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어머니의 느닷없는 청혼.

by 권길주

순자 어머니가 방개에게 간청을 했다.


"방개, 어려워 말고 안방으로 들어오게나. 반찬이야 된장찌개 밖에 더 있소만, 내가 할 말도 있으니

제발 방에 들어와서 나랑 겸상 좀 하세."


순자 어머니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서 방개에게 손짓을 하며 방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방개는 호떡이나 주고 가려다 말고 순자 어머니의 식사초대에 은근슬쩍 엉덩이를 방에 디밀었다.

방개는 대체로 누구네 집에서 일을 해줘도 겸상은 잘 먹지를 안고 헛간이나 사랑채에서 혼자 밥을 먹고는 했다. 보통의 집에서는 아내와 여러 명이 아이들이 있는 집들이라서 방개가 남자 되는 주인과 밥을 겸상해서 먹는다는 것도 어려웠고, 특별한 잔치집이 아니면 방개와 함께 밥상에서 밥을 먹을 만큼 친하지도 않거니와 떠돌아다니는 방개와 한상에서 밥을 먹기는 대체로 꺼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순자 어머니는 오늘 왜 특별하게 자기를 방으로 불러서 겸상을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온양장에까지 가서 사 온 호떡 한 봉지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순자 어머니가 크게 고마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방개는 순자네 안방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말도 더듬거리는 순자가 얼굴이 붉그레해져서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상위에는 된장찌개와 콩자반, 배추김치, 그리고 고등어가 한 마리 구워져 있었다. 꽤 군침이 도는 밥상이었다. 더구나 방개의 밥그릇은 남자 어른들이 먹는 고봉밥그릇이었는데, 밥그릇이 넘치도록 수북하게 밥을 퍼올려서 가지고 온 것이다.


"드시게나"


순자 어머니는 호흡을 고르며 가래가 끓는 소리를 냈다. 환자가 누워서 주로 지내는 방이지만 워낙 깔끔한 순자의 손길에 온 방안에 미쳐서인지 방은 아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환자인 순자의 어머니도 가까이서 보니 병색은 짙지만 몸에서 냄새도 나지 않고 머리도 단정하니 깔끔한 사람이었다.

나이는 대충 보면 오십이 조금 넘었을 정도니 그다지 나이도 많지 않은 것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시집을 와서 순자를 첫딸로 낳고 그 아래 동생들을 낳은 듯 순자의 어머니는 가까이에서 보니 꽤나 젊었다.

순자는 불편한 기색을 조금 보이더니 다시 부엌으로 나가고 순자 어머니는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방개가 정신없이 밥을 먹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조용히 방개에게 한 마디 건넨다.


"방개, 자네, 내 딸 순자하고 혼인할 마음 있나?"


방개가 콩자반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다가 말고 콩알들을 상바닥에 흘려버릴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순자랑 혼인을 해유?"

"그러게 말이여, 난 우리 순자 신랑감은 자네밖에 없는 것 같아서. 귀머거리 처녀를 누가 데려간단 말인가. 집구석에 아무것도 없지. 아비도 없고 에미는 이렇게 병들어 누워 있고, 철없는 동생들만 셋이나 줄줄이인데, 저걸 데려다가 누가 색시를 삼겠어.

그러니 자네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게나, 자네는 일도 잘하고 몸도 튼실하니 내가 마음이 놓여."


방개의 얼굴이 갑자기 홍당무가 된 듯이 검은 얼굴에 붉은 기운이 올랐다 내렸다 한다.

숨도 가슴에까지 찼는지 가빠서 좁은 방안에 방개의 큰 숨소리가 창호지를 흔들어 댈 정도다.


"지금 당장 혼인하자는 건 아니고, 자네가 데리고 다닌다는 엉가엄마인가 하는 여자만 잘 정리하고 오면 내가 받아 줄 생각이여. 그 여자는 미친 여자라며. 자네도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런 여자보다는 낳지.

그러니 우리 순자랑 살면서 우리 집에 논 쪼금 있는 거 가지고 농사짓고, 남의 집에서 일 좀 거들면 우리 식구 밥은 먹을 거 아닌가. 순자 동생들은 국민학교는 나왔으니까 조금만 더 크면 다 온양이나 천안에 공장에 지 외삼촌이 취직을 시켜주기로 했다네. 그러니 제네들은 걱정 안 해도 되고 우리 순자만 잘 데리고 설문 나는 걱정 없이 눈 감을 걸세."


방개는 순자 어머니의 느닷없는 청혼에 거의 혼비백산하는 심정이었다. 어찌 내가 순자하고 결혼을 한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지만, 방개가 생각하는 현실은 자기 같은 사람은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기에 이 곤란하고 황당한 상황을 어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 어떻게 이 병든 순자 어머니의 말을 잘 물리쳐야 하는지는 그도 방법이 없는지라 방개는 우선 밥을 꾸역꾸역 입에 몇 번 더 꾸겨 넣고는 허허실실 웃으며 숟가락을 내려놨다.


"왜 밥을 다 먹지. 숟가락을 내려놓나."

"아녀요, 아까 온양에서 국밥 사 먹고 와서 배도 부르고 오면서 호떡도 몇 개 먹었소."


순자의 어머니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방개가 지금 자기 말에 놀라고 허둥거리는 것을 눈치를 채고 이 혼인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실망의 빛이 역력하다.


"자네가 밥도 다 안 먹는 것을 보니 우리 순자한테 마음이 전혀 없나 보구먼. 나는 그래도 순자한테 잘해주길래 그동안 쭉 생각을 한것은디. 누가 우리 순자를 구해주나.... 흐흐흑."


순자 어머니의 느닷없는 흐느낌이 입에서 터져 나오자 방개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방을 뛰어나왔다.

방개는 순자 어머니를 위로한다거나 다음에 다시 얘기를 하자거나 그런 말도 할 줄 몰랐다.

다만, 병든 순자 어머니의 일방적인 결혼 제안이 자기로써는 놀라운 일일 뿐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서 어디 논둑에라도 가서 담배라도 한 대 피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무신을 급하게 신고 나오자 부엌에 있던 순자가 얼른 부엌문 앞에 서서 무어라고 손짓을 하며 방개를 불렀지만, 방개는 더 이상 순자를 쳐다보지 않고 닭이 황소 뒷발에 차인 것 마냥 놀라서 논둑 위로 뛰기 시작했다.

방개의 가슴은 벌렁거리고 얼굴은 술을 마신 것처럼 뜨근거렸다. 순자와 혼인해 달라는 청혼이 순자 어머니 입에서 나오다니 방개는 단 한 번도 생각도 못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해가 진 서쪽하늘에 방개의 시리고 아린 가슴이 단감색 노을로 아름다이 지고 방개는 청춘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떤 인생의 꿈도 희망도 없는 듯이 홀로 들판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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