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여자라고는 해도 엉가엄마가 본래 미친 여자는 아니었기 때문인지 엉가 엄마도 데리고 살아보니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야무진 데가 있었는데, 그 딸 엉가는 어릴 때부터 보통은 넘는 똑똑이 었다. 그래서 덕구는 엉가네가 방개랑 자기 집 사랑채에 방한칸을 들어놓고 살 때부터 엉가가 학교 갈 나이가 되면 엉가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틈틈이 했었다.
덕구의 생각대로 엉가를 학교에 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조카들이 학교에 갈 때 한 두 번 엉가를 그 애들 뒤꽁무니에 딸려 보냈더니 엉가는 일곱 살이 되면서 매일 아침 학교를 보내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그래서 덕구는 자신이 머슴을 살던 면장에게 부탁을 해서 엉가가 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게 도움을 받았고, 엉가는 덕구의 계획대로 국민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었다.
엉가는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받아쓰기부터 백점을 받고, 산수도 곧잘 했다.
엉가 엄마는 정신이 온전할 때는 엉가에게 한글도 가르칠 정도로 공부를 한 여자였다는 것을 덕구와 방개는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방개는 엉가가 학교를 다니자 얼마나 좋았던지 온양장에 나가서 엉가가 책을 싸가지고 다닐 수 있는 책보로 쓸 보자기를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두 개나 사가지고 왔다. 엉가는 아침이면 책보를 번갈아가며 바꾸어서 책과 공책을 싸가지고 학교를 다녔다. 엉가 엄마도 엉가가 학교에 갈 시간이면 씻기고 밥도 먹이는 것이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고, 엉가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면 동구밖에 나가서 엉가를 기다리고는 했다.
그런 엉가 엄마를 동네 사람들이 보고는 엉가 엄마가 이제는 제정신이 돌아왔나 보라고 칭찬도 해주고 이뻐라 하니 엉가 엄마도 이제는 동네 사람들을 보면 피하거나 자기를 해코지하는 줄 알고 피하고 욕을 하던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엉가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즈음부터 방개는 예전보다 이상하게 더 자주 나가서 며칠씩 들어오질 않았다.
그런데 방개가 주로 다니는 곳은 장항선의 역전들이었다.
역전이란 곳이 생기고 그 역마다 의자도 놓여있고 해서 그런지 역전에는 거지들이 항상 잠을 청하거나 술 취한 채로 세상만사 시름을 잊은 듯이 누워있고는 했는데, 방개가 덕구네 집을 나가서 역전에서 거지들과 함께 잠도 자고 술도 마시고 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덕구는 마음이 아펐다.
혼인도 하지 않은 엉가 엄마와 이제는 국민학교를 다니는 엉가와 함께 한 방을 쓰는 것이 불편한가 싶기도 해서였는데, 방개는 거의 방 안에서 잠을 자는 법이 없이 주로 덕구네 헛간에서 잠을 잤던 터라 그것만은 아닌 것도 같았다.
아무래도 방개가 장항선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기차 타는 것이 재미도 있고, 떠돌아다니는 것이 습관이 된 방개가 덕구집에서 계속 머물며 사는 것을 원해서도 안된다고 덕구는 차츰 생각을 바꾸어가기 시작했다.
엉가가 학교에 가서 이제 한글에 받침이 들거간 것도 곧장 읽어내는 데는 불과 3개월 밖에 걸리지를 않았다.
그만큼 엉가는 생각보다 아주 똘똘한 어린애라서 덕구네 집에서는 점점 덕구의 조카들과도 잘 놀고 , 덕구의 아들 기백이와 딸 향숙이를 곧잘 봐주곤 했다.
엉가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서 국어책을 마루에서 읽고 있을 때였다. 초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온 집을 따사롭다 못해 약간은 더위를 느끼게 하는 날씨였는데, 갑자기 집안이 환한 달이 뜬것 마냥 얼굴이 희고 하늘빛 긴 원피스는 금방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것 마냥 어여쁜 처녀가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을 본 엉가는 손에서 국어책을 떨어뜨렸다.
"와, 정말 이쁜 언니다. 공주다."
엉가가 본 처녀는 미자였다. 열다섯 살에 집을 나간 덕구의 조카 미자였는데, 미자의 모습은 환골탈태한 모습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약간 튀어나온 이마는 반달모양 같았고, 검은 눈동자가 커다란 눈에 긴 쌍꺼풀은 깊은 호수처럼 잠잠했고, 어느 사이 쭉 뻗어 난 다리는 미루나무처럼 길고 멋있는 데다가 봉숭아를 포개놓은 것 같은 젖가슴도 원숙해지는 처년 티가 나는 것이 어쩌면 집을 나갈 때의 그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미자가 잠깐 다니러 왔다고 작은 아버지집을 오는 동안 온 동네에 금세 미자가 얼마나 이뻤던지 총각이 몇이나 주렁주렁 따라와 덕구의 집 주위를 빙빙 하릴없는 인간들처럼 돌고 있었다.
덕구는 조카 미자가 너무 이뻐진 것도 좋았지만, 총각들이 따라온 것을 보고 금방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는데, 미자가 저녁 밥상 앞에서 꺼낸 말이 더 가관이었다.
"작은 아버지 저 미스코리아 대회 나가게 되었어요. 제가 진선미 중에 뽑히면 우리 집은 이제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요. "
"미스코 뭐, 미스 코 뭐라고"
"작은 아버지 미스코리아 대회 라구요."
"미스코리아, 그게 뭐 하는 대회인디."
"네, 제가 미인대회를 나간다고요."
"미인대회, 그런 게 어디에 있는 대회인겨."
그때 덕구의 아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여보, 당신은 모르만유, 미스코리아 난 알아요, 전국에서 이쁜 여자들이 죄다 모여서 수영복만 입구 돌면서 누가 제일 이쁜가 대회하는 건데."
덕구는 아내의 말에 금세 얼굴이 파래졌다.
"수영복, 그런 빨가벗고 다니는 옷은 체면 없는 사람들이나 입는 거지 어디 시골에 여자애가 그런 옷을 입구 미인대회를 나간다고 그려. 당최 그런데는 기웃거리지도 마라. 잘못하문 신세 망친다. 남자들한테 몸을 보이거나 하는 것은 본데없는 집안에서나 하는 짓이지."
"작은 아버지, 우리 집 같은 집이 무슨 체면이 서는 집이에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우리 오 남매가 앞으로 다들 어떻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을 만큼 산단 말이에요. 이런 촌구석에서 살면서. 그것도 작은 아버지 머슴해서 번 돈으로 논 몇뙤기 산거 가지고 제 동생들이 무슨 수로 대학을 가고 출세를 하겠어요. 저도 미장원에서 언제까지 시다발이 하며 조수노릇하고 살겠어요. 저도 이제는 서울에서 떵떵거리는 집안에 남자들이 청혼도 해오니 미스코리아 나가서 상을 타서 출세를 할 거예요. 그리고 보란 듯이 이 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남자랑 살아보고 싶다고요. 저 그래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도 다 마쳤어요."
덕구는 그저 조카 미자의 말에 어안이 벙벙할 뿐 벙어리처럼 대답도 못했다. 왜냐하면 땅과 하늘이 천지차이이듯이 미자는 지금 자기와는 생각이나 마음이 천지차이가 날 정도로 전혀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할 말이 더 이상 없다. 네 인생이니 그럼 네가 알아서 해라. 그 대신 네 동생들은 내가 힘이 부치는 데로 가르칠 것이니 제네들은 서울로 끌고 갈 생각 말어. 그만 서울로 올라가든지 네 그 헛된 망상을 벗고 뽕나무는 뽕잎을 먹고 자라야 하니께 여기서 내일부터 온양 나가서 미장원에 일자리나 알아보던지 해라.
서울 사람들이 다 너 술집에다 팔아먹으려고 그런 미인대회니 뭐시께 닝이 하는 데다 널 파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이."
덕구는 창호지가 덜렁거리는 문을 박차고 마당을 가로질러 행길로 나섰다. 방개가 있다는 도고역에라도 가볼 참이다. 속이 시끄러우니 방개랑 이말 저말 하다 보면 울화통이 터지는 속이 좀 가라앉을 것 같았다. 조카 미자가 겉바람이 잔뜩 들어온 것이라고 덕구는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도고로 가는 길에 산모퉁이에서 하얀 보름달을 보니 조카 미자가 달덩이 마냥 이쁜 건 사실이었다.
"우리 형수님이 워낙 미인이시긴 했지, 형이 장가갈 때 온 동네가 다 뭐여, 면내가 시끌시끌할 정도로 이쁜 여자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고 다들 부러워했었지. 그 형수를 빼다가 박았어."
덕구는 형이 자기랑은 너무 다르게 키도 크고 미남이었던 데다가 총각때 도회지물을 조금 먹었던 터라 형수랑 선을 한 번 밖에 안 봤지만 형의 도회지 자랑에 형이 결혼을 하면 도회지에 나가서 호강을 시켜줄 알고 산골에 살던 풋내기 형수가 날름 시집을 온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 아까운 사람 둘이 자기에게 이렇게 큰 십자가를 져주고 세상을 떠난 것이 오늘은 참으로 야속했다.
"저것을 내가 어째것어. 미자 저게 내 말 안 듣게 생겼는데."
덕구는 미자의 앙다문 입술에서 고집과 욕심이 하늘을 찌를 듯이 차 있는 것을 보고 집을 나온 것이었다.
조카 미자가 도회지에서 물을 잘못 먹은 거라고 덕구는 생각을 했다.
"누가 저 어린 계집애한티 바람을 넣은 거야."
그러나 덕구는 그것이 세상이었던 사람이었던 이미 미자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이란 곳이 그렇게 시골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덕구는 여러 사람들에게 들어오던 터라 이 시골 구석에서 배운 것도 없이 사는 자기로써는 이미 서울물을 먹은 미자를 고쳐볼 수가 없을 거라고 체념이 저절로 나오니 한숨만 푹푹 쉬며 도고온천길을 걸어서 도고역에 다다랐다.
방개가 도고역에서 몇몇의 거지들과 술판을 거나하게 벌이고 있는게 멀리서 보였다.
분명 방개가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다 사다 주었을께 뻔했다.
"어휴, 내 속이야, 오나가나 속터지는 인간들만 있구만. 방개 저눔의 자식이 죽어라고 땅파서 맨 거지들이나
거둬먹이니 참 내원. 어째 저런 술주정뱅이, 거지들을 거둬먹이냐구."
방개는 누가 일을 한 품삯을 주면 그 돈으로 이상하게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거나 먹을 거를 사서 갖다 주는 짓을 곧잘 해서 덕구는 그것이 참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도고역에서 거지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니 도고의 떡방아집이나 큰 쌀집에서 힘들게 일해서 몇 푼 번 돈으로 분명히 저 거지들에게 술을 적선하고 있는 게 뻔했다.
그러나 오늘 밤은 덕구도 방개랑 같이 그 술판에서 술을 한 잔은 마시고 싶어졌다. 맨 정신으로 집에 들어가서 조카 미자에게 또 무슨 잔소리든 해봤자 이미 미자는 서울물을 먹은 서울가시나였지 자기 조카 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