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
방개가 서천 비인 앞바다에서 산지도 3년이 지났다. 그의 몸은 이제 이십 대의 건강한 몸은 아니지만, 이제는 나이가 삼십을 바라보며 어느덧 풍채 좋은 젊은 남자 같이 건강을 회복했다. 젊음은 다 갔지만, 그에게는 아직은 살아갈 어떤 힘이 남아 있었고, 노총각이지만 먼 미래를 바랄 볼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의 때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환도 이제는 삼십을 바라보며 작가로서 문단에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환의 애인으로 성숙해진 향숙이도 이제는 스무 살을 넘긴 처녀로 백도처럼 뽀얀 살결을 지닌 채 어찌나 이쁜지 그녀가 집안에 들어와 있으면 방개도 덩달아서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두 사람은 내년 봄에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교회 교육관에서 기환이가 하는 야학이 성공을 해서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서울에 대학도 몇 명 가다 보니 생각지 않게 기환은 군산에 사립고등학교를 세우기로 했다.
학교를 세우는 모든 비용이 나온 것은 기환의 아버지가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의 유산이 외아들인 기환에게 고스란히 상속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환은 아버지가 끝까지 고시패스를 원했고, 자기에게 상속하지 않겠다던 큰 유산을 한 번도 좋은 곳에 써보지도 못하고 고대로 남겨두고 떠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기환은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자신에게는 기대에 어긋난 자식으로 서로 맞지 않는 평행선의 길을 걷게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가르친 후학들이 대한민국에서는 내노라는 검사, 판사, 변호사들로 법조계를 뒤흔들만한 인재들이 나왔고, 사회 각 분야에서 유능한 인재로 살아가는 것이 아버지로서는 무척이나 흡족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기환은 아버지의 유산을 전부 털어서 군산에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세우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지 않게 학교의 이사장으로 소설가로 살기로 한 것이다.
기환이 결혼 준비와 학교 세우는 일로 무척이나 바빠지면서 군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검소한 생활을 즐기는 기환은 학교를 명문고로 세우는 데는 최고 좋은 건축자재로 학교 건물에 벽돌 하나까지 최고의 것을 썼지만 자신의 집은 조그만 양옥집을 하나 장만 했다. 기환이 그동안 읽었던 책과 사모았던 책을 전부 방개에게 고스란히 주고 별채를 떠난 날 방개는 밤새도록 눈물 멈출 수가 없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한국전쟁의 후유증을 앓는 소년병이셨잖아요. 전쟁이 겪는 고통을 저는 겪어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아저씨와 살면서 참 많은 것을 알고 깨닫게 되었어요.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것과 전쟁의 후유증은 인간의 삶을 너무 황폐하게 하고 수많은 생명이 죽었어도 그 가치조차 인정받기가 너무 어렵다는 참극을 깨달은 거지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한국전쟁 소년병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저씨잖아요. 이 소설이 긴 장편으로 이어지면 1. 2. 3 부로 한 세 권쯤 이어질 것 같아요. 제 소설은 방개 아저씨가 주인공이시잖아요.
소년병에서 떠돌이로 떠돌이에서 작가로 다시 태어나서 한국전쟁의 참상 속에서 살아난 한 소년병이 끝까지 대한민국의 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써보고 싶어요. "
방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자기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자기가 작가가 된다는 말에 깜짝 놀란다.
"뭐, 내가 작가가 된다고?"
기환은 막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으며 방개 아저씨가 혹시 현실과 소설을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눈치를 봤다.
"네, 아저씨가 작가가 되시는 소설이에요. 하하하 아저씨도 혹시 글을 써보시면 어떨까요. 제가 틈틈이 와서 글을 봐줄 테니까요. 아저씨가 아저씨의 얘기를 진짜로 써보시는 거예요. 제가 쓰는 소설 말고요. 일기처럼 쓰시면 되잖아요. 중학교도 다니셨으니 일기는 쓰실 줄 알잖아요. 이거 진심이에요. 아저씨도 그동안 책도 많이 읽고 했으니 글도 잘 쓸 수 있어요. 제가 여기 남겨 놓고 가는 책만 해도 찬 천권 가까이 되니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책들에 내용이 아저씨가 살아가는 데는 큰 재산이 될 거예요. 제가 없다고 남의 집에 품팔이로 생계를 살지 마시고 공부를 좀 더 하시면 제가 학교 다 지으면 서무실에서 하실 일 있으신가 볼게요. 정 실력이 안 되시면 학교에 수위를 하셔도 좋고요. 그리고 취미로는 글을 써보세요. "
방개는 갑가지 자기 인생에서 한 번도 꿈에도 생각지 않은 글을 쓰는 일이나 공부를 해서 학교에 서무실이나 수위를 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너무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돌아댕겨야혀, 그런디서 갑갑해서 일 뭇혀, 여기서 이렇게 기환이 청년하고 삼년이 넘도록 산것만 해두 기적이지, 내 몸뗑이가 아프니께 그동안 못돌아 댕긴거구, 청년이 여기서 글쓰고 나랑 살아주니께 내가 붙잡혀서 산거지 난 갑갑혀서 어디 한군데서 못살어유."
방개가 손사래를 치며 겁을 낸다. 그 일이 금방이라도 일어나면 야반도주라도 할 모양인 사람 같다. 기환은 방개에 손을 잡으며 그에 마음이 아직은 전쟁의 상흔에서 다 벗어나진 못했구나를 실감했다.
"그런디 말여, 내가 일기는 쓸 수가 있을 거 같으네, 일기라문 내가 국민핵교 다닐때 부터 쫌 썼지. 학교 숙제로 말이여. 그리고 이 많은 책을 다 두고 가면 자네는 무슨 책을 읽고 글을 더 쓰남, 난 저 많은 책은 다 필요 없는디. 그동안 읽었던거 다시 읽어도 되니까 한 열권만 놓고 가게나. 나머지는 자네 글공부에 쓰고, 책도 무지 비싼디. 저거 다 갔다가 학교 세우문 도서관에 둬야지. 아니면 자네 서재에 놓던가."
방개는 기환이 천권이 넘는 비싼 책들을 자기에게 주는 가는 이유가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아저씨, 제가 아저씨한테 이 집은 사드렸지만, 이건 돈이 얼마 안 되고 아저씨가 평생 그냥 여기서 사시면 되는 집이지만, 아저씨는 직업도 없고, 땅도 없으니 제가 떠나면 또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며 날품팔이나 하시게 될 텐데 이제 아저씨도 나이가 먹어서 그렇게는 오래 못사세요. 병이 나았다고는 하지만 아저씨 병은 음식을 제때에 잘 드시지 않으면 또 언제든지 재발할 수도 있는 병이세요. 재발하면 위암에 걸릴 수도 있고요.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는 암에 걸리면 대다수가 사망인데, 앞으론 제가 없어도 세끼는 잘 챙겨드시고 몸을 챙기셔야 하는데, 제 생각에는 아저씨가 책 읽으시면서 요기 집 앞에 텃밭에 채소나 갈으시고, 가끔씩 뻘밭에서 조개나 좀 캐서 드시면 쌀 하고 고기는 제가 가끔씩 와서 사놓고 가면 금방 그렇게 많은 돈은 필요 없으실 거 같아요. 그러니 책을 좀 더 읽으셨으면 해서요. 그리고 학교를 내년이면 다 지을 것 같은데 그동안 공부 좀 하시면 학교에서 일본말로 소사라고 하는데 학교 선생님들 심부름도 해주고 하는 일이 있거든요. 그거 아니면 정문에서 수위라도 우선 해보시면 좋겠어요. 그래야 말년까지 정기적으로 돈을 벌고 사시지요. 아저씨는 부인도 없으시고 자식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사시려고요. 저랑 있으면 제가 돌봐드릴 테니 어디 도망가시면 안 돼요. 그동안 제가 아저씨 밥 먹고 살았으니까 저두 신세 좀 갚게 해 주셔야죠."
기환이 눈물을 훔친다. 사내라서 울지 않으려 했지만 방개와 산 정도 만만치가 않았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었기에 어떻게든 형님처럼 모시고 싶었다. 그러나 방개가 떠돌이로 계속 살게 되면 만날 수도 없고, 도와줄 수 도 없거니와 돈을 계속 대준다면 그건 방개가 자립하는 데는 방해가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방개가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자리와 돈은 기환이 방개가 죽을 때까지 책임을 질 계획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방개는 그의 생각을 들으며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조금 다르다고 느낄 뿐이었다.
기환이 별채에 책을 천권가량 남겨두고 군산 시내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향숙이와 결혼식도 치르고 사립고등학교를 짓는 일에 무척이나 바빠졌다. 그즈음 방개를 찾아온 것은 엉가 엄마였다.
엉가 엄마는 겨울이 다 되어 방개네 집에 별채 앞에서 방개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가 방문을 열자, 전혀 다른 방개의 모습에 자기가 사람을 잘못 찾아온 줄로만 알았다. 방개는 예전의 그 검으티티한 얼굴에 검버섯도 피고 옷도 사람도 얼룩덜룩 더럽기만 했던 그런 초라한 거지, 아니 떠돌이가 아니었다.
방개의 피부는 검기는 해도 반들반들 윤이 났고, 몸도 번듯하니 자세가 아주 점잖은 선비같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책을 보고 있는 방개의 모습은 이전의 허공에 맨발을 디디고 사는 사람처럼 공허해 보이고 머리에 든 것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바보 같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변해있었다.
방개는 엉가엄마의 모습을 보고 방개 역시 놀란 토끼눈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이미 온양시내의 최고의 양장점 주인의 자태를 지닌 품격 있는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엉가엄마는 방개를 찾아온 이유가 고독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충청도 사투리도 쓰지를 않았다. 세련된 서울말처럼 말을 하는 것이 영 방개는 이상했다.
" 제가 방개씨를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왜 방에 그토록 좋은 비단 이불에 요를 깔아 드렸고, 방도 새로 내어 드렸는데, 거기서 며칠 잠도 안 자고 그렇게 말없이 떠날 수가 있어요. 제가 얼마나 서운하고 방개씨를 보고 싶었는지 수 없이 사람을 시켜서 방개씨를 찾았구먼요. 제 마음이 이상하게 방개씨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고 견딜 수 없는 것이 이것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 인지 싶기도 하고, 제 마음이 돈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고독이라는 병이 들어버렸네요. 이상하게 내 남편이 죽었어도 그리 고독할 일이 없었는데, 방개씨가 떠나고는 제 마음이 그리도 외롭고 고독해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
방개는 처음으로 "고독"이란 말을 곱씹었다.
'고독이 뭐여.'
'외롭다는겨.'
방개는 고독이란 말을 곱씹으며 가만히 구들방에 온기로 따듯해진 방바닥을 손으로 만져봤다. 아궁이에서 장작이 활활 타면서 방이 금세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고독하다는게 외롭다는 거지유. 그러니까 엉가엄마가 외로웠다는 얘기지유."
"네 맞아요, 방개씨가 제가 사는 온양에 없으니까 그리도 외롭고 죽겠어요."
방개는 방바닥이 뜨거워지는 것만큼 그에 가슴도 뜨거워졌다. 그러나 그건 방개가 엉가엄마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방개는 언제나 귀머거리 순자만 자기의 사랑의 대상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그건 변치 않을 방개의 순애보였다.
"그럼, 지가 뭘해줄 수가 있데유. 지는 엉가엄니하고는 혼인할 수도 없구, 같이 살 수도 없어유, 다른 남자하고 재혼을 하셔야지유."
엉가엄마는 기차를 타고 온양역에서 서천까지 새벽참에 방개를 찾아냈다는 어떤 사람의 소식에 한 걸음에 달려왔는데 방개가 다른 남자랑 재혼을 하라는 말에 갑자기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자기와 딸 엉가의 목숨을 동냥을 해서 살려준 남자가 이제는 살만해진 자기를 버리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엉가엄마는 자신이 안고 있는 인간의 고독, 이 실존의 문제를 해결해 줄 남자는 방개씨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온양장터에 방개가 오려나 하고 찾았고, 덕구네 집에 오려나 하고 기다렸고, 양장점 문을 열고 어느 날 뻐끔 히 들어오려나 아니면 방개에게 마련해 준 자기 집에 그 비단 이불을 덮고 누워 있으려나 하고 늘 기다렸는데, 몇 년 동안 코빼기도 한 비치던 방개가 죽을병에 걸려서 이 비인 앞바다에 살고 있다고 소식을 들어서 왔더니 그는 이제 말짱한 데다가 자기를 보고 재혼을 하라고 하자, 그녀는 눈가가 짓무르도록 눈물을 한바탕 쏟아냈다.
"저보고 다른 사람하고 재혼을 하라고요. 방개씨는 왜 그렇게 눈치가 없데유, 지는 방개씨랑 살고 싶어서 몇년동안 방개씨를 찾은 것이고,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는데, 매정하게 절 보고 다른 사람하고 재혼을 하라니요, "
방개의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진다.
"지하구 살구 싶다구유, 그게 무신 말이래유."
엉가엄마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물이 비친 얼굴로 쏘아보았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두 방개씨하고 재혼할고 말거예요. 우리 엉가도 방개씨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대찬성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제가 돈을 벌어도 채울 수 없는 이 고독에 끝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방개씨 밖에 없어요. 당신의 착하고 따스한 마음이 아니면 다른 남자로는 채워지지 않는 걸요. 제 진심이예요. 방개씨가 귀먹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도 덕구씨에게 들어서 알아요. 하지만 그 여자는 방개씨랑 혼인하기는 어렵잖아요. 당신이 그 여자를 책임지기에는 너무 아무것도 없고, 그 여자는 동생들하고 잘 지낸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이제 이곳을 떠나요. 그리고 저랑 온양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방개씨 제 말 들어주실 거지요."
방개는 느닷없는 엉가엄마의 청혼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 뜨거워진 별채의 서재방을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빈 겨울바다로 터벅터벅 한없이 걸어갔다. 인생이 왜 이리 가끔씩 당혹스러운지 방개도 이해가 안 되었다. 그는 아직은 기환이 남기고 간 책을 읽느라 어딜 가질 않고 있을 뿐이지 마음은 항상 이직도 떠돌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이 자기를 붙잡아 두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바닷가 근처에 산을 개간해서 과수원을 일구던 서울에서 3년 전에 이사를 온 잘 생긴 미남자 윤택이 방개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말고 방개를 보고 자전거를 세웠다.
"방개씨 언제 시간 되시면 저희 집에 오셔서 저녁이라두 함께 해유. 저랑 고기잡이 일 좀 같이 좀 하실 수 있을까 해서유. 배에서 허드렛 일만 좀 해주시면 되는데 제가 품값을 많이 쳐드릴께유. 저도 서울에서 내려와서 처음으로 뱃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사람을 좀 써야 할 것 같어유. 일주일에 두번만 배를 타문 되는디유."
윤택이란 이 사람은 서울에서 망하고 내려왔는데, 사업이 망하자 형이 고향엘 못 오게 했지만 빈손 들고 와서 억척같이 일을 해서 조그만 통통배를 하나 샀다. 빚을 져서 산 통통배지만 혼자서 배를 끌고 나가서 고기를 잡아 오고, 산도 개간해서 과수원도 하는 부지런한 남자라서 방개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나 그의 형은 인근에서 가장 땅도 많고 엄청난 부자였지만, 그의 재산은 다 아버지가 동생과 똑같이 나눠가지라고 한 재산을 혼자서 꿀꺽해 버린 천하에 망종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다 독차지하고도 동생이 서울에서 사업이 망해서 내려온다고 하자 한사코 동생이 고향 귀환을 막은 인간이었다.
형제지만 성격과 인생관이 달라서인지 동생은 착하고 부지런했지만 돈을 잘 벌지는 못했지만, 형은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어도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서 인근에서 그가 제일 콧바람이 컸다.
그런 형은 매일 군산에 나가 술집에 술을 진탕만탕 마신다고 들었고, 여자를 몇이나 두고 산다고도 들었던 터다. 그러나 동생 윤택은 사는 재간은 별로 없어도 마음이 착하다고 소문이 났었다. 방개는 그가 배를 타자는 말에 얼른 답을 줬다. 혹시라고 마음이 바뀔까 봐서도 그런 것이었다. 이유는 엉가엄마의 느닷없는 청혼에 놀란 방개는 다른 도피처가 생긴 것이 핑곗거리로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그려유, 지가 이제는 몸도 아주 좋아서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었는디 바다에 가서 고기잡는 일이문 최고지유.
언제 부터 한데유."
방개는 쇠뿔도 단김에 빼야겠다고 일을 맞췄다.
"네 하하 그런 방개씨 저랑 일 같이 하는 거지유. 일주일 후에 배 한번 타고 나가유. 요즘은 겨울이라서 날이 좋아야 하니께 그때쯤 바다가 잔잔하문 먼 바다에 하루 다녀와유. 고기 좀 잡게유."
방개가 윤택이라는 사람과 뱃일을 하기로 하고 집에 돌아와 오자, 엉가엄마가 저녁밥상에 고기를 수북하게 올려놨다. 밥을 하느라 안 간 것인지 자고 갈 것인지 방개는 밥상 앞에서 좀 심란해졌다.
"엉가는 학교 잘 다니지유, 덕구 조카들도유,"
"인사 한번 빠르시네요. 다들 잘 있어요. 덕구네도 잘 있구요.
방개씨 저녁 먹고 오늘 밤 저도 여기서 잘테니 내일 저 하고 온양으로 떠납시다.
여기 있는 짐은 제가 사람 보내서 다 가지고 오라고 할테니까 저 책들도 우리집 방개씨 방에 갖다 놔요.
아니면 어디 주고 싶은데 있으면 조금 나눠주시구요."
방개는 이거 큰일이다 싶은데, 엉가 엄마의 고독한 마음에 상처를 주기는 싫었다.
"덕구도 잘 있다니 다행이구먼유, 덕구가 고생이 많을 텐디. 조카들 키우느라."
"그러니까 방개씨가 가서 덕구씨네 농사도 좀 거들어 주구 저랑 살아요."
"지는 엉가엄마랑 혼인 같은거 안해유, 지는 끝까지 혼자 살거유, 날 매어 놓치 말어유."
엉가엄마는 방개가 요지부동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밑바닥까지 꺼져 들어갔다.
"누가 방개씨를 매어 놓는다구 그래요, 방개씨 돌아다니구 싶은데 있으문 다 돌아다녀요. 제 남편으로 옆에서 저를 지켜만 주면 되요."
그때 방개는 말했다.
"지가 다음주 부터 배를 타기로 했어유, 지는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아볼 생각이유."
순간, 엉가엄마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이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는 아무래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