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물에 그물을 대야 괴기가 많이 잡히는겨.
엉가엄마가 눈물을 한대야 쯤은 쏟고 밤새도록 울어도 방개는 꿈쩍도 안 하고 별채에 문을 닫고, 책을 읽다가 잠들어 버렸다. 안채에서 밤을 꼬박 새운 듯한 엉가엄마가 새벽에 부시락 거리고 부엌을 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침 일찍 방개네 집을 나갔다. 방개 생각에 엉가엄마가 온양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천역에서 장항선 첫차를 타려고 집을 나가 것 같다. 서천역까지 걸어가도 족히 한 시간은 걸어야 하는데 혼자 길을 나선 것을 보면 방개한테 어지간히 마음이 삐져 있는 것 같다. 엉가 엄마를 그렇게 허탈하게 보낼 수밖에 없는 방개의 마음도 아프고 쓰렸다.
엉가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자를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것과 엉가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달랐다. 방개는 엉가엄마가 울고 간 안채에 들어가서 가만히 그녀가 차려놓은 아침 밥상에 앉아서 엉가엄마와 자기의 관계를 생각해 봤다. 접시에 돼지고기를 볶아 놓고, 바지락을 넣고 미역국도 끓여 놓았는데, 입안에 쓴 물이 가득하니 도통 입맛이 돌지를 않았다.
"저 여자의 정신이 온전히 돌아온 것만도 하늘이 기적을 보인 것인디, 내가 왜 거기 가서 빌붙어 산단 말인가? 내가 또 어떤 본성을 가진 남자인지 나도 나를 알지 못하는디, 저 여자가 겁이 없는겨.
본남편한티 그렇게 매질을 당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할 정도로 힘들게 그 구뎅이를 빠져나왔으문,
다신 시집을 가지 말어야지, 재혼은 무신 재혼이랴,
저 여자가 나도 잘 물러서 그려, 나도 여자랑 살기는 아주 못된 눔인것두 모루구 말여,
나두 막상 여자랑 살문 내 아버지처럼 첩을 둘지, 엉가 엄마 본 남편처럼 공연히 여자나 두드려 팰지
나두 나를 잘 물러유, 그러니 엉가엄마두 정신 차리구 혼자 잘 살어봐유. 그게 옳을거유. 나두 믿지 말구유."
방개는 엉가엄마가 고독하다는 말에 대한 답변인지 자기 혼자 하는 말인지 모르게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러나 방개의 본심은 엉가엄마를 자신이 얼마나 또 사랑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엉가엄마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면 자신의 목숨도 내줄 수도 있지만, 남녀지간으로 함께 살자고 하면 방개에게는 그건 이상하게 매이는 것 같고, 하릴없는 건달이 돈 많은 과부에게 기둥서방이라도 하는 것 같이 마음에 없는 여자랑 살면서 그 여자의 돈을 후려내는 것 같이 자기가 그저 배만 부르게 살려고 엉가엄마랑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예전에 동냥을 해서라도 먹이고 입혀서 살린 엉가와 엉가엄마에게 혹처럼 붙어서
예전에 해준 은공을 갚으라는 듯이 돈 잘 버는 엉가엄마에게 양아치 모양으로 뜯어먹는 것 같기도 해서 자기도 모르게 엉가엄마에게 오히려 진실한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아무런 살아갈 대책도 없는 자신이 가진 알량한 사내의 자존심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방개는 자기가 아직은 아무 곳에도 정착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마음이 허전하고 상처가 있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었기에 엉가엄마의 고독을 자기가 해결해 줄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 밥상에 차려진 밥과 반찬을 우 격 우 격 먹기 시작했다.
어쩐지 집집마다 돌면서 아침부터 남의 집 대문에 서서 종근락 하나를 들고 미친 엉가엄마와 아기 엉가를 밥을 얻어 먹일 때 먹던 그 돼지밥이 그날 따라 생각났다. 이 음식 저 음식이 종근락 하나에 비벼져서 짜고 맵고 어떤 때는 싱겁고 이상한 쉰네만 나던 그때는 배도 너무 고팠지만, 되려 자기가 얻어온 밥이나 죽, 나물 조금, 김치 조금을 든 종그락을 들고 셋이사 남의 집 추녀 밑이나 동네 다리 밑에서 먹을 때는 그렇게 맛있더니 , 이제는 배가 부를 만큼 먹을 수 있는 밥이 예전에 셋이 서 빌어먹던 밥맛 보다 더 맛이 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배가 불러진 것인지, 남의 밥을 공짜로 얻어 먹고 살아서 인지, 아니면 위가 아직도 깨끗이 낮지를 않아서 인지 방개는 오늘 아침 밥상에서의 입맛은 다 알 수가 없는 날이였다.
기환이 오고 나서부터 방개는 배곯는 일은 없었다. 더구나 소록도로 간 과부가 차려준 그 맛있는 음식들은 정말 방개의 입맛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엉가엄마까지 와서 자기가 평생을 배곯지 않아도 되는 유명한 양장점 주인이 된 여자가 자기와 재혼을 하고 싶다고 울어대는데 그 소원을 못 들어줄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데도 방개는 자기라는 사람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여러 번 곱씹고 생각을 해보았다.
방개는 언젠가는 엉가엄마 집에 자신이 돌아가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남편이 아닌 자리, 그냥 그 집에서 엉가엄마를 지켜주고 엉가가 자라는 것을 보는 정도의 위치로만 살고 싶은 거였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잠시 또 그렇게 인연이 돼서 살면 그것으로 만족하리라 생각을 해 본 것은 엉가엄마가 그 집에 방개의 방을 마련해 놨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가서 그 비단 이불을 덮고 자면 좋을 것 같아서 방개는 다시금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자 엉가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에 밥과 국을 그리고 돼지고기 볶음을 다 먹어 치웠다.
방개와 윤택은 봄바다가 잔잔해진 날에 비인 앞바다에 통통배를 띄웠다. 윤택은 고기를 잡아 본 적이 없었다. 방개 역시 바다 일은 별로 경험이 없어서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씩 홍성의 남당리나 대천 앞바다, 태안등을 떠돌면서 뱃일을 도와주고 겨우 세끼를 생선이나 밥 한 그릇을 얻어먹은 적이 있어서 윤택이 보다는 고기를 잡는 일은 잘할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윤택은 어린 시절부터 스무 살까지는 고향 서천 앞바다에서 수영으로 몸을 다지기도 했고, 친구들이 배를 타고 나가면 같이 나가본 적도 있어서 통통배의 운전 정도는 능수능란하게 했다.
바다로 바다로 돌아도 이상하게 고기가 잡히질 않자, 윤택은 자신이 선택한 돈벌이가 잘못된 것인가를 고심하는 것 같았다.
"방개 형님, 이거 내가 뭘 잘못 판단했나봐유, 아무래도 통통배를 사지 말고 산이나 조금 더 살걸 그랬나봐유, 그래서 과수원을 더 넓게 할걸 이걸 돈을 빌려서 샀으니 고기를 하나두 못잡으면 어떻하지유."
윤택은 자기가 젊은 날 서울에서 돈 한 푼 없이 사업에 실패한 이유도 장사할 종목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기에 고향 바다에 와서 고기를 잡아서 돈을 벌어볼 요량으로 통통배를 산 것이 또 망하는 길인가 싶어서 불안해졌다.
"이보게, 오늘이 배 처음 띄운 날이라며 너무 겁내지 말고, 좀 더 깊은 물로 가서 그물을 던져봄세, 바닷 괴기는 대부분 깊은 물에서 노는 법 아녀, 나두 태안 앞바다에서 그물질하는 고깃배 몇번 타고 그물에서 물고기 건지는거 해봤거든. 그런디 짚은데를 들어가서 그물을 던지문 대부분 괴기가 잡히더라구. 아, 그리고 내가 며칠 전에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들었는디, 목사님두 그러시더구먼, 예수님 제자 베드로가 밤새도록 괴기를 한마리두 못잡았다구 하니께, 예수님이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구 했다구, 그래서 잡은 괴기가 153마리라고 하시던디. 오늘 우리도 그렇게 한번 해봐유. "
"아, 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구유, 하하하 방개 형님 역시 최고구먼유, 바다를 나보다두 더 잘 아시네, 난 바닷가가 고향인데두 고기가 깊은데 많다는 걸 까먹구 있었는디. 형님 안 모시구 왔으문 오늘 첫방에 내가 헛손질만 하다 빈배로 돌아갈 뻔 했구먼유."
" 이사람아 , 오늘 바닷괴기 많이 잡어야 나두 한 몫 챙기지, 허허허 "
방개는 윤택이란 사람이 빚을 얻어서 통통배를 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부모가 물려준 엄청난 유산을 서울에 가 있는 동생에게는 말도 안 하고 혼자서 한입에 꿀꺽해 버린 형 때문에 부화가 치민 윤택이 그래도 고향에 와서 살아볼 려구 빚까지 져서 산 통통배를 첫날부터 허탕을 치면 큰일 아닌가 싶어서 방개는 부지런히 그물을 던져보았다.
붉은 노을이 그물망에 걸려 금세라도 딸려올 듯이 빨개진 서쪽하늘이 점점 바닷속으로 빠져들 때쯤 두 사람은 바다에서 배를 끌고 선착장으로 나왔다. 그날부터 방개를 향한 윤택의 가슴이 등 푸른 고등어처럼 파랗게 뛰기 시작했다. 무식한 것 같고, 어리숙한 것 같은 이 남자가 어쩌다가 한마디를 하면 이상하게 그 말이 그에 가슴을 그렇게도 시원하게 뚫어줄 수가 없었고, 잃어버린 형제애를 다시금 떠오르게 할 만큼 형 같은 이 남자가 바닷가 한 복판에서 자기의 마음을 봄바람처럼 푸근하게 해 줬기 때문이었다.
"방개 형님, 제가 오늘부터 형님을 내 진짜 형님처럼 모시구 이 동네에서 살어야겠어유. 형님이 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어째 내 마음을 많이 감싸주네유. 사실 형님한테 재산때문에 받은 고통이 커서인지 내가 몇년 동안을 진짜 내 핏줄인 형님을 원수로만 생각하고 살았나 싶은 속내도 있고, 아직도 용서를 안했나 싶어서 괴롭기도 한데, 한동네로 이사를 왔어두 코빼기도 안비치는 형이나 형수가 참 원망스러워서 내가 여기서 또 실패하문 나는 저 비인 앞바다에서 그냥 빠져죽을까도 생각을 했는디, 오늘 방개 형님하고 배를 타고 이얘기 저얘기 하다보니 내 마음이 이상하게 먼 바다에 무거운 짐보따리를 다 두고 온 것 마냥 온 몸뗑이가 가벼워 졌구먼유. 이상스럽네유 그거 참."
윤택은 방개가 참 이상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에서 이 남자에 대한 이상한 소문도 한두 가지는 있었지만, 방개만큼 남의 주목을 받을 어떤 것도 없는 남자가 알고 보니 아는 것도 은근히 많고, 웃기는 소리도 잘하고, 거기다가 마음이 유순해서 순한 양처럼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은 윤택도 사업이 망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처음 겪은 사람이었다. 망하고 오니 고향 친구들도 그에게는 소 닭보듯이 그저 그런 사이였는데, 고향의 정 같은 푸근함이 왜 방개라는 떠돌이 남자에게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