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가엄마에게 일어난 일은 참으로 기적과 같았다. 바느질에 뛰어난 솜씨가 있는 것이 드러난 것도 기적이고, 그녀가 바느질을 하면서 정신이 또렷해진 것도 기적이고, 그리고 그녀의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본 온양장에 서울포목점집주인이 엉가엄마를 그 포목점에 바느질하는 점원으로 받아준 것이 기적 중에 제일 큰 기적이었다.
봄날 엉가엄마는 겨자빛 노란 한복을 한벌 입고 덕구네 집을 떠났다. 아직 엉가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자기와 엄마를 둘러싼 사람들이 온 마당을 가득 메운 것을 보고는 좋아라 소리만 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슴이 제일 아픈 사람은 덕구와 그의 아내였다. 한집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니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날마다 눈만 뜨면 엉가엄마를 걱정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이렇게 낳아서 취직까지 돼서 온양장터로 간다고 하니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무슨 이런 놀랄 일이 있나 싶기는 한데, 사람의 정신이 이렇게 몇 달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 무슨 홍두깨에 씌운 일만 같다.
아직은 모든 것이 다 온전치는 않아도 그래도 서울포목점에 주인은 엉가엄마 정도의 솜씨면 그 포목점에서 이불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하면 금세 실력도 늘고 정신도 더 또렷해질 거라고 했다.
서울포목점에 주인은 온양장터에서는 제일 큰 포목점을 하고 있었는데, 그 주인여자도 사연이 많아서 혼자 살고 있다며 우선은 엉가엄마가 방이 없으니 포목점의 바닥에서 밤에는 잠을 자도 되니까 그곳에서 생활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엉가는 학교를 다녀야 하니까 똘똘한 엉가를 온양에 전학도 시켜서 제대로 가르치라고 하니 엉가엄마가 예전 사람 같지 않게 엉가에 관한 부분을 잘 알아듣고는 엉가를 데리고 온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방개와 덕구는 엉가와 엉가엄마를 위해 축배를 들어도 시원치 않은 일이 생겼는데, 가슴 한쪽은 영 찬바람이 불듯이 그리도 서운할 수가 없었다.
엉가와 엉가엄마를 서울포목점에 데려다주고 덕구와 방개는 온양장터에서 대포를 한잔 나눴다.
안주는 순대 한 접시가 다였지만, 두 사람은 말없이 막걸리를 한잔씩 서로에게 따라주며 그동안 정이 들어버린 엉가와 엉가엄마 얘기를 나눴다.
덕구는 무엇보다도 방개가 그동안 얼마나 그 두모녀를 살리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에 해가 지도록 바가지 하나를 들고 미친 여자라 소리를 듣는 그녀를 데리고 산 넘고 물 넘어서 거지행세를 하면서 그 두모녀를 돌봤는지를 생각하니 방개가 한없이 고맙고 기특했다.
"방개 그동안 자네가 엉가와 엉가엄마를 살렸네. 고맙네 고마워. 사람 하나 살려서 저리 보기 좋게 내보냈으니 자네는 이제 평양감사도 부럽지 않을걸. 누가 미친 여자를 저리도 곱게 만들 수 있겠나. 자네처럼 아무 탐심도 없고 욕심도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엄동설한에도 저 두 모녀 먹이려고 자네가 하루에도 수십 집을 돌면서 누룽지 한 뎅이, 고구마 한 개, 술지게미 한 국자, 김치 한쪽 그런 거로 저 모녀를 살린 것이 아닌감. 하여튼 남은 살리고 자네는 또 빈손이지만, 고생했구먼, 방개."
덕구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눈물이 한소끔 솟아나는 것을 간신히 참는다.
방개는 뭐가 그리도 송구스러운지 고개를 자웃거리며 순대와 간을 소금에 찍어 먹다 말고는 그것이 아주 맛있는 거 마냥 입이 불룩하도록 먹다 말고는 또 눈물도 웃음도 아닌 헛헛한 웃음만 한번 짓고는 그 순대를 목이 터져라 목구멍에 집어넣고는 삼켰다.
방개의 눈에 몇 년 전 엉가를 업은 엉가엄마를 만났던 여름의 그 원두막이 눈앞에 떠올랐다.
박권사가 만들어준 바가지 한 개만 들고 서해안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던 여름에 원두막에 비를 피하러 갔다가 만난 웬 미친 여자와 그 옆에 자고 있던 아가.
방개가 만난 엉가와 엉가엄마는 그렇게 한여름 소나기를 피하던 원두막에서 시작되었고, 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엉가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 두 모녀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거지가 되어서 살았던가.
"엉가엄마랑 떠돌아다닌 세월을 말하려면 몇 달은 얘기를 해야지유, 그래도 제일 큰 상은 덕구 자네가 받어야지. 천당 가서 말일세."
"그것이 무신 소리여, 천당 가서 왜 내가 제일 큰 상을 받는단 말이여."
"그거야 자네가 나랑 엉가랑 엉가엄마 세 사람을 사랑채까지 지어서 살게 해 주었니 말이지. 이 세상에 떠돌이에 미친 여자에 그 아기까지 누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집에 받아 준데. 그런 일한 사람은 이 세상에 자네 덕구 밖에 없을 걸세. 나야 들락날락하지만, 자네는 더구나 조카까지 다섯이라 책임을 지구 있으니..... 천당에 가면 무지무지 큰상이 기다릴 거야."
덕구는 방개의 이상한 천국얘기에 그저 헛웃음도 나오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해서 방개에게 막걸리를 넘치도록 부어주었다.
두 사람은 기분 좋은 축배를 밤새 들이붓고는 날이 새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방개는 오랜만에 엉가와 엉가엄마가 살던 덕구네 사랑채에 누워서 샛별이 아스라이 지는 하늘가를 보니
어디선가 유성이 빛을 내며 마을 건너편 산언덕으로 떨어졌다.
방개는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엉가와 엉가엄마가 무진장 온양장에서 출세할 거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