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떼들에게 돈을 빼앗긴 덕구는 방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카 미자에게 미스코리아대회에 나가도록 허락을 해주기로 한 것이었다. 상을 타고 못 타고는 두 번째이고 가난한 살림에 진력이 나버린 처녀에게 삼촌이지만, 자신이 도와줄게 별로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난 때문에
아까 도고온천역서 본 거지 떼들 모양으로 남의 돈이라도 훔쳐서 달아나는 그들의 배고픔이 다시는 조카들이나 자신에게 대물림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지들은 하루에도 몇 명씩 덕구가 사는 마을에도 떠돌아다녔지만, 장항선이 생기면서 역전을 주변으로 거지들이 떼를 지어서 술을 마시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한번 그 생활에 물이 들고 나면 일하지는 않았다.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으려 했고, 더구나 한국전쟁 이후에 손과 발을 전쟁통에 다친 상이군인들은 상심한 마음과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서 멀어지면서 자립을 하지 못하고 거지가 되어 떠도는 경우도 있어서 쇠갈고리손을 한 상이군인 거지들도 가끔씩은 마을과 역전을 떠돌았다.
덕구는 거지들이 아침에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항상 마루에서 그들과 겸상을 해서 밥을 먹던 사람이라서 덕구에 돈을 훔쳐서 달아난 거지들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더 도와줄 수 없고, 그들과 늘 친구로 지내는 방개가 술로 타락할까 싶어서 도고온천 역전 뒤로 도망친 그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며칠만 있으면 그들은 또 방개와 덕구네 집 근처를 맴돌지도 모른다. 배고픈 거지들에게는 체면도 없고, 어제일도 기억에 없는 것이다. 오늘 하루 한 끼를 배만 주리지 않으면 기적인 것이다. 더구나 상이군인들은 마음이 심하게 다친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의 비위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가끔씩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던 터라 덕구는 방개에게 늘 그들과 어울려 놀 때는 몸을 조심하고 놀라고 당부도 했다.
그러나 방개는 모든 거지와 상이군인들과 다 친구가 될 만큼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완력을 쓰거나 먹을 거를 빼앗어 먹지를 않으니 방개에게는 그들도 어디서나 호의를 베풀며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주고는 했던 것이다.
방개는 자기와 특별히 정을 나누고 대화를 하는 상이군인이 한 명 있는데, 그가 요즘에는 도고온천에서 온천물이 흐르는 개천 근처에서 굴을 파고 산다고 해서 그에게 잠잘 곳을 마련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이름은 허 씨라고만 했는데, 그는 아내도 있었고, 아들도 있었다고 했다. 전쟁에 나가서 총탄을 다리와 팔에 맞아서 팔과 다리가 다 병신이 되어버리자, 아내가 집을 나갔고, 자식만 부모에게 맡기고 그는 집을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서 영어를 방개보다도 더 잘했던 터라 방개는 자기가 좋아하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도 그 상이군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눠줬다.
방개도 거지나 진배없이 가난한 떠돌이인 데다가 허 씨도 오른팔은 잘려나가고 발도 한쪽 다리를 발목을 절단한 상이군이다 보니 둘이 돌아다니면 방개도 일거리가 들어오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방개는 도고온천에서 유황물이 노랗게 개천을 흘러가는데 허 씨가 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자기의 마음이 봄햇살처럼 따사로워졌다.
허 씨는 잘린 팔과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올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도고온천의 유황물이 그에게는 큰 약효를 발휘해서 그는 목욕탕에는 갈 돈이 없으면 목욕탕에서 버린 유황물이 흘러내리는 개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방개가 그를 찾아가 얻어온 떡과 식은 밥을 한 덩이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덕구도 그런 허 씨의 사정을 아는지라 방개에게 허 씨에게 먹을 것을 갔다 주라고 심부름을 보낸 적도 많았다.
덕구는 다음날 아침 상을 받아 놓고 미자를 불렀다. 서울 갈 채비를 이미 끝낸 미자는 샘에서 머리를 다 감고 긴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툇마루에 앉았는데, 작은 아버지인 자기가 봐도 미자가 정말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덕구는 미인대회가 뭔지는 몰라도 이 무식한 조카를 전국에서 그리도 이쁜 여자들이 다 모인다는데 뽑힐까 싶었다. 옛날로 치면 왕비를 뽑는 것과 같이 어여쁘고 배운 여자들이 모일 것이고, 지금으로 치면 영화배우라는 특별난 미인을 뽑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터인데, 시골뜨기에다가 배운 것이 모자라고 밀어주는 사람도 없는 미자가 뽑힌다면 그건 순전히 가난한 자기 조카들이 서울 가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하늘의 도움일 거라고 생각도 해본 것이다.
"미자야, 네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봐라. 작은 아버지는 마음으로 도울밖에 다른 건 없다.
예전 같으면 양반댁 규수처럼 살아야 시집도 잘 가고 신랑도 믿을만한 사람을 만나는 세상이지만, 전쟁통에 사람들이 체면, 체통보다는 사는 게 더 다급해졌다. 그리고 나도 형님이 이렇게 되었는데, 너희들을 보란 듯이 서울에 공부하러 가라고 말을 못 하는 처지다 보니 네가 미인대회 나가서 상금이라도 타문 동생들 뒷바라지라도 조금 될 거 아니냐. 그러니 네 소원대로 해보거라. 작은아버지도 하늘에 빌어보련다."
"네 고맙습니다. 작은 아버지. 제가 만약에 이번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상금도 타고 뽑히면 우리 동생들 다 서울로 유학시킬게요. 대회가 다음 주니께 서울 가서 빨리 올라가서 대회 준비를 해야 돼요."
미자가 서울로 가고 덕구도 며칠 동안 걱정반 설렘반으로 잠을 이루 지를 못했다. 조카가 떨어지면 실망이 클까 봐 걱정이 되었고, 뽑히면 그 이쁜 얼굴이 전국에 알려져서 혹시라도 혼사가 망쳐지는 일이 나중에 생길까 봐 은근히 그것이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