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가 미스코리아에 나간다는 소문이 인근에 자자하자 덕구를 보면 온 동네 사람들의 인사가 다 "미자 미인대회 나간 거 어떻게 됐슈?"였다. 마을에는 신문을 읽는 사람이라고는 면장댁의 면장 한 사람이었고, 그 어느 누구도 서울에 소식을 신문으로 읽을 수 있는 집은 없었다.
그래서 덕구도 미자의 소식이 전보로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인대회날이 끝나고 다음날 궁금한 걸 참을 수가 없어서 덕구는 면장이 일하고 있는 면사무소를 달려가 보았다.
"미자 이름이랑 사진은 없는거 같은디, 다들 이름도 바꾸고 화장도 진하게 하니까 나도 못 알아볼 수
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떨어졌나 본데."
면장의 말에 덕구는 가슴에 휑한 바람이 지나간 듯이 실망과 아쉬움이 오뉴월에 찬서리 내린 것처럼 이상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뽑히기를 바란 것인지 떨어지기를 바란 것인지 감이 잡히지는 않았어도 속마음이 아무래도 이번에 미자가 이왕에 나간 미인대회에서 뽑혀서 상금도 타고 집안도 훤히 박혀서 조카들이 고등학교 대학교를 서울로 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농사를 지어서 고아가 된 남자 조카들 세명을 다 뒷바라지하기에는 작은아버지로서는 자신이 서실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미자 바로 밑에 땡칠 동생 민철이는 머리가 보통 좋은 게 아니라서 일찌감치 국민학교에서 매번 전교 1등 상을 타는 수재였던 터라 작은아버지로써는 민철이를 서울로 유학도 보내보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
그 녀석만 출세를 시켜도 덕구로써는 나름 남의 집 머슴으로 살다가 형과 형수가 한날에 죽자 그 고통을 이기며 다섯 명의 조카를 데리고 산 보람도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미자와 미자 언니는 여자니까 시집을 잘 보내면 되지만, 아들들은 공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자기가 짓는 농사를 이어받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농사는 너무 고되고 시골에 사는 것이 덕구도 때때로 맞지를 않았던 것이다.
머리가 좋고 생각의 폭이 넓은 덕구로써는 시골에서 단순하게 산다는 것이 그로써는 답답하고 미련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덕구도 틈만 나면 한문공부를 했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역사책을 같이 뒤적이면서 밤을 보낸 적도 많았던 것이다.
자신이 중학교만 나왔어도 이 힘든 농사를 다 접고 땅을 팔아서 천안에 나가서 살고 싶은 마음도 많았다. 천안만 해도 온양보다는 교육과 교통이 많이 발달한 도시였기에 아이들이 거기서 공부를 하면 고등학교까지는 좋은 데를 나올 것 같았던 것이다.
면사무소에서 터덜거리고 집에 오자 미자가 와 있었다. 얼굴이 시무룩하더니 금세 환하게 웃으며 작은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런 말을 한다.
"작은아버지 저 미스코리아에는 본심에서 떨어졌지만, 그래도 거길 나갔다 왔더니 좋은 제안이 왔어요.
서울에서 제일 큰 미용실에서 저를 뽑아서 가기로 했는데, 조건이 아주 좋아요. 방이 두 개나 있는 큰 집도 빌려주고, 지금 받는 월급에 세배가 넘는 돈을 준데요. 그러니 민철이 전학을 서울로 시켜도 될 것 같아요.
작은 아버지 민철이가 공부를 워낙 잘하니까 서울에서 시켜보고 싶어요.
지도 나중에 커서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서울대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민철이를 데리고 갈게요. 전학을 시켜주세요."
미자가 참으로 훌륭해 보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덕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미자는 성숙해져 있었고,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이미 사람이 출세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훤히 아는 여자애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와 행운도 놓치지 않고 거머쥐는 능력이 있는 것을 보니 보통내기가 아니게 성장한 것이다.
미자가 방이 두 개나 딸린 큰 집으로 이사를 가고 미용실도 옮기면서 덕구네 집도 변화가 왔다. 미자의 월급이 그 당시 면장보다 많은 월급을 탔으니 덕구로써는 조카 덕분에 기를 피고 살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공부 잘하던 민철이를 시골에 중학교에서 서울로 옮기 고나니 덕구의 기대감은 벌써 하늘 높이 올라가서 민철이가 벌써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기분이 들정도였다. 그리고 말로만 들었지 뭘 하는지도 잘 모르는 직업인 외관이 되어서 민철이가 벌써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을 자랑하고 다니는 아주 높이 출세한 사람이 되어서 마을에 오면 면장도 마중을 나가는 사람이 된 것 같이 꿈이 부풀어 올랐다.
덕구는 방개와 같이 민철이의 짐을 기차로 날르고 오던 날 방개랑 처음으로 서울구경을 갔다.
둘이서 서울역에서 제일 가깝다는 덕수궁을 구경하고 오기로 하고 둘은 덕수궁에 가서 처음으로 고궁을 둘러봤다. 돌담길도 아름답고 엄청나게 큰 옛날의 궁궐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해서 둘은
고궁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왔다.
"여기서 고종이 살았다고 하니 옛날의 임금들은 역시 사는 곳이 달랐구먼."
방개는 중학교를 다니다 말아서 덕구보다도 더 지식으로 아는 게 많아서인지 고종이 어떤 왕인지도 자세히 설명을 하면서 어둑해진 저녁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덕구는 기차 안에서 방개가 저렇게 아는 것도 많은데, 왜 이리 이상하게 떠돌고 사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싶었고, 방개를 조금 더 사람답게 살게 해 주려면 무슨 약이라도 먹여야 하는지 싶어서 병원에를 데리고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 말대로 방개는 머리가 너무 좋은데 6.25 전쟁통에서 옆집에 살던 친구가 총을 맞고 온 사지가 총알에 박혀 죽는 것을 보고 놀래서 머리가 살짝 돌아버린 게 맞는 거 같다. 그때 놀란 병이 아무래도 방개를 한곳에서 머무르지 못하는 떠돌이 병자로 만든 것이 분명한 거 같은데, 놀랜데 먹는 약도 있다는데 그걸 병원에 가서 지어서 먹여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것이 덕구의 고심으로 그날 떠오른 것이다.
방개는 어디를 가도 늘 웃고 다니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주는 걸 보면 그 착한 심성은 과히 천사라도 따라 할까 싶으니 저런 마음을 한 곳에 살면서 잘 자리 잡고 살면서 쓰면 그는 분명 가정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은 것이 덕구의 생각이었다.
덕구는 그날 다시 방개에게 물었다.
"자네 엉가 엄마랑 살 마음은 없지."
"그럼유, 난 아무랑도 안 살어유. 그런디 좋아하는 여자는 있슈."
뜻밖의 방개의 말에 덕구가 깜짝 놀랐다.
"자네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구, 그게 누군디."
"비밀이여유, 나두 남잔디 그럼 좋아하는 여자가 없것슈."
방개의 말이 분명 진심으로 들렸다. 덕구는 왜 자기 가슴이 이리 뛰는지 꼭 봄날 한밤중에 몰래 집을 나가는 처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방개 자네도 이제 보니 남자는 남자였구먼. 허허, 나는 자네가 남자도 아닌 줄 알았네 그려."
"뭔, 소리유, 나두 남자지유, 나두 순정이 있다구유.허허허."
덕구랑 방개랑 두사람은 기차가 떠나갈 둣이 웃어대며 온양역에서 내려서 선술집에서 대포를 한 잔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