아 있으면 90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 아저씨의 힘들고 외롭고 고단하고 정처 없던 떠돌이 삶을 가난한 어느 집의 따스한 아랫목에 지펴놓은 호롱불처럼 그렇게 작은 등불로 그의 삶과 사랑과 아픔을 그려내보고 싶은 것이 이 겨울의 내 바람이고 숙제다.
대지는 차가우나 바람은 오늘도 거세게 불지만, 그래도 가난하고 힘없는 내 이웃들이 그리고 나 자신이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은 무엇들일까를 생각하면 그것은 대다수 큰돈이 아니라 무슨 엄청난 권력을 쥔 자들이 아니라 어디서나 대우를 잘 받지 못하거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름 없는 이웃들이 내게는 힘이 되어 주었고,
내게는 친구들이 되어주었다.
오늘도 부자가 거들먹거리며 가져온 고깃덩어리보다는 별 볼 일 없는 친구나 이웃의 꼬부랑 할머니들이 가져온 냉이 한 봉지가 더 소중하고 더 감사할 뿐이다.
어제도 며칠 전에도 우리 윗집에 할머니는 꽁꽁 언 땅에서 자라나 온 냉이를 한 소쿠리 뜯어다가 이 집 저 집에 까만 봉지에 담아서 나르고 있다.
그 할머니는 평생을 겨울과 봄이면 추운 들판이나 거친 먼지가 이는 봄날에 논둑이나 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 종일 냉이를 캐다가 온양장에 내다 팔아서 자식도 가르치고 자기 먹을 사고 입을 것도 사고 그렇게 살아오셨다.
지금은 이제는 너무 늙어서 장에다 냉이를 내다 팔지는 못해도 그 냉이를 캐던 습관과 냉이를 캐서 옆집 앞집에 나눠주는 그 정은 잊지를 못하시고 며칠 전에도 엄마 냉잇국 끓여드리라고 한 봉지를 가져오셨는데,
오늘도 또 한 봉지를 우리 집 거실에 내려놓고 가신다.
"글씨 쓰냐? 뭐 쓰냐? 누구 읽으라고 쓰냐? "하시며 호호호 웃으시며 나가신다.
나는 이런 마을에 사는 걸 감사하게 여기며 '방개아저씨'를 끝까지 잘 써보고 싶을 뿐이다.
방개는 우리 모두의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생각이 있다면 .......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