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가 끝나고 며칠 후, 과부가 방개집엘 왔다. 그녀의 손에는 이것저것 먹거리가 많이 들려있었다. 해풍에 말린 박대도 있었고, 조기도 있고, 맛조개와 모시조개도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부엌에 들어가서 그동안 해왔듯이 마음껏 한상을 차려서 방개과 기환 앞에 밥상을 내밀이었다. 세 사람은 마루에 앉아서 멀리 바다를 보면서 점심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이 식사가 세 사람이 먹는 마지막 식사인 것도 서로 다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밥을 먹으면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과부의 음식 솜씨는 그날도 다른 날에 비해서 더 한껏 발휘돼서 인지 반찬을 바닥까지 다들 긁어먹었다.
기환이 세 사람 앞에 설탕과 프림이 들어 있는 커피를 끓여서 정성껏 찻잔을 내줬다. 기환이 오면서 다방이나 커피숍에서나 마신다는 커피를 가끔씩 집에서 마시게 된 것은 순전히 기환이 어머니 덕분이었다. 피아니스트시라는 기환의 어머니는 아들이 글을 쓸 때 마시라고 커피를 종종 보내셨던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이나 귀한 손님이 올 때면 기환이 커피를 내왔는데, 오늘 과부에게 기환이 커피를 낸 것이었다.
과부가 먼저 눈가에 눈물을 찍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방개씨 날 살려줘서 고마워요. 방개씨가 이동네로 들어와서 사는 바람에 내가 바다에 빠져 죽지 않고 살은거유."
과부는 찻잔을 들다 말고 일어나서 허리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방개는 처음으로 누가 자기에게 그렇게 깊은 감사 인사하는 걸 받아봤기에 적잖이 당황을 했다. 그리고 방개는 생각했다. 저 여자가 아니었더라면 나도 내가 아픈 몸으로 어떻게 밥을 제대로 챙겨 먹었겠나, 그걸 생각하니 절은 자기가 받을 게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것 같아서 방개도 얼른 일어나서 과부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아녀유, 지를 살려준 건 젊은 과수댁이지유, 지는 밥도 잘 못하는데, 지한테 월매나 맛있는거 많이 해줬깐디유, 지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젤루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건 거기 덕분이 여유, 그래서 지두 이제는 배두 안아프구 위천공인가 하는 병두 다 낳은걸유 뭐."
기환도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는 감사의 인사로 돈봉투를 두둑한 걸 가지고 나왔다.
"아주머니 저도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바닷가에 죽어 있는 저를 발견하신 분은 아주 머니시잖아요, 제가 아줌마 덕분에 목숨이 살아났는데, 인사가 좀 너무 없었죠. 때가 되면 뭔가 도움을 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급하게 마을을 떠나신다고 하시니 너무 섭섭하네요. 아무튼 하나님이 길을 여신 것이라고 하니 새 삶을 살아가실 수 있도록 저희도 여기서 기도하겠습니다."
기환은 젊은 과부가 어딜 가서든 일년 이상은 쓸 수 있는 돈을 내밀었다.
"이 돈은 특별한 돈입니다. 제가 신춘문예 당선하고 여기 저기 신문사나 문예지에서 원고청탁이 와서 원고료를 모아놨던 것인데, 그걸 아줌마에게 드리고 싶더라구요. 그리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시거나 돈이 필요하시면 저한테 편지를 보내세요. 여기 주소는 아시니까요."
과부가 깜짝 놀라면서 눈물을 훔쳤다. 한 번도 어디서 이런 큰돈을 받아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이런 댓가를 지불받은 적이 없어서 당황스럽기도 했기에 그녀는 눈물이 먼저 앞을 가렸던 것이다. 기환이 얼른 과부의 윗도리에 돈 봉투를 끼워 넣어줬다. 과부는 사람의 호의를 제대로 받고 살아온 적이 없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여자로 태어나서 부모에게나 남편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서 인지 그녀는 기환에게 한없는 고마움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잘은 몰랐다. 다만 부흥강사님 말씀대로 순종하기도 한 것이다.
먼저는 두 번째 남편을 찾아가서 자기가 아들을 죽인 죄를 백배 사죄하고 그 죄의 대가가 어떻든지 간에 그는 그 대가를 남편에게 처분을 받고 나면 그다음 길은 그다음에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부흥강사 말씀대로라면
남편이 자기의 죄를 용서할 거라고 했으니 그 말을 믿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부흥회가 있던 날부터 이리도 마음이 편한 걸 보면 하나님이 자기 죄를 확실히 용서하셨고, 남편도 자기 죄를 용서해 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과부는 방개와 기환이 있는 방개네 집을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느끼며 그 집 모퉁이를 돌아서 나왔다.
방개와 기환이 그 모퉁이에 서서 과부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한낮의 봄 바다는 은빛 물결을 출렁이며 과부가 가는 새 길을 밀물과 썰물로 열어주었다. 과부는 의붓아들이지만 그 어린 자식을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죽음에 몰아넣고 두 번째 남편을 도망쳐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던가, 그러다가 또 스치듯 만난 세 번째 남편마저 바다에 빠져 죽자, 자신처럼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자는 살 이유가 없다고 밤이면 밤마다 바다에 와서 외쳤던가. 그런데 그 바다에서 자신을 구해준 방개네 집의 오두막 불빛이 자기를 살린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결국은 방개라는 떠돌이 남자가 죽어가는 걸 아신 하나님이 자기의 음식 솜씨를 그에게 조금이라도 쓰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날 자기를 이 바다에서 살리셨고, 고시에 떨어지고 죽으려고 이 바다에 온 기환이란 청년을 살려서 세 사람에게 각자에게 맞는 행복과 기쁨과 신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그분은 자기 같은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인생의 계획을 예정하신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두 번째 남편을 만나러 길을 떠났다.
과부에게서는 석 달이 지나서야 편지가 한통 왔다. 여름이 한창이라서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수영도 하고 가끔씩 서울에서나 도회지에서 놀러 오는 사람들이 바닷가에 텐트를 치기도 했다.
방개씨, 기환청년 보셔요.
지는 여기 소록도에 와 있어유.
여기는 나환자들만 모여서 사는 곳이여유.
지는 두번째 남편에게 크게 용서를 받았어유.
그래서 기환이 청년이 준 돈으로 남편에게 병원비를 다 내주고 왔어유.
남편이 많이 아펐는디 병원비도 없어서 병원두 못가봤다구 해서
지가 병원에 데려다 놓구 병원비 다 내주고 왔어유.
의사가 다시 살어날 거니까 걱정 말라구 하시더라구유.
남편도 돈이 없어서 죽을 줄 알았는디 지가 병원비를 내주고 했더니
자기를 살려줬다구 정말 고맙다구 인사를 했어유.
그리고 자기 아들은 자기가 돌보지를 않아서 하늘이 데려간거라구 생각한다구
나보고 그만 울구 이제는 다 털어버리고 좋은디 가서 편히 살라구 했어유.
그래서 지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소록도 섬에 왔어유.
여기서 문둥병 걸린 사람들 밥도 해주구 몸도 씻기구 속죄하구 살려구유.
그리구 지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 되기루 했어유.
이제부터 남은 인생은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살기루 했지유.
이 모든 덕은 다 방개씨와 기환이 청년 그리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구먼유.
참 여기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하지만
막상 여길 와보니 여기가 천국이구먼유.
여기는 욕 심도 없고. 잘 살고자 하는 욕망도 없어요.
지는 알았구먼유 지가 얼마나 욕심에 가득차서
세상의 것을 탐하고 살았는지를유.
가끔씩 편지 한번 드릴께유. 두분 다 건강하셔유.
그동안 고맙구 또 고마웠어유.
과부에게서 온 편지를 다 읽고 나자 방개는 너무도 놀랬다. 소록도라니 아니 나환자들이 산다는 곳에를 젊은 과부가 들어갔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놀래버렸다.
"아니, 거기 들어가서 밥 하다가 나병 옮으면 어쩐데유."
방개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기환은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대답을 했다.
"괜찮을거예요. 지금은 그분들도 다 나라에서 약도 잘 먹이고 주사도 맞히고 하니까 크게 옮기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두 참 대단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신 분이신데요. 와, 나도 그런 은혜 좀 한번 받아 보고 싶네요. 사실 지금 저도 그런 특별한 은혜로 여기서 방개아저씨랑 살고 있는 건 맞지만요. 하하하"
방개와 기환이 청년은 젊은 과부가 소록도에 가서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는 편지에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 그 과부의 사연은 다 몰랐기에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크게 이끌었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 편지에 감흥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멀리서 한 남자가 트럭에 짐을 싣고 방개네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남자는 서울에서 짐을 싸가지고 고향에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