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시에 작업실에 올라와서 눈이 오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원 마당에 까지 두 마리가 부지런히 잔디를 쪼아 먹고 있다.
하얀 눈밭을 부리로 뒤지며 혹시나 먹을 것이 있나 해서 이리 뒤적대고 저리 뒤적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김치 냉장고에 있던 묵은쌀을 두 공기 퍼다가 정원에 뿌려주었다.
가끔씩 나는 과일도 오래돼서 먹기가 힘든 것이나 사과 껍질 같은 것을 잘 모아 두었다가
새들에게 먹이를 준다.
얼마 전에는 오래 묵었던 견과류를 한 봉지나 굴러다니는 것이 있어서 주었더니 어느 사이 새들이 와서
다 먹어 버리고 한 개도 땅에 없는 게 아닌가.
그런데 내가 새들이 먹을 거라고 착각하고 정원의 잔디에 던져두어도 새들이 잘 먹지 않는 것이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바로 오렌지와 껍질을 까지 않은 밤이었다.
오렌지나 밤은 고양이도 먹지를 않는 것 같다.
고양이 때문에는 가끔씩 참치나 생선, 고기 남은 것을 주기도 하는데,
오랫동안 오렌지 하나와 껍질이 단단한 밤은 그대로 잔디 위에 널브러져 있다.
하지만 먹다 남은 밥과 계란, 치킨 껍질들은 새들이나 고양이가 잘 먹는 편이다.
오늘도 나는 까치들이 검고 흰 날갯짓을 하면서 먹을 것을 찾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일 년이란 짧다면 짧은 시간들을 어떻게 시간을 짜고 조율을 하여 내가 원하는 글을 쓰고
그것이 작품이 되어서 책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인데,
글은 나의 생각과 사고를 넘어서 어느 바다에나 닿아 있으려는지........
묵을 쌀로 밥을 하면 왠지 냄새도 나고 해서 잘 먹지를 않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귀한 쌀 한 톨도
그냥 버릴 수는 없어서 김치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이 묵은쌀이 이렇게 추운 날 특히 눈이 와서
산속이나 땅속에서 먹을거리를 쉽게 찾지 못하는 새들에게 하루의 먹거리가 되어 준다면
얼마나 감사한가를 생각했다.
묵은쌀처럼 쉽게 버리지 못하던 내 안의 어떤 글감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추운 날 참새의 먹이처럼 그들의 정신이나 감정에 먹이가 되어주면 좋겠다.
외로운 이에게 쓸쓸한 이에게
깨알 같은 쌀알 같은 작은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자음 모음이 하나하나 모여서.....
그들이 결코 가서 닿을 수 없는 항구에 도달할 수 있는 감정들이 되어 준다면
그래서 그것이 안식이 되고, 평안이 되어 준다면
작가인 나도 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내가 아는 어떤 후배는 아버지가 심한 알코올중독이었다.
일을 하고 집에 가보면 아버지는 술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술을 마시다가
집에 불을 낸 적도 있고, 베란다와 방안에 오줌이나 똥을 싸놓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후배는 정말 목숨을 걸고 일을 했었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를 돌보고,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 학교 강의실에서 밤을 새우고 공부를 하다 보니
창밖이 훤히 밝아 오더란다.
그런데 난 그때 그 어린 후배가 왜 그토록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 이해를 못 했다.
나는 그보다는 풍요롭기도 했고, 우리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훨씬 건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눈이 오는 창밖을 보면서 나는 지금 생각한다.
세월을 건너오다 보니 그 후배가 사는 곳도 전화번호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내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나보다 훨씬 힘들고 지친 사람들은 늘 주변에 있었고 지금도 많다.
그러나 '나'라고 하는 이기적이고 냉철한 사람은 남보다는 언제나 나를 더 섬기고 중히 여기며 살았다.
가끔씩 너무 그립고 아픈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재능도 뛰어나고 때를 따라 착하기도 너무 착했고 순수하고 성실하기만 해서 남의 것은 하나도 빼앗지 않고 오직 자기것만 나눠주던 사람들이.........
그러나 내게도 너무 나쁜 인간들도 주변에 가끔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기꾼 같은 인간, 도둑놈, 야비한 인간, 다 경험을 해봤다.
그런데 착한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고 겸손했고, 지극히 정중한 사람들이라면
나쁜 사람은 한마디로 거짓말쟁이에 야비하거나 속임수가 강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만난 사람의 부류 중에는 학생들이 제일 예쁘고 착하고 솔직해서 난 학생들을
제일 좋아한다.
선생님이란 직업은 아니었지만, 세종에서 만난 학생들은 내게는 참 많은 위로가 되기도 하였고,
나의 상처를 어딘지 모르게 슬며시 와서 위로해 주고 가는 기쁨조들이었다.
오늘도 아침에 내 제자는 자기 갈길을 전화로 한 시간 이상 상담을 해왔다.
이제는 친구처럼 제자들하고 통화를 하니 세대차이로 보면 거의 35년이 넘는데도
우리는 글친구 겸 스승과 제자다.
언제 제대로 된 작가가 돼서 그 제자들에게 뿌듯하게 책도 좀 내밀어 보나 싶다.
그리고 치열하게 살던 후배도 어디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한 번쯤 찾아보고 싶다.
아직은 월세로 얻은 작업실에서 글을 쓰지만, 아직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남은 인생의 한 페이지에서 눈 오는 날 까치에게 묵은쌀이라도 한 공기 퍼서 정원 마당에
뿌려줄 수 있을 만큼은 내게......... 오늘 일용할 양식, 먹을게 남아 있으니
이로써 감사하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시 한 편으로 추운 날의 배고픔과 안식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잘랄루딘 루미 -
하얀 접시꽃과 작은 핑크빛 장미가 피어있는 봄의 정원에서 나의 '방개아저씨' 출판기념회를
조촐하게 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월세가 아닌 작업실에서 나도 작가답게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나의 제자들이 마음대로 와서 한달이던 두달이던 먹고 자고 쉬면서 글을 쓰면 좋겠다.
아! 꿈을 꾸다보니 어느 새 엄마에게 오시는 요양사님이 퇴근한 시간이다.
오늘도 내게 허락한 시간은 저녁 4시 30분이다.
날씨가 추우니 작업실에서 5시에 내려가면 분명 엄마가 약간 삐지실게 뻔하다.
이토록 추운 날에도 외출한 우리 아버지는 무슨 기운이실까 모르겠다.
경로당에 화투는 오늘도 내 아버지를 외출하게 만드는 무슨 묘약인지 난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