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렴 (국어사전) 뜻 : 모임이나 놀이 또는 잔치 따위의 비용으로 여럿이 각각 얼마씩의 돈을 내어 거둠.
마을에 총회가 열띤 토론을 벌이면서 밤새도록 마을 회관의 천정이 들썩일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마지막에 훈수를 둔 사람은 마을에서 제일 많이 배우고 학식이 풍부하고 집안에 그래도 검사도 있고, 대학에 교수도 있는 권 씨 어르신의 한마디가 결론을 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다들 걱정이 많겠지만,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그래도 우리 동네에 정 붙이고 살던 객지 사람이 저렇게 되었으니 교회랑 상관없이 동네 사람 모두가 자기 형편 데는 데로 부조를 좀 합시다. 그리고 형편이 좀 좋은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힘껏 내시고, 없으신 분들은 어쩌겠어요, 형편껏 내야지."
그때 말석에 앉아 있던 윤 씨가 화가 잔뜩 난 소리로 말을 퉁하이 던졌다.
"그럼 교회 십자가를 동네가 진단 말이요?"
권 씨 어르신이 점잖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니, 꼭 동네가 책임을 진다기보다는 동네 사람 모두가 힘을 보태주자는 얘기지요. 그렇지 않으면 지금 교회는 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하고, 장로님이 우선은 제일 많은 돈을 내보신다고 하니 나머지는 동네 사람들이 부조금이다 하고 형편껏 내보시라는 거지요."
윤 씨는 더 이상은 할 말이 없는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며 한마디를 더 했다.
"그럼 동네가 부조금을 내주는 게 아니라 문 씨 배상금을 동네서 추렴해서 내주자는 얘기 아녀요."
마을에서는 각자 돈을 얼마를 내야 할지를 놓고 집집마다 큰 고민거리가 생긴 것이다.
어느 집에서는 그 문제로 부부지간에 큰 싸움이 나기도 하고, 어느 집에서는 몰래 쌈짓돈을 가지고 있던 것을
감추는 아낙네도 있었고, 어느 집에서는 가난한 문씨네 때문에 석 달을 허리를 조이고 살 생각으로 밤새도록
장판밑에 감춰둔 돈, 광 한구퉁이에 단지에 몰래 넣어 둔 돈을 으스름 달빛에 꺼내어 세어보느라 고심을 하는 집.... 집집마다 누군들 편히 잠을 잘 수 없는 밤이 되어버렸다.
덕구도 밤새 한 숨을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방개야 본시 돈이 없으니 그런 고민을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자기는 면장집에서 머슴을 그만두고 다섯 조카를 데리고 사는 형편이긴 해도 죽은 형이 남긴 논도 좀 있고, 자기가 머슴을 살면서 산 논도 꽤 되다 보니 이제는 마을에서 덕구도 가난한 축에 속하지는 않는 형편이라서 교회는 나가지는 않아도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문 씨가 저렇게 갔으니 그 자식들을 생각하면 적게 낼 수는 없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던 것이다.
덕구는 아내 모르게 조카들 중학교 보낼 때 쓸 입학금을 뒤뜰에 감나무 밑에 항아리를 묻어두고 감추어 놓았던 돈이 꽤 있는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 돈이면 문씨네 아이들이 적어도 일 년 먹을 쌀가마니는 넉넉히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얼마 전, 인근의 공사장에서 겨울에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새벽부터 나가서 일을 해서 벌어온 돈인데 이 돈을
다 내줄 것인지...... 아니면 내 형편대로 세발에 피 모양으로 쪼금만 시늉을 할 것인지 덕구는 눈알이 빡빡하게 아플 정도로 밤새도록 고민을 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마자, 덕구는 아내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뒤뜰로 가서 감나무 밑에 감춘 항아리에서 헝겊에 싸 둔 돈을 다 꺼냈다. 그리고 그 묵직한 돈다발을 보자기에 둘러서 얼른 아내 몰래 가지고 권 씨 어르신 댁으로 급한 걸음으로 달리다시피 가서 그 집에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눈이 황소눈처럼 커진 것은 권 씨 어르신이었다.
"아니, 자네가 이렇게 큰돈을 추렴한다는 거야. 조카새끼들 기르기도 힘들 텐데.... 어떻게 이런 큰돈을 낸데."
"조카새끼들 중학교 입학금으로 얼마 전 공사판에서 번 돈 한 푼도 안 쓰고 감춰둔 것인디, 어떡한데유, 나는 땅떼기라도 있으니 그냥저냥 앞으로도 살겠지만, 문씨네는 아무것도 없잖아유."
권 씨 어르신은 아직은 아무도 부조금을 가져온 사람이 없으니 그럼 어렵겠지만 자네가 마을 사람들 좀 설득도 하고 해서 문 씨의 배상금을 잘 추렴을 좀 해줄 수 있냐고 했다.
덕구는 권 씨 어르신의 말을 무조건 들어드리기로 했다. 이 어려운 일을 누가 할까 싶기도 하고 빨리 시신이 든 관을 길에서 치우고 장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덕구는 마을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과 문씨네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허리에 커다란 자루를 하나를 메고 마을에 각 집을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개도 데리고 다녔다.
만약에 마을에 좀 성질 꽤나 사나운 사람이 시비가 붙으면 방개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계략도 있어서 방개를 친구처럼 데리고 덕구는 한 집 한 집 마을을 돌면서 돈을 추렴하기 시작했다.
"부잣집에서 큰돈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구먼. 막상 다녀보니 부잣집 인심보다는 그냥저냥 사는 사람들이 더 인심이 더 낳네 그려."
덕구와 방개는 돈자루에 돈이 쌓일수록 신이 났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속마음도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값진 보화는 예상외로 과부의 쌈짓돈처럼 힘들게 돈을 모아둔 것을 눈물을 흘리면서 내놓는
사람들의 인심 속에 있었다.
윗동네, 아랫동네, 저수지 너머 동네까지 덕구와 방개는 밤이 새도록 한 집 한 집을 다니며 200호가 넘는 마을의 집을 돌아다니며 부조돈을 추렴을 했다.
마을 사람 대다수는 덕구가 너무나 착한 사람이고 또 동네 어르신인 권 씨 어르신이 믿고 보냈으니 누구든 그에게 돈을 내는 것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방개가 따라다니는 것은 그저 우습게 생각하며 방개를 골리는 사람들도 가끔은 있었지만, 돈을 얼마를 낼 것이지에 대한 고민들이 워낙 크다 보니 생전에 가까운 친척이 죽었어도 이렇게 큰 부조금은 낸 적이 없다고 구시렁대는 사람, 문씨네 애들 때문에 울면서 곗돈까지 다 털어서 내는 사람 별의별 사람들이 다 많았다.
밤새도록 이백호가 넘는 마을을 집집마다 추렴해서 걷은 부조금은 커다란 자루에 가득하게 채워져서 권 씨 어르신과 이장과 마을 사람들이 몇몇이 모인 마을 회관에서 일 원짜리 동전하나까지 전부 계산을 해보니 생각보다 큰돈이었다.
문씨네와의 마지막 중요한 협상은 교회의 장로님이 하기로 했다. 장로님의 지혜인지 몰라도 젊디 젊은 전도사님은 서울에서 내려오질 못하게 하고 장로님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이 일을 잘 마무리하기로 한 것 같았다.
장로님은 큰 밭을 급하게 도회지의 친척에게 팔기로 하고 돈을 미리 받아서 엄청난 거금을 들고 새벽에 마을에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고 했다.
다음 날 문씨네는 장로님과의 협상에 타협을 하고 장례를 마을 사람들과 잘 치렀다. 그리고 교회를 짓던 전도사님은 결국 교회로 내려오질 못하고 서울에 다른 교회로 사역을 옮기기로 했다고 교인들이 말하는 것을 덕구는 듣고 그것이 더 잘 된 일인지 잘 못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교회가 하는 일을 자신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문 씨의 시신이 잘 묻힌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덕구는 교회에 나오라는 장로님 말에 선뜻 대답은 못했지만, 방개를 데리고 밤새도록 문 씨의 부조금을 추렴하러 다니던 그 밤길에서 달빛이 휘황하게 비추이는 새벽녘 저수지를 돌아서 오는 길에서 자신은 어쩌면 하나님이 자신과 방개를 달빛으로 고요히 감싸시며 자신들을 대견해한다는 생각도 선뜻 들었었던 터라 자신은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믿는 교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 씨의 장례를 무사히 치르고 교회는 한 달 만에 아주 아름답고 성스러운 모습으로 마을의 산자락 아래에
위풍당당 십자가를 세우고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해서 들어오셨다.
마을 사람들은 목사님이 교회에 오신다는 말에 약간은 겁을 먹은 아이들처럼 목사님이면 전도사보다는 높은 사람 아니냐며 어떤 이는 약간은 놀라는 표정들을 지었다.
그러나 방개와 덕구는 다시 논에 일을 하러 가야 했고, 밭에서 감자를 캐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밥을 하는 아내들에게 땔감을 갖다 주어야 하는 고단한 일이 연속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교회가 새로 지어지고, 덕구가 하는 일은 손을 대는 것마다 농사도 풍년이고 모든 일들이 순조로이 되면서 집에는 계속 쌀가마니가 쌓여가고 돈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르게 수북수북 쌓여서 덕구네 집에 돈을 꾸러 오는 동네사람들이 아침이면 서넛은 되었다.
방개도 덕구가 부자가 되어가자 덩달아 신이 나서 덕구를 마냥 따라다니며 등이 구부정할 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자 방개가 번 돈으로는 엉가를 벌써 학교를 보낼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방개가 그 마을에서 계속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방개는 틈만 나면 아무 말도 없이 덕구네 집을 나가서 몇 날이든 몇 달이든 연락도 없이 떠돌아다닐 때도 많았던 터러라 덕구는 방개의 그런 습관은 병적인 부분이라고 생각을 접기로 했는데, 매번 덕구보다는 엉가 엄마가 더 방개를 기다리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