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가 무지 이뻐져서 미스코리아대회를 나간다고.

by 권길주

방개는 도고역 광장에서 거지들과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안주로는 어느 집에서 얻어 왔는지 술지게미와 열무김치가 몇 쪼가리 있을 뿐이고 막걸리가 두어돼 방개의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담어져 있었다.

그런데 술지게미를 먹어서 인지 거지들 서너 명도 벌써 취해 있었고, 방개도 얼굴이 불그레 했다.

방개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했는데, 조금만 먹어도 항상 얼굴은 취기가 돈 사람처럼 붉어졌는데, 방개가 덕구를 보자 반가움에 이를 활짝 드러내고 헤벌 쩍 웃는 것이었다.

방개의 웃음은 늘 잇몸이 훤히 보여도 그 검게 그을린 얼굴에 고춧가루가 시뻘거니 묻어 있어도 어디서 그런 웃음이 나오는지 세상을 살면서 이런저런 시름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그에 웃음 한방에 근심이 날아가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얼굴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구 덕구 자네가 어쩐 일이여 이 도고역전을 밤중에 납시고 말이여."


방개는 한걸음에 달려와 덕구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든다.

술도 취해서 그런지 어깨를 감싸며 투덕투덕 덕구의 어깨를 끌어안고 두드리니 덕구는 한 시간 이상을 걸어오면서 조카 미자 때문에 이래 저래 가슴이 답답했던 것이 어디론가 휙 날아간 것만 같다.


"이 사람아 여기서 무엇 하남, 상거지들하고 또 친구 삼었구먼."

"상거지문 어때유, 저들이나 나나 다 일반인디유."

"아참 자네는 그래도 영어라도 씨부렁거리는 사람인디 이런 상거지들하고 맨날 술이나 먹고 있으면 엉가가 실망하지. 고것이 방개아저씨 어디 갔냐고 자꾸 물어보던디 요새."

"엉가가유, 그럼 오늘밤은 집에 가봐야지요, 나두 고 엉가가 보고 싶어요. 핵교는 잘 가지유."


방개가 바가지에서 술을 한잔 따라서 덕구에게 준다.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거지들이 덕구의 차림을 보고는 자기들과는 다른 처지에 사람인 것을 알고는 약간은 비켜나며 방개에게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덕구도 방개랑 거지들이 있는 도고역 광장 한 귀퉁이서 막걸리를 한잔 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고 있는 조카들에 대한 큰 짐과 미자에게 대한 생각들을 미뤄놓고 거지들에게 오늘은 먹을 거라도 한 그릇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역전앞에 식당에서 돼지고기 찌개를 한 그릇 사다 거지들에게 먹였다.

누가 먹었는지도 모르게 커다란 찌개 한 그릇이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 사라지고 나서 막걸리에 취한 거지들이

갑자기 덕구에게 달려들더니 덕구의 호주머니를 뒤지는 것이 아닌가.

덕구는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순식간에 서너 명의 거지 떼들이 달려들어 덕구를 엎어놓고 주머니를 뒤져내니 덕구는 방개에게 좀 주려고 가져온 돈을 깡그리 그 거지들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이봐유, 왜 이런데유, 내 친구한테 이러문 안되는데."


방개가 거지들을 말려봤지만 돈을 거머쥔 거지 한 명이 무조건 도고역전으로 뛰어가는 게 아닌가.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멀리서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렸다.

빠앙 하는 기적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거지 서너 명은 무조건 역전 플랫폼으로 뛰다시피 달리니 역무원이 놀라서 야전등과 호각을 불면서 뛰어나왔다.

검은색 화물열차가 석탄을 가득 싣고 도고역을 지나가려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 덕구의 눈과 방개의 눈에 띄었다. 화물열차는 밤의 공룡과도 같았다.

덕구는 그때 조카 미자에게 미인대회에 나가게 해 주고 올걸 공연히 집을 나서서 무슨 사달이 나는 건가 가슴이 졸아들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방개도 멍하니 거지들이 화물열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을 향해 달려가는 걸 보고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덕구는 그때 조카 미자가 미인대회에서 뽑혀서 이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가난한 이들의 저 극악스러움을 무어라고 할까 싶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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