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에게 솥단지를 가져다준 여자

by 권길주

서천의 비인 바닷가에는 먹거리가 많았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갯벌에 나가 통발로 망둥어도 잡고 썰물이 되면 시커먼 갯벌에 발을 담그고 조개와 맛살을 캐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바닷바람에 말린 생선 박대나 여러 해산물이 많으니 방개도 바닷가에서 조그만 움직이면 먹을 거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문제는 방개가 한 번도 음식다운 음식을 해 먹어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솥단지나 그릇이 하나도 없으니 그저 아궁이에 불을 때서 겨우 생선이나 조개를 구워 먹는 정도였는데, 교회에서 방귀를 터트리면서 방개가 인근에서 아주 우스운 사람으로 소문이 나고 하다 보니 방개의 형편을 교인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목사의 지시로 교인들이 쌀과 보리, 온갖 양념과 반찬들을 들고 왔다. 그리고 심지어 두툼한 이불과 옷이 왔고, 밥그릇 국그릇까지 왔으며 방개의 몸을 진단하러 온 의사까지 대동되었다.

멀리서 왕진을 온 의사인데 목사가 특별히 부탁해서 왔다며 의사는 방개의 몸을 이리저리 진찰을 했다.


" 그동안 제 때에 밥을 제대로 못 드신 것 같습니다. 위장이 많이 안 좋아요.

위에 구멍이 뚫린 것 같습니다. 위천공이라고 하는데, 항생제 약을 드셔야 합니다.


토할 때 피도 나고 하시죠. 아래로 피가 쏟아지는 혈변도 있는데, 이 두 가지가 다 있으시면

심각하시니까 병원에 좀 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더 심각하면 복막염이 올 수도 있고, 위암도 있을 수 있으니 우선 음식을 부드러운 것으로

드시면서 병원에서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약국에서 약을 꼭 사서 드려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복막염이 갑자기 오면 위험하시니까 배가 갑자기 너무 아프시면 빨리 병원을 오셔야 합니다.

복막염은 쇼크로 사망하기 쉽습니다."


방개는 교회의 도움으로 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다행히 자세히 검사를 해보니 약으로 치료할 수준이라서 방개는 한 달에 두 번씩 군산에 있는 큰 병원에서 약을 타다 먹기로 했다. 방개로써는 교회에서 자신이 비로소 사람다운 대접을 후하게 받는다는 것에 고마울 뿐이었다.

그리고 방개가 처음 교회에 간 날 방귀를 터트리면서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는 했지만, 방개가 워낙은 교인들에게도 인사성 있게 구니 떠돌이 방개를 싫어하는 교인들은 점점 줄어들어갔다.


군산의 큰 병원에서 지어온 약을 먹어서 인지 방개의 몸은 점점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던 어느 날, 방개가 하릴없이 집 근처 바닷가를 도는데, 멀리서 몸매를 다 드러낸 약간은 야한 옷차림을 한 여자가 웬 까만 솥단지를 이고 방개가 살고 있는 허름한 집으로 오는 게 아닌가.


'저 여자가 누구지 교회에서는 못 본 동네 여자 같은데.'


방개는 혼자 중얼거리며 그 여자가 오는 쪽으로 마주 바라보며 슬그머니 걸어가 봤다.

봄바람이 부는 바닷가에는 선홍색 동백꽃이 어느 사이 망연자실한 처녀처럼 길바닥에 붉은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방개는 동백꽃을 보자 멀리 두고 온 순자 생각이 간절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동백꽃 속에 숨어서 겨우내 자신이 마음을 달랬나 싶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그리움이 뭉클뭉클 떨어진 동백꽃잎에 찍여 있는 것만 같다.


잠깐 순자를 생각하는 사이 검은 솥단지를 인 여자가 하늘거리는 긴 월남치마를 계절보다 일찍 입고서 방개 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왠지 방개는 그 여자를 보자 월남치마를 입고 머슴과 장터에서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가 생각이 나면서 처음 본 여자에게 공연한 부화가 치밀었다.


더구나 여자는 입술에 동백꽃보다 더 빨간 입술꽃(립스틱)을 바른 것이 아닌가.


'아이고, 망측해라. 요새 세상에 어떻게 된 여자가 저리도 화장을 요란하게 하고

이런 바닷가 모서리에 사는가.'


방개는 여자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한데 더 궁금한 건 그 빨간 입술꽃을 바르고 하늘거리는 월남치마를 입은 여자의 머리에 인 검정 솥단지였다.


"아니, 빤히 사람을 쳐다만 보지 마시고 이 솥단지 좀 받아줘야지요."


여자의 목소리가 어디서 막걸리는 서너 사발은 마시다 말고 온 여자처럼 쉬어 있었다. 나이에 비해 목소리가

중늙은이처럼 늙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직 나이는 사십이 조금 넘어 보이는데 왜 저리 목소리가 할머니 같담.'


방개가 정신없이 허둥대며 여자가 들고 온 검정 솥단지를 그 여자의 머리에서 받아냈다.

무쇠솥단지라서 무게가 갓 태어난 아기만큼은 되는 무게로 느껴져 그걸 이고 온 여자가 힘도 들었을 법했다.


" 저 방개씨 맞아요, 이 집에 솥단지도 제대로 없다고 해서 내가 서천 장에서 하나 장만해서

가져왔어요. 아프다 문서유. 이거로 밥이나 거르지 말고 해 잡수라고요."


여자는 그 좋은 물건을 가지고 와서는 왜 이리 이 처음 본 남정네를 아래위로 훑어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순하고 착한 순자 같은 여자는 전혀 아니었고, 이제는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엉가엄마와도 사뭇 다르고 집안 살림 잘하는 덕구 아내와도 영 다른 요사스러워 보이는 여자였다.


방개는 반갑지 않은 듯이 여자를 외면하면서 솥단지를 사이에 두고 가져온 물건이나 도로 가져가라는 듯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멀리 수평선 너머를 내다봤다.

그때 바람이 나서 나간 어머니의 환영 같은 것이 다시 떠오르며 이상한 이끌림으로 여자가 보는 앞에서 솥단지를 안고 방개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아랫동네서 오셨어요, 여기 잠깐 앉으셔서 쉬었다 가셔요. 고맙구먼요.

나 같은 사람 한티 이렇게 맴을 써주고요."


여자도 약간 내외를 하듯이 바닷바람에 쓸리고 닳아서 허름한 마루 한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방개는 여자에게 물을 한 잔 가져다주었다. 방개가 처음으로 자기 집에 온 사람에게 손님 대접을 해보는 것이었다.


여자는 그런데 물을 마시지 않고 먼바다의 수평선을 한없이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이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마루에 앉아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당신이 곧 죽을 수도 있는 병에 걸렸다고 해서 내가 그냥 마음이 쓰여서 이 솥단지 하나 사가지고 여기 와본 거유. 난 과부유. 신랑이 셋이나 죽었구먼요."


뜻밖의 처량하고도 딱한 내막을 말하는 이 여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젊은 여자가 남편이 셋이나 죽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내가 저기 바닷가 모퉁이 깊은 곳에서 빠져 죽을까 하고 밤에 밤바다를 돌아다녔는데, 그때 이상하게 이 집에 불이 켜져 있는데, 멀리 감치서 이 집에 불빛을 보는데, 내가 죽지 말고 살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냥 막 들더라고요. 뭣 때문인지도 물러요. 그냥 살구 싶었어요. 당신이 사는 집에 불빛이 때문이었다는 것 밖에는 물러요. 그날 밤에 "


방개는 이 무쇠검정솥단지를 이고 입술은 빨갛게 칠한 여자가 남편은 셋이나 죽은 과부라는 것도 바다에 빠져 죽을라고 하다가 자기 집에 불빛을 보고 살았다는 얘기도....... 도통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 순간 방개는 죽은 엄마가 다시 살아서 자기에게 찾아와 무슨 넋두리라도 하는 듯이 여자가 그리도 불쌍하고 측은할 수가 없었다.


"그러서요?"


방개는 무슨 말을 해야 몰라서 너무 앞뒤가 안 맞는 질문을 툭하고 한마디 한 것이었다. 그러자 여자가 갑자기 그 허름한 마루 한 끝에 앉아서 마루 바닥을 치면서 엉엉 큰 소리로 끝도 없이 울어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혼자 사는 남정네 집에 와서 대낮에 이게 무슨 엿장수가 엿가락 장단 두드리는 소리람.

아니, 죽은 신랑 아구땜을 왜 여기 와서 하는가.'


방개는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중얼대며 과부가 대성통곡을 하는 마루 끝을 왔다 갔다 금방 들불에서 타다 뛰어나온 메뚜기 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사람이 살다 난감해도 이렇게 난감하고 뭔 곤란이 이렇게 찾아온담. 워쩌 자고.

내가 물에 빠진 여자를 건져왔어도 남에 집에서 이러지는 않겠구먼.

남자를 셋이나 잡아 묵은 여자문 팔자가 월마나 드세겠어. 그러니 저 울음보도 보통 큰 게 아닐 텐데

왜 어째서 아픈 나 한티 와서 이 오두막에서 과부가 이런 낭설을 퍼트리냐고.'


해풍이 다시 봄바람을 건들며 지날 때까지 여자는 그렇게 통곡을 쏟아냈고, 방개는 아무리 곱씹어봐도

자기 잘못이 없는 남의 남편 죽은 사정을 어찌 들어볼 요량도 없으니 슬그머니 그 오두막 빈집을 나와버렸다.


저녁 해가 여자의 새빨간 입술에서 터져 나온 핏물처럼 붉게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혼자 소나무 사이 길을 걷는 방개의 발끝에는 동백꽃이 떨어져 이리저리 서로에게 몸을 기댄 듯 아무렇게나 포개진 채로 길바닥에 그 여자의 눈물처럼 서럽게 깔려 있었다.


검정 무쇠솥단지를 들고 온 그 여자가 언제 자기 집을 나가려는지 알 수도 없고, 제대로 여자와 말을 해본 적도 없는 그가 처음 본 여자를 달래줄 줄도 모르니 방개는 밤이 늦도록 바닷가를 맴돌며 여자의 쉰 목소리와 그 서러운 사연을 꼽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천 비인의 캄캄한 밤바다는 점점 어둠을 먹고 휘황찬란한 별무리를 쏟아내며 다시 환하게 바다 위를 비추는 것이 아닌가. 달빛이 은빛으로 출렁거리는 바다에 방개는 몸을 담그며 답답해서 터질 것만 같은 마음을 달래려 밤 수영을 시작했다.

자신이 고래라도 된 듯이 온몸이 가벼이 춤을 추며 방개는 발차기를 하였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모래사장으로 나와서 걷기도 하며 아직은 쌀쌀한 봄바다에서 달빛 별빛에 목욕을 하듯이 헤엄을 치며 얼마를 그 밤바다를 돌아다녔다.


이렇게 시간이 가다 보면 새빨간 입술꽃을 바르고 온 그 과부가 돌아가고 없거나는 방개의 생각이 그 밤에는 맞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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