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니.

by 권길주

덕구는 방개가 마음속으로 품은 여자가 있다는 말에 사실 깜짝 놀랐다.

방개는 자기를 괴롭히는 사촌형이 와서 돈을 삥 뜯어가도 덕구에게 좋다 싫다 사촌형 욕 한 번을 하지 않는

위인이다. 그리고 미친 여자인 엉가엄마를 불쌍히 여겨서 그 딸까지 데리고 다니며 바가지 하나로 두 모녀를 온 동네방네 돌아다녀도 한 번도 귀찮거나 힘들다는 불평이 없었다.

때로는 엉가엄마와 방개에게 돌멩이나 야유를 퍼붓는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왜 없었겠는가.

그도 모자라서 두 사람에게 행패를 부리고 때로는 엉가엄마에게 이상한 해코지를 하는 남자들도 있어서 방개는 때를 따라서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방개는 그런 일에 대해서 가타부타 한 번도 덕구에게 이 말도 저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땀이 엉글엉글 맺히도록 일을 하거나 아니면 혼자 산이나 들판을 걷고, 걷다가 힘들면 누워서 하늘을 보고 논두렁 밭두렁을 메고 잠을 잤다.

그런 방개에게도 남자로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여자가 있었다니 덕구는 가히 놀라웠다.

덕구가 놀란 것은 방개가 사람으로 본연의 감정과 감성이 이성인 여자에게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었다.

덕구가 생각할 때는 방개는 세상을 모르는 듯했고, 어느 때는 그가 모든 것을 알지만, 누구에게도 자기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 같기도 하여 그는 방개가 그저 연구에 연구를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만 느껴졌던 터라 그가 생각하는 방개의 본시 모습은 뭘까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덕구가 본 방개는 떠돌이지만 한없는 자비의 사람이었다.

자기 먹을 것을 내준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 시절인가.

아침이면 어느 집이든 하얀 고봉밥은 구경도 하기 힘들고 보리밥 한 끼 먹고 멀건 시래기 죽으로 하루를 연명해야 하고 고구마 한두 개로 주린 배를 채우며 끼니를 걱정하는 때이다 보니 보리쌀로 밥을 지어도 그 밥만 세끼를 먹으면 부자 소리를 듣고 사는 형편인데, 이런 보릿고개를 넘나드는 시절에 방개는 자기 먹을 것을 얻어다가 거지들을 먹였고, 상이군인들을 먹였으며, 엉가와 엉가엄마를 먹이는 사람이 아닌가.

그것도 자기가 머슴들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들만을 골라서 해주고 그 일한 삯을 돈으로 받지 않고 주로 먹을 거로 받아다가 큰 바가지에 한 바가지를 얻어서 거지 떼들에게 가니 그를 누가 뭐라고 말할까 싶은 것이다.

엊그제도 방개는 중골에서 몇 번째 안 가는 안씨네 집에 가서 외양간의 소들이 똥을 싼 것을 손바닥으로 까지 샅샅이 훑어가며 물청소를 했는데, 소들이 오랜만에 목욕탕에라도 온 듯이 샤워를 하고, 외양간까지 그렇게 깨끗하게 치웠다고 안 씨가 찰밥을 한 솥을 해서 방개를 주었다는 소리를 덕구는 들었다.


"아니, 소새끼들이 무슨 사람도 아닌데 하루 종일 샘에서 물을 퍼 날아다가 그리도 깨끗하게 목욕도 시키고 외양간이 미끄러지도록 손바닥으로까지 닦아대니 참 내원, 왜 저런 녀석이 저러고 사나 몰라. 저 힘으로 일만 하면 아주 떵떵거리고 살 텐데. 알 수 없는 팔자지 저 눔이."


안 씨가 방개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 머슴으로 들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만, 방개는 늘 그런 구속된 삶을 버리고 떠돌아다니니 혀를 끌끌 차며 한 말이었다고 누가 덕구에게 그에 말을 전했던 것이다.

그런 방개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마음속에 있다니 산속에 진달래꽃 모양 방개의 가슴속에도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덕구는 일단 기회가 되면 그 여자가 누군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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